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물 결함-피해 연관 소비자 입증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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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경제일반 제조물 결함-피해 연관 소비자 입증할 수 있나 정보 등 부족한데 입증책임 과도…20대국회 ‘추정조항’ 통해 완화 추진

기사입력2016-09-19 00:0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폐질환과의 연관성이 입증되면서 피해자 손해배상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진은 국회에 나타난 가습기 살균제품들.<사진=뉴시스>

폐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된 것은 2000년, 첫 사망자가 발생한 건 2002년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공론화되고 수사가 본격화된 시점은 2011년 보건복지부가 가습기살균제를 원인미상의 폐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한 이후다. 이 발표 후 피해자들은 옥시 레킷벤키저를 상대로 첫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환경보건법상의 환경성 질환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옥시 신현우 전 대표가 구속기소 됐고, 존 리 전 대표가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지난 2002년 첫 피해자 발생 이후 9년이 걸려서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던 것은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질환 사이 연관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9년여 동안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는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손해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제조업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함으로써 피해자 보호를 도모하고, 국민의 안전을 향상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와 국민의 안전 향상을 위한 제조물책임법이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5월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주최한 ‘옥시 재발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 : 제조물책임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동진 교수는 “제조물책임법은 결함제조물 공급자에게 2차적·보충적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며 “제조물책임법 시행 이후에도 소송이 크게 증가하지 않은 것은 법이 피해자 보호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함제조물 사용으로 인한 손해와 제조물 결함간의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결함제조물 공급자는 2차책임만 진다는 얘기다. 결함제조물 피해자들이 제조물과 그로인해 발생한 손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옥시 사건에서 보듯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조물 결함과 피해 연관성 입증해야 하는 제조물책임법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또 하나의 완제품에 다수 업체가 참여하고, 이에 따라 특정부품으로 인한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제조물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대여한 공급자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라 피해자가 손해를 배상을 받기 위해선 제조물의 결함과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강지원 조사관은 지난 13일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제조물책임법은 민법 750조의 ‘불법행위’ 법리가 준용된다”면서도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은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민법과 달리 피해자가 이를 입증하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 조사관은 “그렇기에 제조물책임법은 민법보다는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완화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입증책임을 완화했다고는 하지만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결함과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제조물 결함의 경우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들이 이런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또 인과관계를 증명할 핵심적인 정보를 제조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제조업자가 이를 내줄 리도 없다. 이에 따라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피해자 구제방안으로 제조물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거나,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증명책임을 제조업체로 전환하거나 ‘추정조항’ 만들어 완화

입증책임의 전환은 소송(주장)을 제기한 피해자가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의 상대방, 제조업체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는 민사소송법상 입증책임 분배 원칙의 예외적인 경우다. 입증책임이 전환되면 피해자는 제조물의 결함과 손해의 존재 그 자체만 입증하면 인과관계는 증명하지 않아도 주장이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반면 제조업체는 인과관계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010년 당시 민주통합당 박선숙 의원(현재 국민의당)에 의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입증책임 전환은 제조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무위원회는 박선숙의원안의 검토의견에서 “제조자가 결함에 대한 모든 증명책임을 지는 선진국의 입법례가 없고, 입증책임 분배원칙에 어긋나며, 소송남발 등 기업경쟁력 약화 등의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조사관은 “증명책임의 전환은 제조물의 결함 이외 환경이나 제3자의 행위개입 등 제3의 요인까지 제조업자가 증명해야 하는 만큼 과도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내용

<자료=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이에 따라 인과관계 입증책임의 ‘전환’ 보다는 피해자가 일정요건을 입증할 경우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입증책임 ‘완화’쪽으로 방향이 맞춰지고 있다.

실제 20대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들 중 이를 다루고 있는 법안들은 모두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영교 의원안, 한정애 의원안, 최명길 의원안은 ①제조물을 통상적(서영교·한정애의원안) 또는 정상적(최명길의원안)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②그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③그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하도록 했다. 또 ④제조물에 결함으로 생길 수 있는 손해와 동일한 손해가 발생한 때, 그 손해는 해당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정해진 방법에 따라 제조물을 사용한 것만 증명하면 제조물 결함과 손해의 인과관계가 증명되는 것이다. 오제세 의원안은 ①번과 ④번만을 명시해 한층 더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