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횡령해도 풀려나는 재벌총수, 사면법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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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배임횡령해도 풀려나는 재벌총수, 사면법 적폐 집행유예 없도록 최저형량 높이고, 특별사면 제외 대상 조항 있어야

기사입력2016-12-20 06:3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죄명은 조세포탈 및 횡령과 배임이었다. 한해 앞서 2015년 광복절에 특별사면을 받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죄명 역시 횡령이다. 삼성은 역시 ‘클래스’가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2월 배임과 조세포탈을 저지른 이건희 회장을 1인 특별사면한다고 발표했다.

<자료=새누리당, 18대 대선 인수위 홈페이지> ©중기이코노미

횡령과 배임죄에 대한 사면이 쉽게 이뤄지는 것도 문제지만, 집행유예를 통해 실형을 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 등에 대해서는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고,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권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인수위를 거치며 수정됐고, 결국 ‘헛공약’이 되고 말았다.

수천억 횡령했는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공식 여전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재벌총수들의 죄목을 보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배임 및 횡령, 오리온 담철곤 회장은 횡령,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배임·횡령,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은 횡령 등이다. 재벌총수의 범죄행위를 보면, 배임 또는 횡령이 끼어있지 않은 경우를 찾기 어렵다.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총수에 대한 집행유예와 특별사면이 매년 관행처럼 되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에 출석한 SK그룹 최태원 회장. ©중기이키노미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제1항 제1호와 제2호에 따르면, 형법 제355조(횡령·배임) 또는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를 위반한 경우 그 범죄행위로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제1호 위반시)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 ▲(제2호 위반시)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앞서 언급한 재벌총수들 모두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것이다.

특정경제범죄법상 가중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양형기준에 따른 이른바 ‘3·5 법칙’이다. 재벌총수들이 횡령이나 배임을 저질러도 그 금액에 상관없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는다는 공식이다. 여기서 3년이 중요한 이유는 형법 제62조 ‘집행유예의 요건’에서 ‘3년 이하 징역의 경우 정상참작 사유에 따라 1년에서 5년 이하 기간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선캠프는 당시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특정경제법상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들어 형이 선고된 사례를 보면, 2800억원대 배임을 행한 김승연 회장은 2014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3·5법칙이 적용됐다. 300억원을 횡령한 담철곤 회장도 2013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５년을, 557억원을 횡령한 강덕수 전 STX회장 역시 2015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정도면 위반한 법규정과 관계없이 또 횡령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범죄자의 신분에 따라 형량이 결정된다고 봐도 이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집행유예 불가’ 대선공약은 인수위에 들어오면서 ‘대형 경제비리 사건에서 검찰 구형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선고시 원칙적 항소’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재벌총수에 대한 형량이 대부분 항소심을 통해 감경되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여론의 눈치로 항소하기 어려운 재벌총수를 대신해 검찰이 ‘항소서비스’를 제공하는 격이다.

최저 5년에서 7년으로 높이면, 감경해도 집행유예 안돼

형법 제55조(법률상의 감경)에 따르면 법원이 ‘유기징역 또는 유기금고를 감경할 때에는 그 형기의 1/2’까지 감경할 수 있다. 현행 특정경제범죄법에서 최저형량이 5년 이상인 경우 법원은 2년6개월까지 감경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다.

<자료=국회> ©중기이코노미

경제개혁연구소의 위평량 연구위원은 19일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들어 법제도에서 이와 관련해 바뀐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7년 이상을 기본으로 함으로써, 법원에서 감경을 해도 3년 이상의 징역이 내려져 집행유예가 나오지 않고 실형을 구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정경제범죄법과 관련,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오제세·김철민 의원은 형량을 강화하는 발의안을 제출한 상태다. 박주민 의원안은 현행 ‘이득액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이득액 10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일 경우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 조항을 신설했다. 김철민 의원안과 오제세 의원안의 경우 모두 ‘이득액 50억원 이상일 경우’ 최저형량을 현행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이다.

‘3·5 법칙’ 벗어나도 ‘특별사면’이 걸림돌

3·5 법칙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특별사면이라는 수단이 남아 있다. 특별사면은 ‘사면법’ 제9조에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 및 복권은 대통령이 한다’고 명시된 대통령 권한이다. 이어 제10조에는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 및 복권에 대한 의견이나 사정을 보고하도록 했으며, 법무부장관은 보고에 앞서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치도록 했다. 사면심사위원회는 법무부장관이 위원장이며, 위원장을 제외한 8명의 위원은 법무부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하되, 공무원이 아닌 위원을 4명 이상 위촉하도록 했다. 사면심사위원 모두에 대한 임명 또는 위촉권을 법무부장관이 독점, 형식상으론 사면위원회 결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무무장관의 결정이다.

이에 대해 위평량 연구위원은 “사면법상으로는 법무부에서 대통령에게 제안하는 형식이지만, 사실은 대통령의 의견을 법무부가 검토하는 형태”라며 “대통령이 사면권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선캠프의 경제민주화 공약에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한다고만 나왔을 뿐 권한제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인수위는 대통령 임기동안 ‘사면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엄격하게 상신(上申)하겠다’고만 밝혔다. 기존 제도의 변화없이 대통령 마음대로 사면권을 행사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면법 관련,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과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찬대 의원안은 사면법 제6조(복권의 제한) 조항을 신설, ‘특정경제범죄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자와 ‘30대 대기업집단의 총수 및 전무이사 이상의 고위 임원’은 아예 사면대상에서 제외했다. 특별사면을 받을 수 없는 대상을 지정했고, 일반사면과 달리 현행법에 따라 국회동의가 필요없는 특별사면 역시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이혜훈 의원안은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한 경우와 동법 제4조 제2항 제1호 ‘재산국외도피의 죄’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