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3일만에 해결한 철도파업 정부 왜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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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서울시 3일만에 해결한 철도파업 정부 왜 못하나 성과연봉제 도입 관련해 법 어긴 게 파업 시발점인데 갈등만 부추겨

기사입력2016-11-15 19:4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5일 현재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며 시작한 철도노조의 파업이 50일째를 맞고 있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 강호인 장관과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 등은 관계부처 합동담화문을 통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파업을 지속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일원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처사”라며 “국민들의 걱정과 불편,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없도록 하루 빨리 현업으로 복귀할 것”을 철도노조에 촉구했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정부는 “성과연봉제는 120개 공공기관은 물론 공무원 조직과 민간기업에도 이미 도입돼 있는 매우 보편적인 제도”라며 성과연봉제 강행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어 정부는 “철도공사 직원 평균임금은 6700만원으로 대한민국 근로자 상위 10%안에 위치하고 있고, 대한민국 근로자 평균연봉 3300만원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수준”이라며 “철도노조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면서도 노동개혁과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한 자그마한 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의 주장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통’은 박근혜정부의 트레이드마크다. 불통으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처지에 처한 대통령을 보고도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조차 없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그렇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날 그랬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며 시작한 철도노조의 파업이 50일째 이어가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철도노조 조합원 7000여명(정부 담화문에 따르면)은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파업권을 행사하고 있다. 수십년 이상 앉았던 철도차량 운전석을 떠났고, 철로 상태점검을 위해 잡았던 망치를 손에서 놓았다. 50일간 거리를 떠돌면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한가지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 정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기획재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이나 권고안이 아니라, 더욱이 이 지침이나 권고안의 내용은 위법하기까지 하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노조의 동의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대법원 1993.5.14 선고 93다1893 판결 등 참조). 대법원 판례까지 거역하며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이 가능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곳은 정부뿐이다. 정부지침에 따라 코레일은 지난 5월30일 성과연봉제 협상중 이사회 결정을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다. 철도노조가 지금까지 파업을 접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정부가 법을 어긴 것이 파업의 시발점인 셈이다.

정부는 담화문을 통해 성과연봉제가 120개 기관과 공무원 그리고 민간기업이 도입한 보편적인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고, ‘위법한 제도’라며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담화문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이 위법한 것인지, 적법한 것인지를 얘기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엉뚱한 얘기를 끌고와 철노노조의 파업에 덧칠을 했다. 그래서 정부의 담화문 내용은 야비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코레일의 직원 평균연봉이 6700만원으로, 근로자 평균연봉 3300만원의 2배 이상이라며 각박한 삶을 사는 ‘저임금’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건드렸다. 저임금 근로자에게 ‘위안’이 될 순 없겠지만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 실근로시간, 노동강도 등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헌법상 권리인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해부족,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란 이유만으로 파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근로자들이 파업을 ‘왜’ 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해 두자. 법에 보장된 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내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가뭄과 장마시기엔 국민들이 고통을 받으니 파업하면 안된다’. ‘대기업 또는 공기업은 돈 많이 받고, 안정적인 직장이기 때문에 안된다’, ‘중소기업은 회사가 어려우니 파업하면 안된다’. 파업은 법으로 보장된 근로자들의 최후의 수단임에도 부정된다. 결국 일체의 파업을 부정한다.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이것인가?

15일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기자실에서 철도파업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과 함께 관계부처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사진=뉴시스>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에 맞서 가맹점주들에게 가맹점주협의회를 조직하고(단결권), 가맹본부와 거래조건에 대해 협상(단체협상 및 협약체결권)을 할 수 있는 법적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현행 법은 단체행동권(파업권)을 보장하지 않지만, 일정한 조건에서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다. 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납품단가조정협의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신청요건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고, 수직계열화에 따른 불공정관행의 뿌리가 너무 깊어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있다. 그럼에도 향후 보완입법을 통해 ’노동3권‘과 유사한 형태의 권리를 보장한다면, 하도급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20대 국회가 가맹점주협의회에 단체행동권을 부여하면, 가맹점주는 파업권을 행사할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하도급기업에 이와 유사한 권리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파업권을 행사할 것이다. 법률관계와 사회적관계에서 노조와 가맹점주 그리고 중소기업은 모두 ‘을’이다. 가맹점주와 하도급기업이 ‘단결권, 단체교섭·체결권, 단체행동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조의 노동3권도 존중해야 한다. 갑과 을간의 다툼이 발생한 경우 또 다른 을은 다툼의 당사자인 을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많은 ‘을’간의 작은 이해관계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이간질을 하는 정부의 이번 담화문은 치졸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적법한 파업이다.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단 한가지도 없다. 철도노조와 함께 파업을 시작했지만, 서울지하철공사·서울도시철도노조는 서울시와의 합의를 통해 3일만에 파업을 끝냈다. 당시 노사가 했던 합의의 주요 내용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노사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부라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50일간 계속되는 철도파업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서 근로자들 모두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는 이제 파업의 목적과 전혀 상관없는 노동개혁, 대국민서비스 향상을 거부한다는 등의 흑색선전을 중지해야 한다. 적법한 파업이고 그 요구가 정당하다면 정부가 이를 수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