인간답게 vs 최소보장…최저임금 역할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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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경제일반 인간답게 vs 최소보장…최저임금 역할은 무엇 노사정 ‘당사자 주의’에 무게…“위원 수 줄여 협상력 높이자”

기사입력2016-08-03 13:00

중기이코노미는 2017년도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끝난 뒤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과 외부 전문가를 만나 최저임금 관련 이슈를 짚어봤다. 최저임금 사안에서도 쟁점은 여러 가지다. 최저임금 수준부터 최저임금을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지, 최저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킬 것인지, 앞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 등이다. 최저임금 이슈를 바라보는 각 주체의 입장과 쟁점을 정리했다.

◇최저임금의 무게…인간답게 살게 vs 최소한의 수단=최저임금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각계의 입장이 갈린다. 기본적으로 임금은 노동수요와 공급이 만나 결정되는 시장가격이다. 수요측은 기업이고 공급측은 근로자다. 이것이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말하는 임금이다.

그러나 임금을 시장원리에만 맡겨뒀을 경우 일부 근로자들은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 정한 것이 최저임금이다. 결정방식은 정부 주도, 국회 주도, 최저임금위원회 주도 등 국가별로 다르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에서 권고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다. 노동계에선 가계(2~3인 가족)를 책임지는 근로자들의 상황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이 근로자가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의 존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한국노총 이정식 사무처장은 최저임금이 “한 사회가 근로자를 보는 수준이자 사회의 품격”이라고 했다.

중기이코노미는 최저임금위원회 세 주체인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과 외부 전문가를 만났다. 왼쪽부터 한국노총 이정식 사무처장, 경총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 최저임금위원회 류경희 부위원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 ©중기이코노미

경영계 생각은 다르다. 최저임금은 경제문제니 경제로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문제를 시민사회나 국회까지 가져가는 것에는 불편함을 표시한다. 국회로 가면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사업자 수보다 근로자 수가 월등히 많으니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총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을 보장해 주는 제도”라면서 “2~3인가구를 부양하는 저소득 근로자의 생계를 최저임금으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이는 다른 사회보장제도가 할 일”이라고 했다.

공익위원과 전문가도 최저임금에 너무 많은 기대치를 부여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위원회 류경희 부위원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각종 사회문제를 모두 최저임금으로 해결하려는 바람이 있는 것 같다”며 “중요 소득원인 임금을 적정수준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맞지만 과도하게 정책적 기능을 부여해선 안 된다. 그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노동 전문가인 고려대 법학대학원 박지순 교수도 최저임금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거들었다. 박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의 불공정을 해소해 부를 분배하는 것이 먼저”라며 최저임금은 그 다음에 할 일이라고 했다.

◇칼자루는 누구에게…위원회? 국회? 정부?=쟁점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단 한 가지는 현재 최저임금위원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이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그 어느 해보다 진통이 컸다. 노사 모두 최초안을 내놓은 이후 단 한 번도 수정안을 내지 않았다. 노동계는 1만원을, 경영계는 동결을 고수했다. 공익위원안이 제시되기 전까지 노사가 한 번도 수정안을 내지 않은 것은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이후 처음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기간도 108일로 최근 10년중 가장 길었고, 전원회의 횟수 역시 14회로 역대 가장 많았다.

6470원으로 정해진 최저임금 수준에 노사 모두 불편한 반응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갈망하는 근로자들의 열망을 짓밟았다며 노동자위원 전원 사퇴에 국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찜찜한 반응은 경영계도 마찬가지다. 내수침체에 대외여건도 불안정한데 최저임금이 7.3%나 올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노사의 태도에 대한 뒷말도 무성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노동계에 비판이 쏟아진다. 한 전문가는 노동계의 강경대응에 “90%는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했다는 명분을 챙기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 10%는 클리셰(판에 박힌 진부한 장면) 같은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2007년 심의 이후 2016년 올해까지 10년 동안 최초인상안, 0%만을 고집했던 경영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2009년 심의에선 -5.8%, 삭감을 주장했다. 다른 한 전문가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만 개선해도 최저임금 1만원은 문제도 아닌데, 경영계는 1년에 단 한번 최저임금 심의때만 영세기업·소상공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비꼬았다.

최종 표결에서 7.3% 인상안을 제출한 경영계의 뒷배경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아무리 양보해도 2~3%밖에 인상할 수 없을 것이라던 경영계가 그만큼의 인상률을 써 낸 것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이 당사자인 노사 또는 공익이 아닌 사실상 정부가 결정했다는 것이다. 불신의 골이 깊다.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도 높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노동계는 기본적으로 노사정이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공익위원이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 불만을 제기한다.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위촉한다. 그러니 정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최저임금위원회는 9:9:9(노동:경영:공익)가 아니라 9:18(노동:경영+공익)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노사가 팽팽하게 대립하니 결국 공익위원 의지에 따라 최저임금이 정해진다. 노동계는 노사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중립적인 인물이 공익위원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독일은 노사 모두의 추천을 받은 인물을 의결권을 가진 공익위원장으로 두고 있다.

경영계는 현 최저임금위원회는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하니 정부가 정하라는 입장이다. 김동욱 본부장에 따르면 올해 회의에서 노동계는 ‘필리버스터’를 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시나 수필을 계속해서 읽는 바람에 회의가 무기한 길어졌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최저임금은 실업급여, 장애인고용지원금, 탈북자지원금 등 수많은 정부 제도와 연동돼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국가 예산이 조 단위로 움직인다. 정부가 노사 의견을 수렴만 한 뒤 정했으면 한다”고 했다.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국회로 가면 결국 표를 의식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며 김 본부장은 반대했다.

공익위원들도 할 말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류경희 부위원장은 공익위원이 ‘욕먹는 하마’라고 자조했다. 노사 입장을 중재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으나, 어떤 결과가 나와도 노사 양쪽으로부터 원망을 받으니 기운이 빠진다고도 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 합류한 한 공익위원은 현행 방식에 회의를 표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류 부위원장은 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고 했다. 류 부위원장은 “당사자 중심의 최저임금위원회는 국제노동기구에서도 권고하는 방식으로 완결성이 높다. 노사 위원들의 의지와 협상문화, 신뢰의 문제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박지순 교수는 노사정 중심의 체제를 큰 틀에서는 유지하되 세부적인 부분에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 번째로 손질할 대상은 27명이나 되는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수다. 실질적인 협상이 불가능한 숫자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5명, 독일과 영국은 9명, 그나마 많은 편인 일본도 15~21명이다. 박 교수는 한국도 위원 수를 9명까지 줄이고, 위원의 대표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처럼 실무진이 나올 것이 아니라 노총 위원장, 경총 회장 등 장급(長級) 이 나와 발언하고 결정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고도 했다. 공익위원 역할은 최소로 축소하고 노사 합의하에 결정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