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지침 변경해서라도 재벌개혁 의지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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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시행령·지침 변경해서라도 재벌개혁 의지 보여야 재벌 봐주기 없지만 재벌개혁 제도화 못해…금융위 개혁의지 의심도

기사입력2018-05-03 19:57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 정부의 재벌정책이 개혁성은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요약하면 과거 정부에서 횡행했던 ‘재벌 봐주기’는 사라졌지만, 재벌개혁을 위한 제도적 기틀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서울대학교 박상인 교수는 3일 경제정의실천연합과 여야 의원이 주최한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 1년, 무엇이 달라졌나’ 토론회에서 “과거에는 행정부의 ‘재벌 봐주기’가 횡행했다. 현정부 들어서는 재벌 봐주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재벌정책을 원칙대로 집행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재벌개혁을 제도화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달성하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가 경실련 전문가 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역대 정부에 비해 개혁성은 있지만, 정책 실효성은 떨어진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이상(53.7%)을 넘었다. 반면‘역대 정부에 비해 개혁성과 정책이 월등하게 앞선다’는 비율은 36.3%에 그쳤다. 재벌개혁 정책추진에 가장 필요한 점으로는 ‘구체적 계획 및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 확보(52.5%)’를 꼽았고, ‘정책실행 의지(20%)’와 ‘적합한 인사배치(15%)’가 뒤를 이었다.

<그래픽=조한무 기자> ©중기이코노미

“금융위 개혁의지 진정성 의심…분명한 신호 못보내”

박상인 교수는 현정부 재벌정책을 ‘자발적 변화 유도’로 규정했다. “기존 법률과 행정조치를 엄격히 집행하면서 재벌이 자발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다리지만, 지금까지는 별 효과가 없다”며 특히 “금융위원회는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제정 계획을 발표하고, 삼성에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하지만, 개혁의지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금융위는 지난 2월 금융자산이 5조원 이상인 삼성, 한화, 교보생명, 미래에셋, 현대차, DB, 롯데 등 7개 금융그룹을 대상으로 한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도입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보고·공시체계를 운영해, 금융그룹 대표회사가 금융그룹 자본적정성과 위험관리상황 등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감독당국과 시장에 보고 및 공시하도록 했다.

복잡한 그룹출자구조를 이용한 금융회사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제한하기 위해 자본적정성 평가제도도 도입했다. 금융사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면 자본(자산-부채)대비 자산비율이 늘어나 취약성이 악화하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기업집단내 금융사와 비금융계열사간 부실전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금융계열사의 추가출자를 제한하는 등 방화벽도 강화했다.

<자료=금융위원회>

금융위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법령이 제정되기 전까지 모범규준이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금융위의 금융그룹 통합감독제 도입 및 입법추진 일정에 대해 입법을 목표로 한다는 미명하에 금융위가 재벌정책을 국회에 떠넘긴다는게 박상인 교수의 분석이다.

박 교수는 “국회에서 통과가 안되면 금융위가 직접 시행령이나 지침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입법불발시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재벌이 순응하고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법 안되면 지침 바꿔서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박 교수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도 금융위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금융위가 보험업법 감독규정을 바꾸면 삼성생명을 압박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총자산이 약 250조원인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약 26조원 보유했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이 총자산 3%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명 총자산 8%를 상회한다. 그러나 보험업법 하위법인 보험업법 감독규정에서 3% 산정기준을 ‘시장가격’이 아닌 ‘취득원가’로 규정해 보험업법 규제에서 빠져나갔다.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보험업법 감독규정에 정한 3% 산정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장가격’으로 고치면 해결될 일을 ‘자발적 유도’라며 기다리는게 과연 진정성 있는 모습이냐는게 박상인 교수의 지적이다.

박상인 교수는 총수일가 갑질에 대해서도 “금고형을 받으면 주식회사 이사나 임원을 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상장요건에 넣으면 된다. 법으로 안되면 지침을 변경해서라도 관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재벌이 변한다”고 주장했다.

재벌개혁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도 비판했다. “공정위는 기업집단국을 신설하고, 위장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행정력을 통한 감시는 한계가 있다.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과 여야 의원이 3일 개최한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 1년, 무엇이 달라졌나’ 토론회. ©중기이코노미

공정위는 지난 3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오는 7월까지 개편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개편안에 대한 평가는 7월에나 가능하겠지만, 입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며 우려를 표했다.

“공정위, 상황을 통제한다는 착각 빠진 것 아닌가 우려”

박상인 교수의 공정위 비판에 대해 홍익대학교 전성인 교수도 가세했다. 전성인 교수는 “공정위의 재벌개혁 속도와 방향에 대해 이견이 있다. 정권초기에 힘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과 서두르면 다음 정권에서 뒤집어지기 때문에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며, “공정위가 스스로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우려된다.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고 있지만, 재벌은 시장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박병률 경제부 차장도 공정위 행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박 차장은 “김상조 위원장과 관료간 화학적 결합은 잘된 편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관료에 포획될 위험도 제기된다”며 “대표적인 예가 가습기살균제 부당표시광고 사건에서 검찰고발 당시 SK디스커버리를 누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SK디스커버리를 누락했다. 지난해 12월 SK케미칼에서 SK디스커버리가 분할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 공정위는 SK디스커버리를 검찰에 고발했고, 관련매뉴얼을 마련하기로 했다.

공정위에 가해진 거듭된 비판에 대해 공정위는 ‘지속가능성’과 ‘조사역량’을 강조했다. 공정위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은 “재벌개혁은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하게 추진해야 한다. 경제분야에서 몰아치기 개혁은 지속가능성을 조기에 상실할 우려가 있다”며 “법을 만들어도 기업들은 대형로펌을 활용해 대책을 만들어 빠져나간다. 법을 만드는 것 만큼 잘 집행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 조사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