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과 법인세 ‘딜’ 안돼…시작 전 ‘회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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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누리과정과 법인세 ‘딜’ 안돼…시작 전 ‘회군’인가 야 3당, 국민을 믿고 국민의 성원을 무기로 저항 넘어서야

기사입력2016-11-29 14:29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해 만든 ‘범죄단체’에 774억원의 뇌물을 줄 순 있어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세금은 내지 못하겠다는 꼴이다. 법인세율 인상을 놓고 여야가 협상중인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가 국회에 제출한 ‘법인세율 인상의 5가지 문제점과 정책대안’ 보고서가 딱 그 짝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한상의가 법인세율 인상을 반대하며 제시한 논거는 경기후퇴·세수감소·일자리감소다.

20대 첫 번째 정기국회에서 세법 관련 여야협상 테이블에는 법인세율 인상 이외 소득세율 인상도 포함돼 있다. 새누리당은 소득세율 인상의 경우 협의 조정하겠지만 법인세율 인상은 협상 자체를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더 완고해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모두 건들이지 말자고 한다. 반면 야당은 법인세율 인상과 관련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해 법인세율을 25%로 올리는 세법 개정안(민주당)과 2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해 최고세율을 24%로 인상하는 세법 개정안(국민의당) 등을 이미 국회에 발의했다. 소득세율 인상의 경우 민주당은 근로소득 연 5억원 이상의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41%로 인상하는 안을, 국민의당은 3억원 초과 10억원 이하는 41%, 10억원 초과 소득자에 대해서는 45%까지 세율을 올리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의당이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 역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야 3당 모두 법인세율·소득세율 인상방침에 뜻을 같이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세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이에 따라 야 3당이 합의할 경우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인 12월2일, 세법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최근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부와 집권여당의 국정장악력이 끝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반면 야 3당의 협상력은 강화됐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의 성격이 사실상 뇌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증세를 통한 재정확대와 함께 복지여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국회 내외 여건은 과거 어느 때 보다는 유리한 국면이다.

최근 다 차린 밥상을 걷어차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지난 24일 법인세 인상과 관련 “당의 입장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시기 조절에 대한 정무적 판단은 늘 있는 것”이라며 “누리과정 예산이 더 다급한 가운데 탄핵 정국에서 여러 개로 초점을 분산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하면 법인세 인상방침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도 같은 날 법인세 인상 포기 방침을 내비쳤다.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도 “(누리과정·법인세 등) 전체가 하나의 패키지로서 협상 가능한 문제다. 합리적 중재안을 준비하겠다”며 누리과정 예산과 세법 개정안을 바꿀 수 있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같은 날 양당이 동시에 증세방침 철회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우연이길 바란다.

3세에서 5세까지 무상보육을 위한 누리과정 예산의 쟁점은 1조9000억원 예산의 분담주체를 정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지자체 교육청이 할 것인지 여부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못박은 바 있다. 또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업무라는 점에서 보건복지부 예산에 포함되는 것이 맞다. 지난 3년간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란과 함께 일선 현장에서 혼란이 계속된 이유는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보건복지부 업무를 교육청에 떠넘긴 정부 탓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위반하면서까지 지자체 교육감들의 거듭되는 협의요청을 외면했던 불통의 결과다. 박 대통령의 불통은 이미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 누리과정 예산문제는 여당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이 약속을 이행하고 예산회계법에 따라 일반회계로 정하면 끝날 일이다. 탄핵정국 훨씬 이전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받들면 된다는 말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야 하는 책무가 부여된 이번 국회에서 증세는 최종목적지가 아니라 시작이다. 실효세율도 아니고 명목세율의 부분적 인상이다. 그것도 2009년 25%였던 최고 법인세율을 이명박 정부가 22%로 낮췄던 것을 원위치 하는 수준이다. 명목세율 인상 이후 재벌대기업에 편중된 각종 지원금, 감면제도 등을 축소해 실효세율을 높이는 것도 20대 국회의 몫이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회군하겠다는 것인가. 그간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양극화 해소, 보편적 복지 등의 담론은 총선 구호용이었단 말인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주했던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탄핵을 받아 파산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촛불에서 확인된 국민을 믿고, 국민의 성원을 무기로 새누리당의 저항을 돌파해야 한다. 첨언하면 증세없이 누리과정 예산 확보 그 자체도 어렵다는 점에서 양자는 딜의 대상이 아닌 상호 보완관계다. 복지국가 지향이란 목표를 포기하지 않겠다면 야 3당은 이번 국회에서 증세안 입법과 함께, 누리과정 복지예산을 중앙정부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