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을 따라 걷는 야생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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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가족여행 바람의 길을 따라 걷는 야생화 천국 유철상의 가족여행 ⑲인제 점봉산과 곰배령

기사입력2015-08-14 15:27

유철상 객원 기자 (poetry7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점봉산 정상과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곰배령은 야생화 천국이다. 숲터널처럼 이어진 계곡을 걸어 곰배령을 정상에서 만나는 설악산 자락이 펼쳐지는 풍경은 첩첩산중의 매력을 안긴다. 산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바람의 길을 따라 여행을 나서보자.

곰배령 능선<사진=상상출판>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점봉산 일대는 남북방의 한계 식물이 함께 서식하는 천연림 지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생물다양성을 자랑하는 생태보고다. 설악산 대청봉 바로 남쪽에 위치한 점봉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호구역으로 봄이면 얼레지와 한계령풀, 피나물, 동의나물, 현호색 등이 서로 시샘하듯 군락을 이루어 피어난다. 높은 산, 무성한 나무들 사이에서 이렇게 풍성한 하늘꽃밭이 펼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들의 양식이 되는 애기앉은부채, 줄기를 꺾으면 붉은 액이 나오는 피나물, 귀부인다운 고상함을 자랑하는 연령초,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간직해온 속새, 봄바람에 가녀린 꽃대를 흔들어대는 꿩의바람꽃, 땅 가까이 수줍은 꽃을 피우는 족도리풀, 타오르는 별빛처럼 화려한 얼레지 …. ‘천상의 화원’ 점봉산 곰배령의 별칭이다. 정상에 서면 ‘하늘 아래 꽃밭’이란 표현에 걸맞게 광활한 초지에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다. 고지대에서 펼쳐지는 들꽃들의 향연은 7~9월에 절정을 이룬다.

곰배령 야생화<사진=상상출판>

곰배령은 원래 등산 애호가들이 은밀하게 즐기는 등산코스였지만 몇 해 전부터 입소문으로 알려져 주말마다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설악산의 웅장한 절경도, 지리산의 장엄한 기운도 없다. 기암괴석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크고 깊은 계곡이 어우러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상에 이르는 오솔길과 그 곁으로 늘어선 계곡, 곳곳에 숨겨진 야생화, 그리고 땀을 훔쳐낼 즈음 나타나는 산마루의 꽃밭, 이 네 가지로도 곰배령 트레킹은 충분히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는 매력이 넘친다.

해발 1099m에 넓게 펼쳐져 있는 평지는 온통 초록빛이 가득하다. 늦봄까지 내린 눈으로 인해 야생화가 기대만큼 만발하지는 않지만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진 곰배령의 능선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하늘에 있는 봄날의 꽃밭을 커다란 삽으로 떠서 살며시 내려놓은 것만 같다. 이 푸른 양탄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멀지도, 그리 험하지도 않다.

곰배령에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31번 국도에서 2차선 도로를 따라 귀둔리까지 들어간 후 이곳에 차를 놓고 입산하는 방법과 418번 국도를 따라 진동리에서 삼거리까지 들어가는 방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진동리 코스. 상부댐 진입로까지는 포장이 되어 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비포장도로라 일반 자동차로 가는 것은 약간 무리다.

곰배령 가는 길<사진=상상출판>

비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 정도 가면 유일한 학교인 진동분교가 예쁘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중간 중간 자그마한 규모의 음식점과 민박들도 만날 수 있다. 겨울철이면 설피로 만든 신발을 신고서야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많은 눈이 내린다는 설피밭을 지나 약 10분 정도 더 들어가면 진동삼거리가 나온다.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초입부분은 두세 명이 같이 지나갈 정도의 넓고 잘 닦여진 길이지만 강선마을을 지나면서 길은 좁아진다. 수풀이 우거져 있는 오솔길 옆으로는 강선계곡이 계속 이어지고 간간이 탁족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야트막한 소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를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얼레지, 금낭화, 쥐오줌풀, 연영초, 나리꽃을 비롯한 야생화와 산나물들의 활짝 드러낸 자태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햇볕이 뜨겁게 느껴질 즈음이면 곰배령에 가까워진 것이다. 약간 가파라진 능선을 따라 5분 정도를 오르면 드디어 너른 곰배령이 맑은 얼굴을 보여준다. 중앙에 우뚝 서있는 두 개의 장승 밑이 유일한 그늘이라고 할 만큼 곰배령 정상에는 커다란 나무가 없다. 10분만 있으면 산행을 하느라 땀에 젖은 윗도리가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바람이 불 정도니 나무들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하산하는 길은 정상에서 느낀 서늘함이 가시지 않을 만큼 수월하다.

남설악 바위 능선<사진=상상출판>

점봉산은 설악의 자락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유순한 매무새를 가지고 있지만 풍성하고 여유로운 모습 역시 간직하고 있으니 어머니를 닮은 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더욱 넉넉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그 넉넉함을 한 움큼 받아 안았기 때문일 것이다.

트레킹 하산길에는 진동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겨보자. 곰배령 아래쪽에 위치한 강선계곡과 진동계곡은 최근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유명한 계곡이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곰배령에서는 항상 1급수의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가족들과 함께 하기 좋은 곳은 진동교 부근. 방태산에서 흘러내리는 아침가리골과 만나는 지점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주변에 음식점과 민박, 화장실이 있어 편리하다. 계곡 가장자리에는 평평한 솔밭이 있어 야영하기에 적당하며 꺽지, 쉬리, 메기, 열목어 등을 낚을 수도 있다.

Travel Guide

가는 길=서울에서 팔당대교를 지나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으로 들어선다. 양평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홍천읍과 인제읍이 나온다. 인제읍에서 1.5km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합강교와 합강유원지가 보이면서 내린천이 시작된다. 곰배령은 내린천을 타고 가다가 현리에서 진동계곡 쪽으로 우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진동분교가 나온다. 진동분교를 지나 삼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등산을 마친 후 다시 418번 도로를 타고 포장 공사 중인 도로를 따라 약 10분 정도 내달리면 비포장구간은 끝. 꽃님이네 집이 나오면 왼쪽으로 곰배령 가는 길 이정표. 여기서 2시간 정도 등산.

잠자리=점봉산을 찾는다면 1박이나 2박을 예상하고 넉넉하게 스케줄을 잡는 것이 좋다. 진동교 주변과 쇠나드리 일대에 민박촌이 형성돼 있다.

볼거리=흔히 조경동 계곡으로 알려진 ‘아침가리골’은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개방되면서 유명해졌다. 아침가리골은 ‘아침나절 밭을 갈면 다 갈 정도로 땅이 적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 계곡이다. 아침가리골을 가려면 방동교를 지나 산길을 넘어야만 한다. 일반 승용차는 갈 수 없고 4륜구동 자동차나 트레킹으로 가야한다. 인근에 방동약수가 유명하다. 인제에는 수질이 뛰어난 약수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