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없는 정상대출, 단순변심에도 철회권?

프린트

Live 중기 ㅣ 산업뉴스 하자 없는 정상대출, 단순변심에도 철회권? 불완전판매 전제 없는 철회권 부여방안 논의

기사입력2015-06-01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구매한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경우, 소비자에게는 환불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와 별개로, 아무 조건이나 이유없이 단순 변심에 의해 계약을 철회하는 것 역시 법률이 정한 소비자의 권리다. 한국에서는 할부거래법, 방문판매법, 전자상거래법, 보험업법, 자본시장법 등에서 ‘청약철회권’을 소비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짧은 기간 이내에 아무 이유나 조건없이 계약을 철회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런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을 경우에는, 현재 소비자에게 계약철회권이 부여되지 않은 상황이다. 29일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대출성상품에 대한 청약철회권 도입 방안’ 세미나에서 서정호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금융위원회가 추진중인 대출성상품에 대한 청약철회권의 도입에 관한 경과와 쟁점을 소개했다.

서 연구위원에 따르면 대출에 대한 철회권 부여는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부적절하게 대출받은 소비자가 겪는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차원에서 대출에 대한 숙려기간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과거에 비해 금융상품을 접하기는 쉬워졌는데, 상품이 복잡해져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G20, World Bank 등 국제기구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대출 시 철회권 부여를 권고했고, 다수의 나라들이 이를 도입한 상황이다.

대출철회권 해외 사례

<자료=국회 정무위원회>

한국 역시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소비자정책 종합계획’에서 소비자에게 대출 시 청약철회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는 대출을 받은 소비자에게 7일 이내에 계약을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이 기간동안 대출에 대해 숙려하고 최적상품을 탐색할 기회도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7일이라는 숙려기간 내에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면 대출받은 돈과 숙려기간에 대한 이자를 돌려주기만 하면 되며, 중도상환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다. 금융회사는 대출 과정에서 받은 수수료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환해야 한다.

대출 시 청약철회권은 지난 2013년 새누리당 강석훈 국회의원이 발의한 금융소비자기본법에 포함돼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중인 이 법안의 50조는 “금융상품판매업자등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출성 상품에 관한 계약 또는 금융상품자문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일반금융소비자는 제23조에 따라 계약서류를 발급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서면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청약철회의 의사를 전달함으로써 그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국회 계류중인 금융소비자기본법 상 대출 철회권 관련 조항

<자료=국회정무위원회>

청약철회권은 아무 이유나 조건이 없는 계약철회의 권리이기 때문에,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 행사하는 소비자의 환불권리와는 개념이 다르다.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내용과 투자위험성, 약관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경우를 ‘불완전판매’라고 한다. 현행법은 불완전판매를 소송에서 입증하더라도 계약 자체는 유효하게 지속된다. 금융위는 불완전판매 시 소비자가 5년 이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계약해지권도 부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불완전판매라는 전제조건이 붙었을 때 적용되는 사항이다. 청약철회권은 짧은 기간 내에 아무 이유가 없어도 철회할 수 있다.

서 연구위원은 청약철회권의 대상에서 리스는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리스의 경우 목적물을 여신전문금융회사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계약을 철회하는 경우 여신전문금융회사는 목적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외의 대출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받은 대출에 대한 숙려기간을 제공한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철회권을 부여하지 않을 특별한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출 시 금융회사가 외부에 지불한 수수료의 경우, 계약을 철회한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서 연구위원은 밝혔다. 등록면허세, 지방교육세, 등기신청수수료, 인지세 중 은행부담분 등은 금융회사가 불가피하게 지불한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출모집인에 대한 수수료 등은 “추가비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계약철회가 가능한 신용카드 발급이나 보험상품의 경우, 모집인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있다.

청약철회권을 약용할 소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철회권 행사시 원금 등을 반환함과 동시에 적어도 약정이자율에 따라 기간경과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을 고의적으로 철회해 얻을 실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