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면세점을 팔려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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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국민연금, 면세점을 팔려했나? 한번만이라도 공명정대한 검찰, 결단력있는 검찰을 보고싶다

기사입력2016-11-24 19:4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검찰은 24일 롯데그룹과 SK그룹 그리고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날 검찰이 이들 기업과 정책당국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이유는 다음날 초 발표할 4곳의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과 관련해 불거진 의혹 때문이다. 의혹의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롯데·SK그룹과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대가성 기부금을 출연하고 면세점 특허를 주고받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어제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삼성의 미래전략실 그리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홍완선 한양대 특훈교수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다.

이틀 만에 재계 최정상권의 3개 회사와 기재부를 포함한 정부부처 그리고 공기업의 심장부까지 치고 들어간 검찰의 담력도 놀랍거니와 속도 또한 예사롭지 않다. 국정농단 사건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이후 박 대통령이 보여줬던 안하무인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뜻밖이다. 혐의가 있는 곳에 검찰의 손길이 미쳐야 한다는 ‘법 앞에 평등’ 원칙을 잊고 살았던 탓도 있다. 또 그간 권력의 시녀 또는 청소부 역할을 자임했던 검찰에게서 달라진 모습을 본 탓이기도 하다. 오늘 검찰이 보여준 공권력 집행은 그것이 정의실현이란 진정성에서 나온 것이든, 나락에 쳐박힌 검찰조직을 그나마 유지·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든 묻고 싶지 않다. 기자가 기사로 말하듯 검사는 수사결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면 된다.

삼성, 롯데, SK에 대한 수사결과가 두렵다. 의혹은 의혹으로 끝나고 이 정도에서 멈췄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삼성, 롯데, SK를 포함 재벌기업 총수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부금, 774억원의 성격이 박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것임은 애초부터 믿어 의심치 않다. 다만 기부금 출연에 대가관계가 있다고 해도 민원처리에 따른 ‘딜’ 수준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검찰 표현대로 ‘인허가상 각종 어려움과 세무조사의 위험성 등’ 불이익에 대한 우려에 따른 비자발적인 것이라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제 오늘 연이은 삼성, 롯데, SK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보면서 의혹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얼어붙은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자괴감에 몸을 가눌 수 없다.

그럴리 없을 것이지만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이란 자신의 가업을 승계받기 위해 21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가입한 국민연금을 밥상에 올렸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 204억원과 최순실 모녀에게 쓴 수십억 정도의 푼돈을 들여서. 이 정도의 돈을 받고 가업승계에 쓰라고 5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밥숫가락을 이재용에게 쥐어준 이가 박 대통령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 정도로도 설명조차 되지 않는다.

또 의혹이 사실이라면 지난 11월 두산과 신세계에 각각 면세점 특허권을 ‘빼앗긴’ 롯데와 SK는 꿩대신 닭, 서울시내 면세점 영업권을 얻고자 했다. SK와 롯데는 각각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 111억원과 45억원을 주고 말이다. 물건에 비해 돈이 좀 적었는지 롯데는 70억원을 더 건넸다가 돌려받았고, SK는 80억원을 요구받았다가 금액 조정과정에서 없던 일이 됐다. 어쨌든 미수금을 제외한 156억원에 면세점 특허권을 팔아먹은 셈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돈 욕심은 그렇더라도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던 박 대통령이 정작 국가·국민경제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올 상반기 문을 연 신세계, SM, 제주공항, 갤러리아면세점은 모두 적자상태이고 영업손실 규모만 모두 5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돈 받고 2개 면세점을 더 만들어 업계 자체를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국민연금 사유화 그리고 면세점 팔아먹기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직 현직에 있는 관료, 유력한 정치인들이다.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부역자들을 찾아 범죄 증거와 함께 이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워야 할 제1차적 책임은 검찰의 몫이다. 권력의 시녀, 청소부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뿌리깊고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정경유착에 단죄를 내릴 수 있는 공명정대한 검찰, 결단력있는 검찰을 한번만이라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