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만 바라보다 무너진다” 하청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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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지금 중기에선 “대기업만 바라보다 무너진다” 하청 벗어나자 中企 위상 높아졌는데…“기술보단 대기업과의 관계 유지만 신경”

기사입력2016-08-09 00:0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국경제의 양적성장을 얘기하면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수출이다. 현대자동차가 생산·수출한 자동차와 삼성전자의 핸드폰은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설명하는 압축적인 키워드다. 일부를 제외하곤 산업단지 등에 있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1, 2, 3차 협력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한국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던 이들 기업은 그저 산업역군 정도로 말할 뿐이다.

2016년 중소·중견기업의 위상은 과거와 다르다. 기억되는 수준을 넘어 한국경제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이미 현대차와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특히 국내총생산이나 부가가치 창출, 고용의 측면에서 보면 중소기업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대기업 ‘고유’ 영역이었던 수출 증가세도 지난 1월 이후 19개월 연속 하락국면에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약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푸대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소·중견기업 위상은 높아졌으나=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생산액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46.9%에서 2014년 48.3%로 증가했다. 부가가치 비중은 2013년 48.9%에서 2014년 51.2%로 절반을 넘었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생산액은 절반가량이고 부가가치 창출의 경우 중소기업이 더 많다. 한국경제의 덩치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기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자료=통계청> ©중기이코노미

중소기업의 높은 부가가치 비중은 중소기업의 꾸준한 고용증가와 맞물려 있다.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임금이란 이름으로 근로자에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 고용인원이 늘어나지 않으니 부가가치 비중은 점점 하락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통계청 전국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고용인원은 2013년 1342만2000명, 2014년 1402만7000명이다. 국내 전체 고용인원중 87%에 해당한다. 반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상위 20개 대기업은 2013년과 2014년 56만2000명으로 변화가 없다. 2014년 대기업 전체 고용인원은 193만5000명이다.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경제학의 기본원칙에 비춰보더라도 정부의 경제운용 최우선 순위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어야 한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소·중견기업 비중도 2014년 33.8%, 2015년 35.9%, 2016년 38.2%로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의 수출비중은 중소기업이 늘어난 비중만큼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 대상이 기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소기업의 효율성이 낮은 이유는=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야를 밖으로 돌리면 중소기업이 갈 길은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효율성은 비교 대상국가인 61개국의 평균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16년 기준 70.7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61개국중 56위,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별국가와 비교했을 때 한국 중소기업의 효율성 수준은 독일의 47.6%, 미국의 52.8%, 일본의 92.9%다.

한국 중소기업의 효율성이 낮은 것에 대해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이정희 교수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대기업 하도급의 비중이 높으니 중소기업 개개의 독자적인 경쟁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수직 계열화된 원하청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대기업과의 기존 관계 유지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는 등의 경쟁력 강화는 당장의 과제가 아니란 얘기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홍성철 박사 또한 이 교수와 동일한 진단을 내렸다. 홍 박사는 “대기업 등 위탁기업 수요 맞추기에 급급한 단가나 R&D 같은 외부지원을 받기 위해 안전한 연구에 치중하는 현실 때문에 기술수준이 제자리를 걷는다”고 중기이코노미에 밝혔다.

정부 연구개발비의 중소기업 지원 비중(%)

<자료=중소기업연구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이 교수는 “자금,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자금도 자금이지만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로 인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R&D 역시 인력 인풋(투입) 대비 아웃풋(산출)이 나와야 하는데 낮은 임금으로 좋은 인재를 투입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재와 같이 심각한 수준의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어렵단 얘기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홍 박사의 해법 또한 이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홍 박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이런 격차는 하도급 거래에서 상대적으로 영세한 2차, 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간 양극화가 지속될 경우 중소기업의 고용, R&D 투자 감소로 이어져 중소기업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 잠재성장률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히든챔피언과 월드클래스 300=정부의 지원부재, 수직계열화된 원하청 구조 등 중소기업이 어려운 역경을 딛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춰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연도별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회귀를 검토한 중견기업 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2013년 14.7%에서 2015년 6.9%, 절반이하로 줄었다. 중소기업 졸업시 지원제도 ‘sliding down’ 등을 통해 피터팬 증후군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중견기업의 경쟁력은 외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가 바람직한 중견기업 모델로 상정한 것이 독일의 ‘히든챔피언’이다. 규모는 작지만 혁신·기술·품질 등을 앞세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한 중견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을 선정하고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히든챔피언’과 ‘월드클래스 300’기업을 2012년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평균매출은 4890억원 대 1760억원, 평균고용인원은 2037명 대 391명, 평균업력은 66년대 25.4년이다. 객관적인 수치만으로 비교해도 월드클래스 300기업은 히든챔피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견기업 육성과 관련, 중소기업연구원의 홍 박사는 “중소기업 졸업과 동시에 중단·감축되는 정책 가운데 중견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요를 파악하고, 특히 R&D 등 중견기업 투자금융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견기업 도약과 함께 지원절벽과 규제부담으로 성장기반이 취약해지지 않도록 지원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책 부재에 대한 지적은 중앙대 이 교수도 동일했다. 이 교수는 “중견기업으로의 성장도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조선업 구조조정만 봐도 대기업만 보고 있다 무너진 사례”라며 “결국 정부가 당장의 성과를 벗어나 중소기업이 독자 생존력을 키울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눈앞의 성과를 위해 응급처방만 내놓고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