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몰래 특허출원 못한다…발명진흥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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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특허변리 회사 몰래 특허출원 못한다…발명진흥법 개정 직원과 보상계약 미리 했다면 직무발명 관련 권리 회사에 자동 승계

기사입력2016-10-19 00:00

#1. 직무발명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직원들의 일탈에 일부 회사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A사의 이사인 B씨는 합금을 개발하던 중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난 고강도 합금 개발에 성공했다. B씨는 이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고, 당시 연구를 돕고 있던 대학원 박사과정 C씨 명의로 특허출원을 했다. 그런 다음 컨설팅회사를 차려 다른 회사와 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팔았다. A사는 B씨와 C씨를 업무상배임과 영업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으나, 대법원은 “배임죄는 인정하나 영업비밀누설로는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직무발명에 대한 권리가 사용자에게 승계되기 이전에 팔아 넘겼으므로, 발명 내용을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개발 사실을 알고도 회사에 알리지 않고 특허권을 출원하고 제3자에게 권리를 양도한 점에 대해서는 배임죄를 인정했다.

1993년 니치아화학 근무 시절 청색 발광다이오드를 발명한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발명에 대한 적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회사 측에 소송을 제기해 8억4000만엔을 받아냈다.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이 발명으로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사진=위키미디어>

#2. 반대로 회사가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소송에 휘말린 경우도 있다. 일본 사례다. 니치아화학과 201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 교수의 분쟁이다. 슈지 교수는 1993년 니치아화학에 근무하던 시절 청색LED를 발명했다. 지방의 작은 기업에 불과했던 니치아화학은 이 발명을 계기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슈지 교수가 직무발명에 대한 대가로 받은 돈은 2만엔에 불과했다. 보상이 합당하지 않다고 느낀 슈지 교수는 회사에 소송을 걸어 8억4000만엔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슈지 교수는 직원의 직무발명을 가로채는 일본 기업들을 향해 쓴소리도 많이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립 샌타바버라 교수직 발령을 받아 미국으로 향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

직무발명을 둘러싼 회사와 직원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앞선 합금 사태 이후 직무발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탔고, 정부는 발명진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직무발명이 이뤄진 즉시 특허를 낼 수 있는 등의 권리는 회사에 자동으로 승계된다는 내용이다. 단, 회사와 직원이 직무발명과 보상에 대한 계약을 사전에 체결해둔 경우에 한해서다.

◇“권리 확정 빠르게…발명자에 불리한 것 아냐”=지금까지는 회사와 직원이 직무발명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어도, 직원이 발명을 하면 일일이 서면으로 회사가 직무발명 승계 의사를 통보해야만 권리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직무발명 승계 기한은 4개월로, 이 기한을 넘기면 회사가 직무발명 승계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를 악용한 사례도 나왔다. 업무 과정에서 발명을 해놓고도 회사 몰래 특허를 출원하거나 제3자에게 팔아넘기는 경우다.

18일 특허청은 직무발명 승계 절차 개선 내용을 담은 발명진흥법 개정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뷰웍스 정미화 과장,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김시열 박사, 특허청 김용선 과장, 명지대 법과대학 박영규 교수, 와이솔 윤창규 책임연구원, 웰 국제특허사무소 정화승 변리사. ©중기이코노미

특허청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개정 발명진흥법 공청회를 18일 열고 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공청회 패널들은 대체로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웰 국제특허사무소 정화승 변리사는 “4개월 이내에 승계 의사를 밝혀야 하는 점이 실무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중견·중소기업일수록 전담인력을 보유하기 어려운데, 개정된 법에서 이런 점에 대한 고려가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패널로 참석한 뷰웍스 정미화 과장도 “자동승계 규정이 생긴다면 이중양도나 실수로 권리를 승계하지 못하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개정안이 직무발명을 한 직원에게는 불리해진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특허청 강균상 사무관은 “기업에만 유리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 직무발명을 승계하겠다는 약정이 돼 있었다면 제대로 이행하라는 취지의 법“이라고 설명했다.

◇직무발명 보상 안하면 인력·기술 유출=개정된 발명진흥법 적용을 받으려면 직무발명 보상에 대한 사전 약정이 필수다. 직무발명시 회사가 얼마만큼의 보상을 해주겠다는 내용을 미리 약속해 둬야만 자동으로 권리를 넘겨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나카무라 슈지 교수 사건 이후에도 일본은 직무발명에 대한 직원의 권리를 적게 인정해주는 추세다. 개정된 일본의 직무발명 보상제도에 따르면, 보상의 종류는 경제적·비경제적 보상을 모두 포함한다. 경제적 보상을 하지 않아도 승진이나 명예 등 비경제적 보상이 이뤄졌다면 보상을 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특허청 김용선 산업재산정책과장은 “이는 발명자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조항”이라며 “아베 정부가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사용자 입장을 과감하게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직무발명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 쪽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국가 차원에서 발명자의 권한을 축소한 경우 기술인력이 해외로 유출될 위험도 있다. 김 과장은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은 발명자와 사용자간의 이익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우수인력이 유출되고 기술이 빠져 나간다”며 “직무발명제도가 현장에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