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고 있음을 준엄하게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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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우리가 기억하고 있음을 준엄하게 말해야 한다 ‘탄핵대선’…대통합은 적폐청산의 결과물이지 대립물이 아니다

기사입력2017-05-01 11:3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건대, ‘장미대선’이 아니라 ‘탄핵대선’이다. 장미꽃 향기를 음미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투표장에 갈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다. ‘뜻밖의’ 선거결과를 우려하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비장함을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잊지 말자는 것이다. 100일 이상 1800만 이상의 촛불이 생업을 뒤로 한 채 차디찬 광장바닥을 지키면서 표출했던 분노의 목소리를 말이다. 투표장으로 가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적폐’를 기억하고 투표를 통해 청산하자는 얘기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헌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민주주의 기제가 작동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이 ‘법치주의’란 미명으로 행정력과 공권력을 남용했다.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함으로써 국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촛불의 요구는 헌법과 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준수해야 할 주체가 국민에 앞서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더 이상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옆집 아저씨가 간첩으로 조작되지 않는 나라를 원했다. 공안정국에 맞서 복면을 쓰고 시위했다고, 대통령까지 나서 테러집단 IS로 취급하지 않는 나라를 염원했다.

대통령을 희화화한 그림만으로도 잡혀가는 나라였다. 방송사 보도국장을 회유하고, 안되면 협박전화를 통해 언론을 통제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종편을 통해 국민들과 야당을 겁박했던 정권이다. 민주주의 최소한의 전제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이란 딱지를 붙였다. 아버지가 만든 ‘국민교육헌장’의 추억을 잊지 못해, 국민을 ‘권력의 주체’가 아닌 ‘교육과 통제의 대상’으로 만든 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사고로 거들떠 보지도 않는 국정교과서 강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존엄을 지키라고 대통령을 만들어 줬더니, 국민의 자존심을 10억엔에 팔아먹은 정권이다. 국민들, 무엇보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대에도 무슨 권한과 자격으로 ‘불가역’, ‘최종적’이라며, 정부가 대못을 박을 수 있단 말인가. 나아가 국민들 성금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세워진 ‘소녀상’을 ‘철거’해 주겠다고 합의한 정권이다. 부모세대가 행한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추호의 죄책감도 없는 일본정부의 철면피도 그렇지만, 거기에 부화뇌동했던 박근혜정권이었다.

입만 열면 ‘안보’를 떠드는 정권이 한반도를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들었다. 최근 ‘한반도전쟁설’은 언론에 의해 왜곡 과장된 것이지만, 북핵문제를 포함 국제정세를 고려한다면 불안정한 국면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주적’이라고 떠들면서도, 정작 북한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를 가진 국가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 동향을 캐는 게 국가정보원의 주요 업무이자, 모든 업무다.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공격하는 댓글작업을 국정원의 본래 기능으로 만든 것이 박근혜정권이다. 국가공무원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한 국정원에 대해 검찰이 칼 끝을 겨누자, 검찰총장의 목을 날린 것도 박근혜정권이다. 이러니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의 이해관계 그리고 이들 국가간 전략적 균형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조차 획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정책이 좌표를 잡지 못하고, 실종된 이유는 박근혜정권이 국정원을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를 위해 사유화한 탓이다.

다른 무엇보다, 박근혜정권과 그 부역자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국가의 존재 목적 자체를 부정했던 세월호참사 때문이다. 아빠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엄마 품을 떠날 수 없었던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 304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죽음을 알려주는 차가운 바닷물이 자신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속에서도 엄마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아이들이다. 사촌동생에세 ‘선물을 못 사가 미안하다’는 말로 유언을 대신했던 우리의 아이들이다. 젓살조차 빠지지 않았던 우리 아들·딸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살아서 못한 말들을 신음처럼 토해내며 그렇게 천천히 죽어갔다.

박근혜정권과 그 부역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왜, 그들을 살리지 못했는가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다. 또 아이들을 엄마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라는 말 이외 어떤 일을 했는가를 물었다. 1000일 이상이 지나 세월호는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다.

세월호참사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고, 국가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알 수 없기에, 당시 국가가 했어야만 했던 의무를 복기하지 못했기에, 또 다른 세월호참사를 예방할 매뉴얼이 있을리 없다. 또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또 다른 세월호참사가 벌어져도 정부와 관료들은 ‘그대로 있으라’는 말만을 반복할 것이다. 진실을 규명하지 않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우리 국민에게 던져준 어두운 그림자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국가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최순실과 재벌기업의 곳간을 채우는데 사용했던 자들이다. 재벌대기업의 탐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관행을 방조하고 묵인했던 정권이다. 청년의 미래를 박탈해 ‘헬조선’을 만들었고, 절대적 빈곤에 빠진 노인들에게 폐지를 줍게 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한 것도 박근혜정권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하고, 법절차에 따라 진행중인 쟁의행위에 불법파업이란 딱지를 붙인 정권이다. 서민들에게 ‘빚내서 집사라’고 떠밀어 가계부채가 1300조원 이상, 국민 1인당 2600만원 이상의 빚폭탄을 떠안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유시장경제란 이름으로 재벌대기업에는 보다 많은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 박근혜정권의 부역자들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다.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기억해야 한다. 99%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1% ‘선민’만을 위한 정치행위를 심판해야 한다. 이번 탄핵대선은 역사를 잊지 않고 있음을 국민들이 분명하게 선언하는 ‘적폐청산’의 장이어야 한다. 또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적폐를 뿌리 끝까지 청산해야 할 역사적 소명과 함께 굳건한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도 ‘대통합’을 주장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대통합은 적폐청산의 결과물이지, 적폐청산과 대립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