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안정 정책과 예산, 맥을 완전히 잘못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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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고용안정 정책과 예산, 맥을 완전히 잘못 짚었다 실업을 전제한 사후책보다, 해고금지 등 고용총량 유지가 우선

기사입력2020-04-25 00: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월 취업자 수가 2660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대비 19만5000명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5월, 24만명이 감소한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 기록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의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일시휴직자도 160만7000명까지 치솟았다. 198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 증가 폭이다.

고용취약계층인 임시직이 42만명 감소했고, 일용직도 17만3000명 줄었다. 특히 임시직 42만명 감소는, 1998년 12월 외환위기로 44만7000명이 줄어든 이래 가장 큰 폭이다. 22일 정부가 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10조1000억원 규모의 고용안정 대책을 마련한 이유도, 이번 고용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2차 그리고 이번 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확정된 고용안정 대책, 특히 일자리 유지와 관련해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총 37조5000억원 예산(1·2차 비상경제회의 27조4000억, 5차 비상경제회의 10조1000억) 가운데 기존 일자리 존속과 직접 관련된 예산은 4조3000억원에 불과해서다. 고용안정 대책 예산의 약 90%(33조2000억)가 구직급여와 교육훈련 확대 등 실업자 지원, 신규 일자리 창출 부문에 쏠렸다.

김승수 전주시장과 고용 유관기관, 기업, 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전북 전주시 팔복예술공장에서 코로나19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해고 없는 도시’ 상생선언식을 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풀어쓰면 정부의 고용안정 대책은 ‘고용총량’ 유지가 아닌, 실업자의 생활안정과 재취업 촉진에 편중됐다는 말이다. 또 기존 일자리 존속 예산(4조3000억)에 근접한 3조6000억원을 투입해 저소득층·청년 등 취약계층 일자리 55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 또한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사업장 취업자 수 대폭 감소, 일시휴직자의 급격한 증가, IMF 당시보다 심각한 임시직 퇴출. 최근 수출지표까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이들 세 통계치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취업자·임시휴직자·임시직 통계치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55만개 아닌 100만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도, 지금의 고용위기 국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 수십조원를 쏟아 실업자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시켜본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뿐이다.

코로나19 재난에 따른 긴급 또는 특별하게 마련된 고용안정 대책은 일상시 대책과는 완전히 달라야한다. 신규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자 취업대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일자리 총량을 유지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책이 요구되는, 말 그대로 고용위기 국면이다. 기존의 관행과 통념의 틀을 깨고,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해법이 보이는 그런 위기국면이란 말이다.

다행스럽게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제안과 사례도 나왔다. 고용위기 극복방안으로 노동계는 ‘위기국면에 해고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고용총량 유지를 제안했다. 이에 화답하듯 전주시가 ‘해고 없는 도시’를 선언했다. 전주지역 노·사·민·정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 일자리를 지킴으로써,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겠다는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다.

해고 없는 도시로 가기 위해 전주시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6개월간의 보험료를 지원한다. 전주지역 모든 사업장을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해, 노사 모두에게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환경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에서 유급휴직자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부담해야하는 고용유지지원금(10%)의 절반을 전주시가 지원한다. 특히 전주시는 지역상생기금을 조성해, 상생선언 참여 사업주가 고용유지를 목적으로 대출받을 경우 2억원 한도 내에서 이자 차액 일부를 특별 지원한다. 이외에도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주에게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를 유예하고, 상·하수도 요금 등 공공요금을 감면해준다.

이런 정도의 지원책만으로 전주시가 해고 없는 도시가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전주시중소기업인연합회, 전주우수기업협의회, 전주시여성기업협의회, 전주금속가공소공인협의회 등 전주지역 사용자단체와 다수의 개별기업도 상생선언에 서명했다. 전주지역 고용총량을 좌우할 실질적인 당사자가 상생선언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타 도시대비 고용안정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코로마19 재난 극복을 위한 전주시 노사민정 관계자 모두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아울러 중앙정부에 촉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해고 없는 전주 모델의 확산을 기대하고 당부했다. 전국 단위에서 고용총량 유지 정책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주시 이상의 지원책을 뒷받침할 예산이 수반돼야한다. 이런 이유에서, 이미 확정된 고용안정 대책 및 예산은 수정되고 재편성돼야한다. 고용총량 유지에 방점을 찍은 고용안정 대책이 가동되면, 실업자 증가 폭을 최소한의 선에서 방어할 수 있다. 지금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실업사태를 막아야지, 실업을 전제로 한 사후대책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해고 없는 도시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의 불법·부당한 또는 공격적인 해고만큼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지해야한다. 해고 남발에 따른 실업급여와 교육훈련비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공세적 대응은 필수다. 그리고 해고를 최소화함으로써 절약한 사회적 비용을 고용총량 유지를 위한 정책과 예산에 집중해야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의 고용안정 대책과 예산을 완전히 뜯어 새로 짤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고용안정 대책과 예산 수립의 출발점은 고용총량 유지이고, 기업 지원여부를 가를 기준선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사용자의 약속이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