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특허 목숨…증거제출 심판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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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특허변리 “오락가락 특허 목숨…증거제출 심판 때만” 심판 때 없던 새 증거 법원서 등장 ‘무효 판결’ 빈번

기사입력2016-05-26 12:00

A사는 경쟁사인 B사의 특허에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특허심판 당시 A사는 1개의 특허문헌을 증거로 내밀며 무효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허심판원은 B사의 특허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두 회사의 운명은 특허법원에서 엇갈렸다. A사가 11개의 새로운 특허문헌을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새 증거를 검토한 특허법원은 B사의 특허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B사는 허탈감에 빠졌다.

한국 특허 무효소송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25일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심판원의 유효판단이 법원에서 뒤집힌 비율은 2014년 기준 68.1%나 됐다. 특허무효 사건 10건 중 7건은 심판원과 법원이 다른 판단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특허 무효분쟁은 특허청 특허심판원→특허법원→대법원 세 단계로 이어진다. 고도의 기술적 판단을 요하는 특허소송의 성격을 고려해 특허청 산하 심판원에서 심판을 거치고, 불복할 경우 특허법원과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심판원과 법원의 판단이 자꾸 엇갈리자 ‘심판 무용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처럼 심판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증거제출 절차 때문이라는 것이 특허청 설명이다. 앞서 A사와 B사의 사례처럼 심판 단계에서는 없었던 증거가 법원에서 갑자기 등장하니 판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허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무효화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려있으니 좋은 일이나, 특허권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제도다.

특허청 류동현 심판정책과장은 25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2016 지식재산 국제 컨퍼런스에서 “심판 단계에서 제출하지 않은 무효 증거를 법원에서 자유롭게 제출할 수 있어, 특허무효 분쟁이 심판에서 정리되지 않고 소송으로 이어져 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분쟁 해결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떨어져 불복소송 제기율도 높다”고 지적했다.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증거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류 과장은 “심판 단계에서 모든 증거가 나오면 이후 2번 더 싸워볼 기회가 있는데 도중에 나오면 1번밖에 겨룰 수 없다”며 현행 제도는 특허권자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특허청 류동현 심판정책과장은 25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2016 지식재산 국제 컨퍼런스에서 “특허심판원에 모든 무효증거를 제출해 기술적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기이코노미

일본과 미국처럼 특허심판 단계에서 모든 무효증거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자는 것이 특허청 제안이다. 만약 심판이 종결된 다음 법원에서 유력한 증거가 나오면 새로운 심판을 열어 다시 심판을 받도록 하자고도 했다.

류동현 과장은 “심판원에서부터 모든 증거를 검토할 경우 (분쟁 당사자들이) 분쟁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며, 증거를 심판원과 법원에서 각각 판단하므로 특허권자의 권리 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쟁점도 있다. 일반소송에서는 자유롭게 증거를 제출할 수 있는데 왜 특허소송에서만 증거 제출 시기를 제한하느냐는 반론이다. 류 과장은 “특허법 자체가 기술적 전문성을 인정해서 나온 특별법의 형태다. 반드시 일반소송 체계를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최근 민사에서도 증거 제출 시기를 제한해 1심을 강화해야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특허소송에서도 이를 미리 적용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법원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다시 심판부터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절차라는 입장도 있다. 류 과장은 “특허권을 공격하느냐 방어하느냐에 따라 견해도 달라진다고 본다. 무효심판을 청구하는 쪽에서는 과도한 절차라고 볼 수 있다”면서 “심판 단계에서 모든 증거를 찾아 제출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심판원에서 분쟁이 종결되는 비중이 높아져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특허소송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