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방 콩다방에 밀린 ‘독다방’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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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소상공인 별다방 콩다방에 밀린 ‘독다방’ 기억하십니까 시와 젊음과 사유 ‘바리스타 미스김’…대형 프랜차이즈 맞서 변신중

기사입력2017-01-04 10:44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70년대 독수리다방 모습. 지금은 사진 속에서 그 추억을 찾아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다방 한 구석에 있는 게시판에 메모를 남겨 약속을 잡던 때다. 한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뮤직박스 DJ가 LP판을 골라 음악을 틀어주던 어수선하고 촌스러운(?) 독다방. 그 독다방 1층 게시판에는 약속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전할 말을 적거나, 친구·연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둔 메모지가 빼곡했다. 젊음이 충만했던 신촌거리, 독다방으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아지트’였던 ‘독수리다방’은 1971년 처음 음악다방으로 문을 열었다.

독다방은 요절한 시인 기형도, 소설가 성석제 등 젊은 문인들이 자주 찾아 사유하던 곳이기도 하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의 시 ‘빈집’도 어쩌면 독다방에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45년이 지난 2017년. 서울 신촌역을 나와 연세대학교까지 가는 길 양옆으로는 건물마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 독수리다방은 연세대학교 정문을 마주한 곳, 예전 독수리다방 자리에 새로 지은 독수리빌딩 8층에 있다.

경영악화로 문 닫은지 8년뒤 손자가 다시 연 독다방

지금도 독다방 게시판에는 친구·연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둔 메모지 등이 빼곡하다. ©중기이코노미

70년대 독다방 바리스타 미스김(김정희 翁)의 손자 손영득 대표는 2013년 독수리다방을 새로 열었다. 2005년 경영악화로 문을 닫은 지 8년만이었다.

“독다방이 처음 문을 열었던 70년대 만해도 신촌 일대에 다방이 10개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신촌에만 100여개의 카페가 있죠. 할머니께서 지금도 독다방이 호황이던 시절을 말씀하시곤 해요. 당시 독다방에서 인기가 많았던 딸기쥬스는 80원이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새벽 4시면 딸기를 사러 남대문시장에 다녀오셨다며 당시를 회상하시곤 하시죠.”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세련된 인테리어와 새로운 메뉴로 무장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독다방은 점차 쇠퇴했다. 2005년 다방 문을 닫을 당시에는 다른 매니저에게 독다방 운영을 맡겨둔 상태였지만, 김정희 씨의 아쉬움은 컸다. 그래서 직장 다니던 손자가 독다방을 다시 해보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은 응원을 해준 것도 할머니였다.

2017년 독수리다방은 연세대학교 정문을 마주한 곳, 예전 독수리다방 자리에 새로 지은 독수리빌딩 8층에 있다(사진 위). 8층에 위치해 있다보니 찾아오기는 어려워도 연세대학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전망은 단연 뛰어나다. ©중기이코노미

손 대표는 50년 가까운 시간동안 사회도 급변하면서 카페라는 공간의 의미도 기능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요즘 대학가의 카페에서는 책을 펼쳐 놓고 토론하거나 노트북을 켜고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음악을 쉽게 접하지 못하던 시절, 음악다방은 국내외 음악을 함께 듣는 곳이었습니다. 90년대 들어 커피숍이 많이 들어서면서 DJ는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 됐죠. 2002년 월드컵 때는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TV를 보며 응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손 대표가 다시 문을 열게 된 계기는 “독수리다방이 갖는 역사와 상징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을 그냥 버려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서관처럼 꾸민 독수리다방 내부 모습. ©중기이코노미

2012년부터 창업준비를 시작한 손 대표는 현 시대의 청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주점과 패션상점, 다양한 카페가 즐비한 대학가에서 과거처럼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고, 옆좌석과 가깝게 테이블이 붙어 있고, 자욱한 담배연기에 어수선한 분위기의 커피전문점으로 운영할 수는 없었다. 혼자 오던 여럿이 오던 조용히 생각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손님들이 이곳을 도서관이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한다.

추억을 더듬어 독다방을 다시 찾는 옛 단골들

“주말이나 저녁시간이면 종종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은 과거 이곳에서 미팅을 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이곳에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하죠. 이제는 현재의 단골들이 2017년의 독다방에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흔한 대형 프랜차이즈 즉 별다방(스타벅스), 콩다방(커피빈) 브랜드도 아니고, 게다가 이들 브랜드 커피전문점처럼 접근이 쉬운 1층도 아닌 8층에 위치한 데다, 젊은 대학생들이 독다방의 추억이 있을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손대표는 “찾아오기는 어려워도 연세대학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전망은 단연 뛰어나다”며 “추억을 기억하는 옛 단골을 비롯해 젊은이들까지 단골고객은 하나둘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70년대 독다방 바리스타 미스김(김정희 翁)의 손자인 손영득 대표는 “예전에 독수리다방이 그랬듯, 새로운 모습의 독수리다방도 먼 훗날 청춘들이 모여 고민하고 생각을 나눴던 문화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중기이코노미

요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메뉴개발과 품질관리는 필수라는 손 대표. 그는 혼자하는 카페이다 보니 대형 프랜차이즈처럼 홍보를 할 수도 없고 고객에게 독다방을 알리는 일이 녹록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중소기업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입소문을 내는 것이 비용도 적게들고 가장 효과적”이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예전에 독수리다방이 그랬듯, 새로운 모습의 독수리다방도 먼 훗날 청춘들이 모여 고민하고 생각을 나눴던 문화공간으로 기억되길” 그는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