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악질기업보다 근로시간 많은 근기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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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일본 악질기업보다 근로시간 많은 근기법 개정 과로사 걱정하는 일본 근로자보다 연 428시간 우리는 더 일하는데

기사입력2016-12-29 22: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내년 1월부터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로자에게 월간 80시간 이상의 연장근로를 시킨 기업을 ‘악질’ 기업으로 낙인을 찍고 기업명을 공개한다. 장시간근로에 따른 과로사가 잇따르자 ‘긴급대책’ 차원에서 일본정부가 현행 100시간인 악질기업 공표기준을 20시간 더 단축한 것이다. 일본의 법정근로시간은 한국과 동일하게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이와관련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직원에게 장시간노동을 시키는 ‘악질’ 기업명을 공표하는 기존 법률이 유명무실하게 된 바 있다”며 “이번 대책이 다소 강화됐지만,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잔업관행에 변화를 주기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긴급대책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한 이유는 지금까지 관련 문제로 기업명이 공표된 건수가 1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본내 장시간근로 관행 및 현실,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일본정부가 장시간근로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지난 28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난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만나 노동 4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이 어렵다면 가장 급한 근로기준법 등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자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가장 시급한게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라며 “노사정 합의만 봐도 15만개 정도 일자리가 늘어나고,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도 7∼8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이 국회입법을 요구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2023년 12월31일 일몰을 전제로 1주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휴일근로)가 허용된다. 이 경우 현행법에 따른 1주간 연장근로 법정한도 12시간에, 휴일근로 8시간이 추가됨으로써 1주 20시간의 연장근로가 인정된다. 월로 환산하면 86.8시간(20시간×4.34주)으로 일본정부의 ‘악질’기업 공개기준보다 6.8시간이 많다.

장시간 근로 막는 일본과 연장근로 인정하는 한국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163시간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OECD 평균의 1.3배에 이르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에 비해 1.6배 길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으로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보다 393시간 짧다. 1일 8시간씩 일한다고 단순계산하면, 한국의 근로자는 OECD국가 근로자보다 49일 이상을 더 근무하는 셈이다. 과로사까지 언급하며 장시간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긴급대책까지 발표한 일본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1735시간이다. 장시간근로에 따른 과로사 위험도로 보자면, 일본의 근로자보다 428시간이나 더 일하는 우리나라 근로자가 더 높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2023년까지 법정근로시간(40시간) 이외 월 86.8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한국의 근로자가 일본의 근로자보다 체질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라면, 이미 우리나라 상당수 근로자들이 과로사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본정부가 자국의 근로자에게 보낸 ‘배려’의 100분의 1이라도 우리정부가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일본은 과로사를 우려, 장시간 근로를 막기 위해 월간 80시간 이상의 연장근로를 시킨 기업을 ‘악질’ 기업으로 낙인을 찍고 기업명을 공개한다. 그런데 OECD에 따르면 일본의 근로자보다 우리나라 근로자가 연 428시간이나 더 일한다.<이미지 출처=이미지투데이>

또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월간 86.8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근기법 개정을 통해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도 7∼8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정책을 관할하는 정부 최고 책임자가 ‘주먹구구’를 근거로 일자리 창출을 전망하는 것도 웃기는 얘기다. 모르긴 해도 근기법 개정을 통해 새롭게 늘어나는 일자리가 없거나, 의미없는 숫자라는 것을 자백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공약을 통해 2020년까지 연평균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2017년까지 1900시간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고용정책이 고용률 70% 로드맵이고,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이었다. 2017년까지 1900시간을 줄이겠다, 2020년까지 OECD 평균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공약은 이미 물건너 갔다. 또 고용률 70% 목표 역시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월말 기준 고용률이 66.6%라는 점에서 공약(公約)은 그저 ‘공약(空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함께 ‘양질’과 ‘시간선택제’가 이론상으론 조화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현실에선 질 낮은 ‘알바’만 양산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된 유럽 선진국가들의 경우 자발적 시간제근로를 통해 ‘생계비’가 아닌 ‘가외소득’을 벌지만 우린 조건이 다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선 전일제 일자리가 없어 ‘강요된’ 시간제근로를 통해 모자란 최저생계비를 벌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양산정책은 ‘돈 먹는 하마’,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죽이기’와 본질에서 같다.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감면·지원 전면 재검토하라

청년실업을 포함 일자리가 없어 세대 불문하고 아우성이고, 정부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 또한 일자리 창출 시급성을 알기에 근기법 개정을 통한 7~8만개 일자리를 얘기했다. 맞다. 법정근로시간과 함께 연장근로시간, 실근로시간을 줄이면 고용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도 원칙적으로 연장근로시간을 현행법에 따라 1주 1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은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돈이다. 대기업은 지불능력이 있어 문제가 되지 않으나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문제다. 기업규모에 따라 적용시점을 달리는 연착륙방안도 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돈이 문제다. 답이 없지는 않다.

정부는 고용을 창출하거나 유지하는 경우, 세액공제 등을 통해 법인세를 감면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지원금이 기업규모에 따라 공제율의 차이는 있지만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도 지급되고 있다.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99%의 중소기업이 연구개발투자로 감면받은 세액은 9400억원이지만, 1%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이보다 두배에 달하는 1조8000억원을 감면받았다. 이외 각종 감면제도 등을 통해 대기업의 곳간에 돈이 넘쳐나 최순실 일당에게 수백억원씩 갖다 줬다. 이들 대기업에 지원하는 각종 특혜를 이제는 거둬 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돈을 중소기업에 돌려줄 수 있다면, 경영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실근로시간 단축 개정안을 중소기업에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법인세 인상 등 공평과세 원칙을 전제, 조세제도를 개편함으로써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보다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고,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더 많은 근로자가 일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고 세금도 내고,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복지에 기대지 않는 선순환 대책이다.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감면 그리고 정부의 지원책 모두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필요한 곳에 돈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중소·영세기업, 소상공인,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재벌기업에 퍼준다는 데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은 단 한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