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 중요해진 나노사회…소비는 ‘우리’가

프린트

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나 자신’ 중요해진 나노사회…소비는 ‘우리’가 기업만의 강력한 ‘내러티브’ 중요…2022년은 올해 트렌드의 확장판

기사입력2021-12-28 11:00

과학의 발전 속도를 앞서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다. 과학이라는 것도 인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부터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렌드가 시작한다. 과학기술이 트렌드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과학기술이 창조되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인간과 사회’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이같은 트렌드를 읽는 눈과 스피드가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자를 끌고 가는 리더의 역할을 하려면 지금 이 시대 소비자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아야 한다.

코로나 시대, 살기 위해 ‘쪼개진다’…파편화된 나노사회

매년 다음 해의 소비 트렌드를 주요 키워드로 분석하고 제시하고 있는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학과)의 ‘트렌드 코리아 2022’를 보면, 인간의 특성을 꿰뚫는 ‘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2021년을 ‘카우보이 히어로(COWBOY HERO)’에 비유하며, 코로나 시대 변화하는 사회와 라이프를 조망하고 이런 사회흐름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했다고 했다. 내년에는 자신만의 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의 ‘심리’에 대해 더욱 집중해야 한다며, ‘타이거 오어 캣(TIGER OR CAT)’의 갈림길에 있다고 강조했다. 즉, 사회나 기업보다 진화 속도가 더 빠른 소비자들의 니즈를 얼마나 맞춰줄 수 있느냐에 따라 거침없이 포효하는 호랑이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내년의 10대 트렌드를 ▲극소단위로 파편화된 나노사회 ▲수입의 다변화를 통한 성장과 자기실현을 도모하는 머니러시 ▲희소한 상품을 얻는 득템력 ▲촌스러움의 힙함 러스틱 라이프 ▲즐겁게 건강관리를 꾀하는 헬시플레저 ▲10대 자녀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X세대인 엑스틴 이즈 백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만의 루틴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바른생활 루틴이 ▲가상·원격·현실의 경계를 매끄럽게 하는 기술 실재감테크 ▲상시 쇼핑시대 라이크커머스 ▲강력한 서사의 파워 내러티브 자본으로 나눠 제시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제시어는 ‘나노사회’다. 나노사회로부터 이 모든 제시어들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세분되고 극소 단위로 파편화된 초개인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스마트폰, 메타버스, AR·VR 등 과학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고립화의 원인이 되고, 코로나19로 인해 확산된 비대면이 정착되면서 이러한 나노사회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를 위한 삶 지향하면서도 소비에선 ‘공통분모’ 찾아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모두를 아우르는 방식이 실패하기 쉽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나노사회가 극대화될수록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드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2022년 제시어인 ‘라이크커머스’와 연결된다.

SNS와 알고리즘의 발달로 사람들은 쉽게 무언가를 찾을 수 있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그룹을 형성하려는 공동의식을 갖는다. 그리고 그룹 내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 상품은 이 그룹의 판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각종 SNS에는 ‘○○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활성화돼 있고, 이들은 서로 자신들이 구매한 제품을 추천하며 구매 상승효과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올해 트렌드였던 ‘CX유니버스’의 확장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CX유니버스는 고객 경험(Customer eXerience)의 약자와 마블 유니버스를 합쳐 만들어졌다. 브랜드의 충성도가 줄고 있는 지금, 고객이 상품과 서비스를 마주하는 경험을 기획·분석해 브랜드 팬덤을 만들고, 이들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고 확장해간다는 전략이다.

‘라이크커머스’ 현상은 사람들의 자랑하고 싶고, 우쭐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심리를 자극한다. 이러한 심리는 ‘득템력’의 유발로 이어진다. 김난도 교수는 득템력이란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대판 구별 짓기라 표현했다.

2015년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허니버터칩부터 시작해, 한정판이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되는 희귀 제품을 구매한 후 SNS에 자랑삼아 올리며 수많은 ‘좋아요’ 버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현대인들의 꿈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 물건을 구매할 정도의 정보력과 인맥, 시간이 있다는 과시와 차별화의 요소가 된다.

따라서 기업은 사람들이 정보·시간·인맥·정성 등을 총동원해 물건을 ‘획득’하고자 하는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내년에는 ‘TIGER OR CAT’의 갈림길에 있다고 했다. 진화속도가 더 빠른 소비자 니즈를 얼마나 맞춰줄 수 있느냐에 따라 호랑이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극소단위로 파편화된 나노사회 등 내년의 10대 트렌드를 제시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기업 ‘내러티브’ 중요…온·오프라인의 경계와 역할도 필요

과거 많은 기업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절감하며 상품과 기업의 이야기를 통해 감성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는 전략 방법을 취했다. 앞으로는 감정에 치우친 스토리텔링을 뛰어넘어 기업과 제품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 이들의 강력한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내러티브’가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는 강력한 서사를 갖추는 순간, 당장 매출이 보잘것없는 회사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올해 키워드 중 하나였던 ‘자본주의 키즈’와 ‘휴먼터치’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키즈란 돈과 소비에 편견이 없는 소비자를 지칭한다. 이들은 기업이 불공정하거나 가치관이 부적절하다고 여기면 불매 운동을 벌이고, 착한 기업에 대해서는 일명 ‘돈쭐낸다’라며 소비를 촉구한다.

휴먼터치는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영역에서 언택트화 됐지만, 이럴 때일수록 소비자의 구매력을 결정짓는 요소는 ‘휴머니즘’에 기반한 감성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비대면 시대 아이들을 케어해주는 인공지능 튜터, 대한민국 서민의 고민을 다룬 광고 등이 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모든 경제와 사회를 움켜쥐고 있는 지금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면서도 기업만의 강력한 ‘내러티브’가 있다면, 그 기업은 대중의 강력한 주목을 받으며 ‘타이거’로서의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이외에 ‘신재감테크’도 기업에서 주목할만한 키워드다. AR, VR,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에 익숙해진 시대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다양한 자극을 받고 즐기며, 생활의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간다. 따라서 기술은 가상과 원격, 현실의 경계를 매끄럽게 연결함으로써 더욱더 새로운 경험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최근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VR 기기를 사용해 가상세계에서 회의하는 ‘호라이즌 워크룸(Horizon Workrooms)’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페이스북이 이 기술을 선보인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기업에서 화상회의를 시도했지만, 비언어적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실제와 같은 회의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는 데서 착안해 개발했다.

이처럼 ‘신재감테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이끌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소비자의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신재감테크 기술에만 집중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온라인 쇼핑의 구매 비중이 늘어날수록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즉,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쇼핑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라는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볼 수 있지만, 팝업스토어가 세워지자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들에게 드라마 속 각종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놀이’로서의 공간으로 확장됐다. 동시에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홍보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따라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적정한 경계와 역할은, 함께 하지만 따로 하고 싶은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충족시켜 매출상승의 중요한 요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오프라인은 기업의 ‘내러티브’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면서 ‘놀이’를 즐겨 하는 젊은이들의 오감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힐링의 공간, 또 기업과 제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홍보의 공간이 될 수 있고, 온라인은 실제적 매출을 끌어올리는 창구의 역할을 기대하면 된다.

김난도 교수는 내년을 ‘팬데믹 혜택을 받은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간의 명암이 극심해지는 한 해’가 되리라 전망했다. 소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트렌드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