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이어온 ‘소주’ 법고창신, 세계 술맛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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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천년이어온 ‘소주’ 법고창신, 세계 술맛 잡는다 조선시대 가양주 “名酒國酒 되는 것”…‘삼해소주가’ 김택상 명인

기사입력2017-02-05 15:33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삼해소주가’ 한옥에 들어서자 술향기가 먼저 반긴다. 서울시 전통식품 명인 김택상 장인이 권한 맑은 술, ‘삼해소주’가 담긴 잔을 입에 대니 구수한 곡물향과 달큼한 향이 코로 들어왔다. 알코올 농도가 45도라지만 목넘김은 부드러웠다.

‘삼해소주가’ 김택상 명인 ©중기이코노미

“‘소주’에 대해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곡물을 베이스로 누룩과 함께 발효하고, 숙성을 거친 후 맑게 증류했을 때 전통 소주가 되는 것이죠”

본래 우리나라 전통 소주는 곡물로 만든 약주를 증류해 만든 술이다. 조상들은 그 중에서도 쌀로 만든 소주를 으뜸으로 여겼다. 하지만 현재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 당밀 등을 원료로 만든 알콜이 높은 주정에 물을 타 희석한 소주다.

김 명인은 “삼해소주는 쌀을 이용해 만든 고급주로, 예전부터 사대부 이상 신분에서 마실 수 있는 귀한 술이었다”고 소개했다. 쌀 25kg으로 술을 빚으면 400ml 소주 40병이 나온다. 들어가는 쌀에 비해 만들 수 있는 양이 적어 비싼 술이지만, 다른 곡주에 비해 맛이 변하지 않는 고급 술이라는 설명이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삼해소주가’ ©중기이코노미

전통 소주 중에서도 삼해소주는 고려시대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는 궁에서 행사나 의식 때 사용하던 술이었으나 사대부 집안의 가양주(家釀酒)로 전해졌다. 매년 정월 첫 해일(亥日-돼지날)에 시작해 2월과 3월 첫 해일마다 세번에 걸쳐 빚는다 해서 삼해주(三亥酒)다. 삼해주를 증류하면 삼해소주가 된다.

“예로부터 장은 말(馬)일에 술은 돼지(亥)날에 담는데 돼지 피는 선홍색으로 맑고, 말의 피는 탁하고 잘 엉기기 때문입니다.”

주 재료는 맵쌀과 찹쌀, 누룩이고 약주를 만들어 1~3개월 정도 숙성시킨 후 증류해 만든다. 오랜 시간 저온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맛과 향이 깊으며, 빛깔이 투명하고 뒷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가양주에 인생을 걸다

“삼해소주는 조선시대부터 집안대대로 빚어온 가양주입니다. 집안 며느리들을 통해 전해오던 제조법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30년 넘게 삼해소주를 빚고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쌀 25kg으로 술을 빚으면 400ml 소주 40병이 나온다. 들어가는 쌀에 비해 만들 수 있는 양이 적어 비싼 술이지만, 다른 곡주에 비해 맛이 변하지 않는 고급 술이기도 하다. ©중기이코노미

김택상 명인의 어머니 이동복 여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 삼해주 소주장이다. 일제강점기 전통주 기술전수를 막으려는 시도가 계속됐고, 1960년대는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된 시절도 있었던 탓에 명맥을 잇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60~70년대 김 명인의 부모는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며 삼해소주 빚는 일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삼해소주는 조선시대 한양이 본거지였기 때문에 1990년대 초부터 서울에서 술 빚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통천 김씨 집안에 시집온 어머니께서 이 일을 이어받아 이어오셨죠. 원래는 며느리가 이어받아왔지만, 워낙 고된 일이라 여섯형제 중 손재주가 많은 제가 물려받게 됐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늘 지켜보고, 어머니를 도와 술 빚는 일을 해온 김 명인이었다. 어렵게 이어온 전통이 끊기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어 1993년부터 어머니에게 본격적으로 삼해소주 제조법을 배우고자 할 때는 의견 충돌도 많았다. 현대기술로 더 편하게, 많은 양의 소주를 제조해보자고 의견도 내봤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고 한다. 쌀을 씻을 때도 거칠게 씻어서는 안되고 쌀을 불리는 시간도 맞춰야했다.

“어머니는 수백년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어져온 무형문화재라는 가치를 져버려선 안된다고 하셨죠. ‘편하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김택상 명인은 어렵게 이어온 전통이 끊기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어 1993년부터 어머니에게 본격적으로 삼해소주 제조법을 배웠다. ©중기이코노미

많은 양을 제조해 판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다. 김 명인은 “전통주 제조 고집을 지키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한다.

‘깊은 향과 품질’ 서양 명주에 뒤처지지 않는다

김 명인은 서양의 위스키나 코냑 같은 술만을 고급 술로 여기고, 우리 소주를 저급하다고 여기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깊은 향과 품질에서는 외국 술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최근에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체험이나 구매를 위해 젊은 사람들도 삼해소주가를 많이 찾는다. 언론을 통해 삼해소주가 해외로 알려지면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삼해소주가를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김 명인은 오는 3월 영국 캠브릿지 대학에서 우리 전통주 관련 강의와 시음회를 계획하고 있다.

삼해소주가에서는 삼해소주 외에 계절에 따라 다양한 가양주를 담고 있다. 봄에는 어린 솔잎을 따만드는 송엽주, 여름에는 배꽃을 이용한 이화주, 가을에는 야생황국을 이용한 국화주, 겨울에는 삼해소주와 동동주를 빚는다.

“술을 빚는 마음과 방식은 옛것을 따라야 하지만, 조선시대의 맛이 지금 세대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태도가 필요한 것이죠.”

“후학 양성해 세계에서 사랑받는 술 만들 것”

삼해소주의 다음 대를 잇는 사람은 김 명인의 며느리다. 삼해소주를 배우고 싶다며 먼저 청해온 며느리가 기특하고 고맙다는 김 명인은 현재의 제조공간을 더 넓히고 제조량을 늘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삼해소주를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며느리 외에도 정식 후계자 수업을 받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매주 삼해소주 제조법을 전수하고 있다.

“좋은 술이라 알려진 술은 모두 가양주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가양주가 명주(名酒)가 되고, 또 명주가 국주(國酒)가 되며 그 나라의 대표 술이 되는 것이죠. 삼해소주도 가양주로 시작해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으며 명주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사랑받는 술이 되는 것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