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정부와 국회가 ‘결자해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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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전세사기, 정부와 국회가 ‘결자해지’ 해야 한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명백한 사회적 재난…정부가 책임져야

기사입력2023-10-23 13:31

김주호 객원 기자 (dream@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

최근 수원과 대전에서 또 다시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확인되고 있다. 내년까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한 언론사는 전국의 악성임대인 176명이 보유한 주택이 약 2만7000채에 달한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최근 5년간 1000명의 임대인이 집 4만4000채를 매입했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에 접수된 피해신청 접수가 아직 1만 건에 미치지 못하고, 전세사기 특별법상 피해자로 결정된 이들의 수가 6627건에 불과하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가 얼마나 많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책 발표…누가 해당되는지 몰라요”=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지자체들은 인천 미추홀구, 부산, 경기도 구리 등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아주 일부 지역에서만 피해 현황조사를 진행하고, 전국적인 실태조사는 특별법이 제정된 지 6개월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또한 피해자 인정 신청서류를 제출한 6000여명 피해자들의 피해현황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전체 피해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잠재적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들이 어느 지역에 얼마나 있는지, 이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무엇인지 정부조차도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여야가 6개월간 특별법을 시행해보고 하반기에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정을 하자고 약속했던 것도 특별법에 명시된 대책들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해당이 되는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안을 시급히 제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6개월이 다가와도 제대로 된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최근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피해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대책을 이용한 피해자는 1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사기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전세사기 특별법과 지원대책을 개선해야한다고 요구할 때마다 정부의 답변은 한결 같다.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형평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당국의 입장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의 핵심이 피해자들이 조심하지 않아서 당한 사인과 사인 간의 범죄행위의 결과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전세사기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수원과 대전에서 또 다시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확인되고 있다. 내년까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참여연대>

전세사기꾼들이 어떻게 자기 돈 한 푼 없이 수천수백 채의 집을 사들이고 주택가격보다 많은 돈을 전세금으로 받아 챙길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지속해온 무분별한 대출 확대정책 즉 ‘빚내서 집사라, 빚내서 전세 살아라’정책으로 전세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사기꾼이 주택가격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아챙길 때도 공공기관인 보증기관과 금융기관은 별다른 검증도 없이 전세대출을 해주고 보증료와 이자를 받아챙기기에만 급급했다. 심지어 불법건축물에도 억대 전세대출이 집행됐고 정부가 공인한 중개사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미 수 차례 보증사고를 일으킨 악성임대인과 계약을 하는데도 아무런 안전장치는 없었다.

정부는 엄청난 세제 혜택을 제공했던 등록임대사업자들이 보증보험에 가입했는지, 무자본갭투기꾼은 아닌지 어떠한 관리도 하지 않았다. 건축주,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까지 결탁된 전세사기꾼들의 잘 짜여진 사기극에 오죽하면 경찰, 변호사, 기자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전세사기꾼들이 전국에서 수천 억원에 달하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챙기는 동안 사실상 정부는 없었던 셈이다.

◇명백한 사회적 재난, 정부가 책임져야=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들은 워낙 피해 유형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피해자가 100명이면 100가지 대책이 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그나마 많은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대책이 바로 ‘선구제 후회수’다. 정부가 피해자들이 이후 경공매를 통해 받아야 할 보증금을 일부라도 먼저 돌려줘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피해자들로부터 보증금 반환채권을 일괄 양도받아 투입된 자금을 회수하라는 취지다.

정부는 피해자들과 시민사회, 야당이 주장하는 이 방안에 대해 정부의 예산이 낭비된다거나 다른 범죄피해와의 형평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안 없는 반대만 일삼고 있다. 그러나 ‘후회수’를 통해 개개인이 진행해야 할 경공매 과정을 간명하게 진행하는 것은 물론 투입된 자금을 상당 부분 회수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반대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설사 일부 예산이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조 원의 국민 세금을 들여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정부가 정책 실패가 분명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유독 인색하게 구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오는 11월 정부와 국회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과 지원대책 개선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민생을 전면에 앞세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또 한번 생색내기 대책으로 책임을 회피할지 지켜볼 일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 전세사기 전국대책위 실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