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썩은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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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면세점…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썩은 공직사회 새 정부, 불법·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는 공직풍토 만들라

기사입력2017-07-13 15:4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면세점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면세점시장은 2016년 기준 12조원을 상회하는 독과점시장이다. 수요공급에 따른 경쟁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독과점시장의 특성상, 면세점 특허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 자체다.

지난 2015년 7월10일 면세점사업 특허권을 받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주식이 폭등함으로써 금융당국으로부터 집중조사를 받았던 사례는 특허권이 갖는 위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관세청의 면세사업자 선정발표 전일(9일) 6만원이었던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주가는 16일 17만원으로 치솟았다. 면세사업자 특허권은 6만원짜리 주식을 불과 1주일만에 3배 가까이 끌어올릴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해도 틀리지 않다.

재계순위 서열을 바꿀 수도 있을만한 힘을 가진 면세점 특허권이 일부 공무원의 사금고였다는 감사원의 발표는 정말 믿고 싶지 않다. 대통령을 포함 청와대 경제수석실, 기획재정부, 관세청의 수장과 실무를 담당하는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는 면세점 특허권을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데 사용했다. 지난해 연말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이게 나라냐’라는 자괴감 속에서도, 공직사회 주류는 여전히 ‘국민의 공복’으로 기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그 같은 생각이 잘못됐음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공직사회는 저 꼭대기에서부터 저 바닥까지 모조리 썩었다는 것, 그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라고 했다. 이쯤되면 우리사회가 이 정도라도 굴러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일부를 전체로 착각하는 ‘일반화의 오류’이고,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항변하는 공무원도 있을 수 있다. 백번을 양보해 억울함을 이해하더라도, 그가 조직내에서 동료와 상사들의 불법행위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보자. 면세사업자 특허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것은 해당업무 관련부서 공무원이면 모를 수 없다. 주무관청은 관세청이다. 그런데 시작은 대통령에서 출발했다. 2015년말 대통령은 뜬금없이 ‘관광산업발전을 위한 방안’도 아니고 전국의 면세점도 아닌, ‘서울 시내면세점’을 콕 집어서 신규특허를 발급하라고 경제수석실에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시점은 같은해 7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5장의 신규특허를 발급해, 면세점시장은 이미 과포화상태에 접어든 때였다.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을 포함 경제수석실은 이에 대한 판단은 안중에도 없었다. 감사원 감사결과 확인되진 않았지만, 면세점 특허권을 특정기업에 주는 대가로 사적이익을 취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재부는 한술 더 떴다. 면세점 추가 수요가 없음에도 관세청장이 통계수치와 서류까지 위조해 3개의 특허를 발급하겠다고 경제수석실에 보고했지만, 기재부는 자신의 몫 1개를 추가해 면세점 사업자를 4개로 늘렸다. 대통령과 경제수석실이 먹었으니, 자기도 한개 챙기겠다는 것외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관세청의 경제수석실 보고와 달리 기재부에 의해 면세점 사업자 1개가 추가된 이유에 대해 감사원은 설명하지 못했다.

특허권 주무관청인 관세청은 더 가관이었다. 관세청장은 기재부가 지시한 4개면세점 사업자 선정 요건을 맞추기 위해 담당 공무원을 동원해 온갖 서류와 통계를 조작했다. 특허권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도 내부정보를 이용해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주식을 사고 팔았다. 또 면세점 입찰 참여업체로부터 향응을 받아 관세청 자체 징계를 받은 직원도 있었다.

공공의 이익에 귀속돼야 할 특허권의 대가가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개인의 치부로 돌아가는데, ‘공복’중 어느 누구도 반발하거나 이의을 제기하지 않았다. 행정부가 독점하고 이미 발급한 숱한 특허권, 허가·인가권이 감사원 결과에서 확인된 것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믿기에는 감사결과가 너무 충격적이다.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두달이 좀 지났다. 장관 인선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내각의 틀이 조금씩 잡혀가고 있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주목한 적폐청산 부문은 정치, 국정원, 검찰, 언론 등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감사원 결과보고는 적폐청산 대상에 관료사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그것도 비중있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거칠게 얘기하면 국가지방직 포함 100만명을 조금 상회하는 모든 공무원의 사표를 받고, 하나하나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 재임용해야 할 정도로 쇄신책이 시급하다. 선량한 공무원이야 당장은 억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본인을 위해서도 고강도 혁신이 필요하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불응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범죄자 대열에 들어선 경제수석실, 기재부, 관세청 실무자의 전철을 밟기를 원하는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상사의 불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공직풍토가 조성돼야 신분안정도 보장되고, 국민의 공복으로서 책무도 이행할 수 있다. 또 공익보다는 사익을 취해 법률을 위반한 공무원에 대한 단죄가 선행돼야만 공무원 스스로도 범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

12조원에 달하는 면세점시장을 밥상위에 올려 놓고, 각각의 직급 및 지위에 맞춰 조금씩 뜯어먹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 감사결과에서 밝혀진 불법을 자행한 행정부처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이어 그에 상응한 처벌은 당연히 진행돼야 한다.

아울러 모든 행정부처에서 새롭게 취임한 신임장관은 업무와 사람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통해 적폐와 관련된 뿌리와 줄기 모두 들어내겠다는 각오와 함께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 도대체 어느 업무까지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할 것이냐고 되물어 온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그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장관직에서 물러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