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손해배상액’ 감액 여지 많아 실효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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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징벌적손해배상액’ 감액 여지 많아 실효 적다 하도급·대리점법에 있지만 유명무실 “美 배상액 한도없고 강력 처벌”

기사입력2016-10-19 11:15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수급사업자에 대한 원사업자의 반사회·반시장적 갑질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분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징벌적손해배상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11년 이후 징벌적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단 1건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유명무실한 이유는 법에 공통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3배’의 범위가 기업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징벌적손해배상제가 대기업 또는 원사업자 등 이른바 ‘갑’들의 위반행위를 막는 억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경실련이 주최한 ‘신뢰경제의 효과적 수단으로써 CSR의 역할’ 토론회에서 한양대 김차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도입 이후 제기된 징벌적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창원지법에 계류중인 사건 단 1건이다. 배상명령이 내려진 경우도 법원이 아닌 노동위원회 단 1건이 있었다. 지난해 ‘기간제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에 의한 구제신청 사건에서 노동위원회는 2배의 배상명령을 결정했다.

징벌적손해배상제는 현재 ‘하도급법’과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 ‘기간제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적용한다.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의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감액 ▲제조 등의 위탁 취소·변경 ▲반품행위 ▲기술자료 요구 등이 있을 경우 실손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배상하도록 했다. 대리점법은 ▲대리점법 규정을 위반함으로써 대리점에 손해를 입힌 경우 ▲대리점이 구매의사가 없는 상품 또는 용역 구입을 강제하는 행위 ▲금전·물품·용역, 그 밖의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도록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 실손해액의 3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손해배상액 감액 여지 많아 수급업자 소송제기 꺼려

현행 징벌적손해배상 법률 명시 내용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중기이코노미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 법원은 하도급법 제35조 제3항에 따라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위반행위로 인해 수급업자와 다른 사람이 입은 피해규모 ▲위법행위로 인해 원사업자가 취득한 경제적 이익 ▲위반행위의 기간·횟수와 이에 따른 벌금·과징금 ▲원사업자의 재산상태 및 피해구제 노력 정도를 고려한다. 피해규모가 작거나 고의성이 덜 하거나, 위반행위의 횟수가 적은 경우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감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리점법 역시 내용은 동일하고 원사업자와 수급업자를 각각 공급업자와 대리점으로 바꾼 정도다. 손해배상액이 3배 범위로 제한적이고, 이마저도 감액할 여지가 많아 수급업자나 대리점들이 거래관계 단절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송을 제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행 3배 범위로 제한된 손해배상액 한도를 올려 원사업자의 위법행위를 막고, 수급사업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자는 견해가 있다. 이와 관련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배상액 한도를 늘리는 것 자체가 원사업자의 위반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법원은 늘어난 한도 내에서 여전히 제35조 제3항을 적용해 합리적인 배상액을 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중기이코노미에 밝혔다. 그는 “3배 한도 이내인 현행 하도급법 하에서도 법원이 수급사업자가 만족할 만한 배상액을 제시한다면, 지금보다는 징벌적손해배상제도 활용이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을 개정해 손해배상액 한도를 높여도 법원이 반사회·반시장적 갑질행위에 대한 단죄의지가 없다면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예를들어 가수 ‘비’는 지난 2009년 월드투어 공연취소와 관련된 소송에서 미국법원으로부터 808만6000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소송을 제기했던 클릭엔터테인먼트가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 금액은 150만달러였다. 법원은 클릭엔터테인먼트가 주장한 실손해액 이외에 배상액 480만달러 등을 가수 비와 당시 소속사였던 JYP에 각각 절반씩 배상하도록 했다. 징벌적손해배상액 규모가 클릭엔터테인먼트가 주장한 것보다 3배가 넘는다.

이보다 더 많은 배상액을 산정한 사례도 있다. 1996년 BMW스포츠 세단을 구입한 한 고객은 200만달러의 배상액을 받았다. 신차인 줄 알았던 차량이 출고전 문제가 있어 페인트칠을 다시 한 것이며, 완전한 새 차보다 10%정도 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이 고객이 차량을 구입한 가격은 4만750달러인데 법원은 BMW가 2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객이 손해봤다고 주장한 가치는 차량가격의 10%인 4075달러에 불과했지만, 490배의 배상액을 받은 셈이다.

이에 대해 입법조사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징벌적손해배상은 이원화된 체계”라며 “연방차원의 셔먼법은 3배 배상이 의무적이다. 반면 민사소송에서의 배상은 그 범위를 제한하지 않아 판례에 따르는 경우가 많고, 악의적이라 여겨지는 사안에 대해선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 미국 법을 따라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법원의 재량권은 민사소송, 배상범위는 특별법을 따르고 있어 징벌적손해배상제도의 억제력과 예방력이 약화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징벌적손해배상제도 유명무실…소극적인 공정위도 한몫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유명무실한 데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갖고 있는 정보력과 대응인력의 역량 및 수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원사업자의 주장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간의 이같은 격차를 공정위가 메워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위반사례를 발굴하고 제재에 나서는 한편 징벌적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도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0대 국회 징벌적손해배상 발의안 내용

<자료=국회> ©중기이코노미

반면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면 소송이 남발돼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또 동일한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사건으로 형벌을 받았는데도 민사사건에서 또 다시 징벌적손해배상금을 낸다는 것이 이중처벌이란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때도 비슷한 의견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소송건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송남발과 이중처벌이란 이유로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밝혔다.

징벌적손해배상제를 제조물책임법으로 확대 적용

한편 징벌적손해배상제를 제조물책임법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 리콜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으로 피해가 집단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이들 피해자에 대한 보상방안으로 제조물책임법에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2011년 하도급법에 도입된 후 2013년 남양유업의 갑질횡포가 사회적으로 문제되면서 2015년 대리점법에도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한 사례가 있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을 ‘제조상’, ‘설계상’, ‘표시상’의 결함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 중 ‘제조상의 결함’에 따른 법적책임의 요건인 ‘결함’의 존재, 그 자체는 입증하기 어렵지 않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설계상의 결함’과 ‘표시상의 결함’은 사정이 좀 복잡하다. 설계상의 결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설계방법을 통해서 피해나 위험을 줄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또 표시상의 결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경고 또는 주의 등 표시를 통해 피해나 위험을 줄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입증책임도 쉽지 않지만 설계하고 표시하는 방법 또는 행위의 정도가 불법행위 기본 요건인 고의성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제조물책임법에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경우 각각의 유형에 맞는 법정요건을 구분해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개정안…징벌적손해배상 청구요건 완화, 배상한도 상향

20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징벌적손해배상제가 담겨있는 하도급법, 대리점법 등과는 별개의 ‘징벌적배상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보면 ‘타인의 이익이나 권리를 의도적으로 침해하거나 손해를 끼친 자’에 대해 ‘전보배상’과 별도로 징벌적배상책임을 인정한다. 피해자는 전보배상과 별도로 징벌적배상을 제기할 수 있는 것다. 박 의원안이 입법화되면 하도급법에 따른 하도급 관계가 없어도, 대리점법에 따른 계약관계가 없는 사인도 징벌적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 있다.

다른 한 방향은 징벌적손해배상액의 범위를 조정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안은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안에 따르면 현행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 부분은 ‘3배에 해당하는 배상책임’으로 변경했다. 또 법원이 징벌적손해배상액 산정시 고려할 사항을 명시한 제35조 제3항을 삭제, 감액 여지없이 실손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했다. 제조물책임법과 관련해 같은 당 오제세 의원안은 ‘3배를 넘지 않는 배상책임’을, 같은 당 백재현 의원안은 ‘12배를 넘지않는 배상책임’을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