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 근로자 쥐어짠다고 해결될 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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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중기중앙회, 근로자 쥐어짠다고 해결될 일 아냐 저임금·장시간근로 스스로 옭아맨 동아줄…인력난만 심화될 뿐

기사입력2017-03-30 17:4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극심한 실업난 속에서도 2016년 하반기 기준 중소기업의 부족인원이 26만명, 미충원인원이 8만명에 달하는 등 중소기업계는 인력난을 겪고 있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생산차질과 인력부족 심화 등 직격탄을 맞을 처지에 놓여 있다.”

1주 최대 68시간까지 허용된 법정 근로시간을 1주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단축 협상을 진행했던 정치권을 향해 지난 27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던진 메시지다. 근로시간 단축 협상과정에서 제 정당간 의견이 모아졌던 부분은 근로시간을 1주 7일간 52시간으로 단축하자는 것이다. 또 근로시간 단축법안을 시행하되 300인 이상 기업은 2년, 300명 미만 기업은 4년간 유예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제 정당간 이견을 보였던 대목은 1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여부다. 또 휴일근로 할증률을 지금과 동일하게 50%로 할 것인가, 아니면 법원의 다수 판례 입장인 100%로 할 것이냐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중기중앙회는 “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중복할증을 인정한다면 중소기업이 부담할 연간 추가 인건비는 8조6000억원에 달해,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유예기간을 4단계로 세분 ▲1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휴일근로 할증률 50% 인정 등을 주장했다.

중기중앙회에 묻는다.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시기를 연장하고,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면 부족한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가. 또 휴일근로 할증률을 현행과 같이 50%로 법제화한다면 앞으로 “어렵다”는 소리없이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 두가지 질문 모두에 대한 중기중앙회의 ‘답’은 부정적일 것이고, 중기중앙회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일자리의 ‘질’이 나쁜데, 어떤 젊은이가 중소기업에 뼈를 묻으러 들어오겠는가. 또 근로자의 임금을 쥐어짜 대기업에 납품해봐야 원청업체의 불공정 거래행위로 인해 어려운 경영환경은 변하지 않고, 더 악화될 가능성 더 많다.

청년실업률이 10% 가까이 고공행진을 계속해도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눈길을 주지 않은 이유는 지금껏 중기중앙회 주장과 요구에 맞춰 법·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중소기업 스스로 저항하지 않은 결과,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갑질’은 이미 관행이 됐다. 가혹한 소린지 몰라도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대기업의 관행화된 수탈은 중소기업 스스로 옭아 맨 동아줄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사진)는 정부로 하여금 대기업 편향의 시장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중기이코노미

중기중앙회 주장에 따르면 최대 4년간 유예되는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생산차질’이 우려된다. 최대 4년 후 예상되는 ‘생산차질’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장시간·저임금구조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중소기업에서 버티고 있던 대다수의 청년들마저 중소기업을 떠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직원의 미래도 보장하지 못하고 기업의 미래도 불투명한 것이 중소기업이다. 게다가 저임금·장시간근로가 관행인 중소기업에 청년들이 남아있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2016년 기준 중소기업 필요인력이 26만명 부족하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부족분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임금 및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중소기업 스스로 개선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기업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임금 및 근로조건이 대기업에 근접한 수준으로 상향되면, 중소기업이 고민하는 ‘인력난’도 ‘생산차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올리면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이다. 정부가 매년 수십조 이상을 쏟아 붓고도 청년실업이 줄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취업정보 포털 구축, 실무와 무관한 교육훈련 등 주변적인 대책만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또 인턴, 공공근로사업 등 숫자 놀음을 위한 대책만을 반복하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질이 낮은’ 중소기업 일자리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질이 좋은’ 일자리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과세표준 1000억원을 대상으로 법인세율을 30%로 올렸을 경우 10조1000억원의 세수가 증대한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이재명 성남시장에 따르면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의 440개 대기업에 대해 법인세 30%를 부과하면 15조원의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부족 인력채용 등 중소기업이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돈은 8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440개 대기업에서 걷은 법인세 인상분 15조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수십년 이상 계속된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문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없애는데 8조6000억원이면 충분하다. 중소기업에 돈이 들어가야 내수시장도 확대되고, 최근 급증한 가계부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번 더 강조하자면 440개 대기업이 OECD 평균 수준의 실효세율을 부담하겠다고 양보하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공개한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분석’을 보면, 2011~2014년 삼성전자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12.54%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 1, 2, 3차 협력업체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4.98%로, 삼성전자의 1/3이 좀 넘는다. 자동화시스템 등 생산공정 효율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해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협력업체 평균의 3배 가까이 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우월적 지위에 따른 영업방식,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에 따른 차이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삼성전자를 포함 대·중소기업간 경쟁력 격차가 크고,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수단만 가동된다면 중소기업의 여건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다.

요즘 많이 하는 말이 억강부약(抑强扶弱)이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와 수탈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수직·종속적인 아닌 수평·대등한 힘을 가질 때 중소기업은 적정한 납품단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래야만 중소기업은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에게 적정한 임금을 줄 수 있다.

300만 중소기업을 대표한다는 중기중앙회가 해야 할 일은 정부에 억강부약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고용한 근로자에게 저임금으로, 장시간노동을 시키는 것은 대기업이 자신에게 했던 못된 짓을 반복하는 구태다. 어렵고 힘들면 약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에 대책을 촉구하면서 강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근로자에게 전가시켜서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악화될 뿐이다. 정부로 하여금 대기업 편향의 시장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것이 중기중앙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