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잡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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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총수일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잡을 수 있나 지분 매각 및 합병 통해 규제 회피…예외사유 포괄적 실효성 의문

기사입력2016-09-07 20:59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해 2월6일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을 통해 같은달 14일부터 시행한 강화된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벗어났다. 사진은 현대글로비스 아산 제2KD센터 <사진=뉴시스>

지난해 2월 6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식 13.39%를 종가보다 2.7% 낮은 가격으로 매각했다. 매각 이전 43.39%였던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29.99%로 낮아졌다. 이로써 현대글로비스는 약 1주일 뒤인 2월14일부터 발효된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금지)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삼성SNS와 현대엠코도 각각 삼성SDS와 현대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을 통해 규제를 피해갔다.

사익편취행위는 총수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대기업집단 계열사에 거래물량을 지나치게 몰아주는 것을 말한다. 총수일가의 편법적인 부의 축적 방법이자, 편법적인 증여 또는 상속수단의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당 김동철의원에 따르면 2014년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규모 상위 10대 그룹 계열사간 내부거래액은 155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감몰아주기를 입증하지 못하는 공정위…사익편취행위 금지규정 신설

사익편취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되기 전까지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는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 따라 규율됐는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존의 경쟁사가 퇴출되거나, 신규 시장진입이 제한되는 등 ‘경쟁저해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입증하지 못해 법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와 함께 부당지원행위의 또 다른 요건인 거래물량이 ‘현저할 것’도 입증해야 하는데, ‘현저성’ 역시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 후 2013년 7월 2일 사익편취행위 금지 규정이 국회를 통과했다(제23조의2). 제23조 제1항 제7호의 위법성 판단기준을 완화하여 공정위의 입증책임 부담을 경감시켰으며,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금지시켰다.

사익편취행위 금지 규정은 적용대상 회사를 한정하지 않았던 기존 조항과 달리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에 속한 계열사로 제한했다. 또 기존 조항은 일감을 몰아준 계열사만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실질적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수혜회사를 제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익편취행위 금지 규정은 수혜를 받은 계열사뿐만 아니라 일감몰아주기를 지시·관여한 총수 일가까지 제재대상을 확대했다. 이와 관련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강지원 조사관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관행적으로 계열사간 이뤄지던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적용대상을 명시한 것”이라며 “총수일가에 대한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감시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고 말했다.

사익편취행위 금지 규정은 또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입증책임도 완화했다. 기존 조항은 거래규모의 ‘현저성’에 대한 입증을 요구했지만 신설 조항에서는 거래 규모의 ‘상당성’만 입증하면 족하다. 또 기존 조항은 일감몰아주기로 인한 ‘경쟁저해성’ 및 경제력 집중효과를 요구하는 등 위법성에 대한 입증이 어려웠지만, 신설 조항은 이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부당지원행위 판정을 위해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는 ‘상당성’에 대해 강 조사관은 “‘상당성’의 규모는 공정위가 기존 사례와 판례를 통해 정하도록 돼있다”며 “‘현저성’ 보다는 ‘상당성’의 규모가 더 포괄적인 만큼 공정위가 더 적극적으로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맹점으로 작용하는 지분율과 예외조항

여전히 맹점은 있다. 사익편취행위 금지 대상은 공정거래법상 수혜받는 계열사에 대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이상인 경우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례와 같이 총수일가 지분율을 법 적용기준보다 근소하게 낮추어서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 지분율 요건을 더욱 낮춰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이 많은 이유다.

실제 20대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들은 모두 상장사 지분율을 낮추는 것에 방향을 맞추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제윤경 의원안과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안은 지분요건을 상장사, 비상장사 구분없이 모두 20%로 낮추는 것과 함께 공익법인이나 분할·합병 등을 통한 간접지분율도 포함시켰다. 국민의당 김동철의원안은 상장·비상장사 지분율을 10%로 낮췄다.

상장사의 지분율 요건을 하향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상장사는 비상장사보다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주주나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시장감시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또 상장사는 비상장사보다 내부 통제장치가 잘되어 있어 일감몰아주기의 지원주체가 되는 회사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물량을 몰아주어 그 회사의 주주·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다.

그러나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속한 비상장사는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내부거래 현황을 포함 기업에 대한 각종 중요 정보를 공시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장감시가 용이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내부통제 장치를 이유로 상장사와 비상장사 기준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 역시 내부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란 지적이 많다.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의 이사회는 의사결정의 독립성이 사실상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루어진 내부거래라 하더라도 주주들의 손해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외적 상황도 문제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다른 자와의 거래로 달성하기 어려운 비용절감, 판매량 증가, 품질개선 또는 기술개발 등의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는 거래 ▲다른 자와 거래할 경우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 또는 정보 등이 유출돼 경제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하거나 우려가 있는 ‘보안성’이 요구되는 거래 ▲경기급변, 금융위기, 천재지변, 해킹 또는 컴퓨터바이러스로 인한 전산시스템 장애 등 회사 외적 요인으로 ‘긴급성’이 요구되는 거래의 경우 사익편취행위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긴밀하고 유기적인 거래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돼 인적·물적으로 협업체계가 이미 구축돼 있는 경우’도 예외로 인정한다.

사익편취행위 금지 대상 예외사유가 다양하고 또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 공정위의 재량적 해석에 의해 예외로 쉽게 인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긴밀하고 유기적인 거래관계의 경우’는 기존에 계열사간 거래관계가 장기간 지속되어 일감몰아주기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온 경우 동 기준은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자칫 기업들의 ‘면죄부’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와 같은 예외사유를 통한 규제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채이배 의원의 개정안은 그물망을 비교적 촘촘하게 짰다. 개정안에 따르면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는 거래의 경우에도 그 이득이 수혜회사에 귀속되는 경우는 예외사유에서 제외했다. 보안성이 요구되는 거래의 경우에도 피해우려와 함께 적절한 구제수단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로 제한했다.또 긴급성을 요구하는 거래 역시 ‘통상적인 거래절차를 거칠 경우 시간상 지연으로 인해 회사가 위법한 상황에 처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