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만 늘고 직무개발 못한 ‘날림’ 임금피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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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인력만 늘고 직무개발 못한 ‘날림’ 임금피크제 공공기관 313곳 졸속도입…감액률 원칙없고 운영 비효율성 증가

기사입력2017-01-16 15:36

박홍기 기자 (phk4876@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정부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이하 권고안)’을 제시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였지만, 이로인해 공공기관 인력운용의 비효율성만 증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 공공기관평가과 모주영 사업평가관은 최근 발표한 ‘공공기관 임금체계 평가’ 보고서를 통해 “정년연장으로 인한 퇴직연장자의 증가분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하도록 함으로써 청년 신규채용 규모는 예전수준으로 유지됐으나, 퇴직이 미뤄진 고령 근로자는 조직에 남게 되면서 실질적으로 공공기관의 인력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시말해 임금피크제는 고령자의 고용을 연장 또는 보장하기 위해 일정 연령 이후의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조직내 중·고령인력이 잔류함으로써 조직내 인력이 늘었다는 얘기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임금피크제 졸속 도입…공공기관 ‘적합직무’ 개발 못해

모 평가관에 따르면 총 313개 공공기관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고령자의 임금을 삭감해 1793억원의 재원을 절감했고, 2016년 3/4분기 기준 2264명을 신규 채용했다. 대부분 청년채용으로 추정되는 ‘2264명의 신규채용’은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성과’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를 졸속 도입함으로써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인력운용의 비효율성이다. 정부의 권고안은 퇴직이 늦춰진 숫자만큼 신규채용 인원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인력증가는 예상했던 결과다. 정부도 이를 고려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적합한 직무를 개발해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 부여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기관의 업무·인력구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 권고안을 획일적으로 도입한 결과, 생산성 향상에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지 못하고 인력만 늘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정책실 정윤희 정책국장은 “임금피크제는 애초부터 정부정책을 그대로 집행한 것”이라며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보직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등 임금피크제 시행에 대한 검토와 대안은 애초부터 기관차원에서 존재할 수가 없었다”고 중기이코노미에 밝혔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른 ‘적합직무’를 개발하지 못한 1차적인 책임은 해당 기관이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권고안을 제시하고 도입시점까지 못을 박아 재촉함으로써 기관으로 하여금 적합직무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 정부 책임 또한 크다.

권고안 발표 7개월 지나 313곳 ‘광속도’로 도입…‘날림’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기획재정부는 2015년 12월 313개 전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5월 정부가 권고안을 발표한지 7개월이 지난 후다. ‘초고속’이란 말도 무색할 정도로 ‘광속도’다. 5월 권고안 발표 이후 정부는 그해 7월 임금피크제 도입여부를 경영평가에 반영한다는 방침을 내놓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했다. 또 8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연말까지 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연내 도입’이란 대통령의 지침까지 떨어진 마당에 직무분석 등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임금피크제 적합직무 개발은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정부 권고안의 기준을 그대로 베끼는 ‘날림공사’ 수준의 임금피크제를 일단 도입한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취재 결과, 인사노무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200명 수준의 기관에서 직무분석 그 자체만 실시하려 해도 전문가 2명 정도를 꼬박 투입해 1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임금피크제 직무개발은 직무분석 이후 기관의 특성을 분석하고, 직무개발을 위한 당사자 면담 등의 통상적인 절차를 고려하면 수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아울러 임금피크제 도입은 임금체계를 건드리는 것으로 노동조합과 합의절차도 거쳐야 한다.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법적절차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권고안 제시 이후 ‘7개월만에 도입을 완료했다’는 정부의 발표는 스스로 ‘날림공사’임을 자인한 셈이다.

실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에서 ‘개발’했다는 임금피크제 대상직무 자체는 극히 제한적이고 획일적이다. 모 평가관은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대상자 직무는 기존 직무와 차이가 없거나 사내교수·강사·연구·자문 등에 집중되면서 기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드시 필요한 직무에 인력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인력배치를 위해 기존 1인당 업무를 줄이거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새로운 직무를 개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옥상옥의 직무를 새로 만들었거나 생산성 향상과 무관하게 기존 직무를 둘로 쪼개 늘어난 인원에 분배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모 서기관은 “서둘러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데서 기인한다”며 “도입과정에서 임금조정률 및 인건비 절감액 산출에만 집중했다. 도입 후 고령 근로자에 대한 직무부여 등 실질적인 인력 운용방안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 관계자도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임금피크제의 실제 목적은 고용안정보다 구조조정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어서 개별 기관입장에선 정년연장자에 대한 별도직무를 개발할 유인 자체가 적다”고 말했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임금삭감률 석탄공사 22.5% vs 디자인진흥원 320%

이러한 인력운용 비효율성 말고도, 근로자 개인 또는 기관별 임금 형평성 문제도 불러왔다.

모 평가관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전 공공기관에서 평균적인 임금조정기간은 2.5년, 연차별 임금지급률은 1년차 82.9%, 2년차 76.8%, 3년차 70.2%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임금피크제 해당기간 동안 누적 임금조정률은 70.1%다. 임금피크제 평균 적용기간인 3년 동안 누적 평균임금 70% 수준, 근속기간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로자 입장에서 수용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평균이 아닌 개별 공공기관의 실태를 보면,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 모 평가관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대한석탄공사의 경우 3년의 조정기간 동안 매년 92.5%의 임금을 지급받아 누적 임금감액률은 22.5% 수준이다. 그러나 임금조정기간 동안 누적 임금감액률이 10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 기관도 한국감정원,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10개 기관에 이른다. 소속 기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200% 이상 삭감되는 기관은 모두 4곳이고, 이중 한국디자인진흥원은 320%를 삭감한다.

기관별 기존 정년, 정년연장으로 인한 퇴직연장자의 숫자,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절감재원, 신규채용인원 규모가 모두 제각각임에도 이에 대한 고려없이 정부 권고안 중심으로 도입한 결과다.

이와 관련 모 서기관은 “근로자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본인의 성과 및 생산성 변동과는 관계없이 기관의 인력구조와 임금체계에 따라 임금감액 정도가 결정됐다는 점에서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비용 분담방식이라고 수용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노조 한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로 추구하는 목표가 기관에 따라 다름에도 정부 권고안만을 고집한 사용자의 태도와 그것을 강요한 정부의 정책 때문”이라며 “각 기관의 특성을 고려한 자율적인 협상을 배제해 제대로 운용될 수 없는 불구의 임금피크제가 됐고, 노사갈등만 심해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