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원조 ‘버스식당’ 스낵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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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소상공인 푸드트럭 원조 ‘버스식당’ 스낵카를 아십니까 우동 한그릇에 애환담던 그시절…44년 ‘영동스낵카’ 박윤규 사장

기사입력2016-11-10 17:33

서울 강남 한복판 한티역 앞에서 ‘영동스낵카’를 운영 중인 박윤규 사장은 최근 고민이 생겼다. 영업 중인 장소의 토지 규제가 풀려,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스낵카는 건물이 없는 나대지(裸垈地)에서만 운영할 수 있다. 현재 자리를 잡은 곳은 지난 17년동안 토지 규제로 묶여 있어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었지만, 건물이 지어지면 더 이상 나대지가 아니므로 스낵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박 사장은 “강남에서 나대지를 찾기 쉽지 않은데 만약 여기서 쫓겨난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정착하기까지 스무번 이상 자리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장사를 하다가도 개발이 시작돼 더 이상 나대지가 아니어서 혹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쫓겨나야 했다. 그래서 박 사장은 본인 스스로를 ‘스낵카 유목민’이라고 말한다.

서울 역삼동 한티역 근처에 있는 영동스낵카는 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동식 식당이다. 햇수로만 44년동안 영업을 했다. ©중기이코노미

영동스낵카는 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동식 식당이다. 1972년 국가유공자인 박 사장의 외삼촌이 이를 시작해 1982년 박 사장이 이어받았다. 햇수로만 44년이나 된 ‘장수업체’다. 스낵카는 1970년대 초반 정부 방침에 따라 도입됐다. 당시 여의도는 개발이 한창이었는데, 공사장 인부들이 식사를 해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이에 정부는 국가유공자에게만 이동분식차인 스낵카 영업을 허가해줬다. 이들은 폐차 직전인 버스를 구입해 내부를 주방으로 개조한 뒤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 영업 중인 버스는 박 사장이 1985년에 새로 장만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유치하자 불똥이 전국 스낵카로 떨어졌다. 정부는 폐차 직전인 버스를 개조한 스낵카가 위생과 미관상 좋지 않다며 개선하도록 했다. 이때 서울시가 보증을 서 기아자동차에 스낵카를 위한 전용버스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미관상의 이유로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공터를 찾다보니 주차공간 필요한 택시기사가 주고객

박 사장이 스낵카를 처음 운영한 곳은 학여울역 근처 공터였다. 당시 강남이 뜨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곳을 찾았다. 장사를 시작한 당시부터 지금까지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고객은 택시기사다. 스낵카는 나대지에서만 장사를 할 수 있다 보니 주차공간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주차공간이 필요한 택시기사들이 스낵카로 몰려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4시간 운영 원칙 또한 택시기사들을 위한 것이다.

택시기사들은 시간이 돈이다. 음식이 빨리 나오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박 사장은 주문하고 30초안에 식사가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 셀프코너에서 반찬을 떠오는 동안 식사가 나온다. 술과 음료는 팔지 않는다. 대부분 밥을 빨리 먹고 떠나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수차례 영업장소를 바꿨지만 소문이 빠른 택시기사들은 금방 영동스낵카를 수소문해 찾아 왔다. 당시 만난 택시기사들은 백발노인이 된 지금도 스낵카를 찾는다. 택시기사가 아닌 일반손님도 있다. 옛 추억에 잠겨 스낵카를 찾는 중년들도 있고, 블로그나 기사를 보고 호기심에 찾아오는 청년들도 있다.

영동스낵카는 주문하고 30초안에 음식이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 셀프코너에서 반찬을 떠오는 동안 식사가 나온다. ©중기이코노미

추억찾는 중장년, 색다른 경험 원하는 청년도 고객

스낵카는 내부가 널찍해 차 안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영동스낵카에서는 우동, 콩비지찌개, 김치찌개, 돼지불백, 북어찜, 비빔밥, 짜장밥, 볶음밥 등을 판다. 좁기는 하지만 어엿한 식당의 모습을 갖췄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동스낵카에서는 밥을 팔지 못했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정부에서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후 판매 규제가 풀렸지만, 여전히 우동이 간판메뉴라는 것이 박 사장의 말이다. 매서운 바람을 피하고 따뜻한 우동이 그리운 요즘 ‘딱’이다.

여기저기 떠돌며 오래 장사를 하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상수도관이 없는 곳에서 장사를 한 적도 있다. 물은 근처 주유소에서 가져다 썼다. 박 사장은 “겨울에 하루 두 번씩 리어카를 끌고 20리터짜리 물통 25개를 옮겼다”며 “사람을 고용하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직접 했다”고 말했다. 차량이다 보니 관리도 만만치 않다. 박 사장은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지상의 습기가 올라와 차가 자주 녹이 슨다. 녹슨 부분을 보수하고 도색도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가 찾은 영동스낵카는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이다.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지정한 유산이다. 영동스낵카는 1970년대 여의도와 강남 일대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는 이유에서 지정됐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이렇다 할 지원은 없다. 박 사장은 “서울시에서 도색이나 보수를 지원해준다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영업할 수 있는 장소를 보장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