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들은 청문회에서 국민 용서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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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재벌총수들은 청문회에서 국민 용서를 구하라 ‘피해자 코스프레’ 안된다…정경유착 끊고 경제민주화 약속해야

기사입력2016-11-22 17:1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다음달 5일 예정된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청문회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GS그룹)을 포함, 9대 대기업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소환된다. 21일 여야 합의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총수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손경식 CJ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그리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범에 앞서 이들은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비공개 단독면담을 가진 이후, 재단출연금 총 774억원 가운데 삼성 204억, 현대 128억, SK 111억, LG 78억, 롯데 45억, GS 42억, 한화 25억, CJ 13억 등 모두 646억원을 기부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 면담 과정에서 재단출연금의 강제성 여부와 함께 출연금에 대한 대가를 받았거나, 약속했는지 여부 등을 청문회에서 밝혀야 한다.

청문회 소환에 앞서 이들 기업은 대놓고 반발은 못하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익명 뒤에 숨어 “진실규명 목적보다는 전 국민 대상의 ‘망신주기’ 이벤트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검찰이 최순실 사건 중간수사 발표에서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 출연은 정부 강압에 의한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렸는데, 굳이 총수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여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경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활동 위축’ 운운하는 상투적인 발언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승자박이고, 결자해지해야 한다. 우선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양식이 아직 남아 있다면 볼멘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다.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확인된 사실은 출연금 모금과정에 박 대통령의 강요가 있었다는 것까지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인 출연금의 대가성 여부나 출연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회사내 정상적인 회계절차를 거쳤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가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수십, 수백억원을 출연한 대가로 받은 것 또는 받게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면, 청문회 자리에서 털어 놓고 국민들에게 사죄와 함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 쓸데없이 자신들이 권력의 희생자인 척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말란 얘기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는 별개로 삼성은 최순실이 독일에서 설립한 회사 비덱스포츠에 컨설팅 비용명목으로 35억원을 송금했다. 이와 관련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삼성 고위임원들이 뇌물공여죄 혐의로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삼성은 지난해 5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지원을 받았다. 비선실세를 동원해 500조원이 넘는 국민의 재산을 재벌 3세의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는 의혹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출연금 액수 1위, 최순실 모녀에 대한 특별한 지원 등 모두가 설명이 가능하다.

롯데는 ‘형제의 난’ 이후 검찰의 내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70억원의 추가 출연금을 지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롯데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70억을 돌려받았다는 점에서 기수(旣遂)가 아닌 청탁 및 뇌물공여죄 미수범이다. 또 SK 최태원 회장, CJ 이재현 회장은 모두 사면을 대가로 거액의 출연금을 낼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 거액의 출연금 기부 이후 400억원대 횡령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던 SK 최 회장은 풀려났고, 1600억원대 기업범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CJ 이 회장도 다음해 사면됐다.

CJ E&M과 GS건설은 지난해 수백억대 적자가 예상됨에도 출연금을 아끼지 않았다. 도무지 일반인의 통념과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정황에도 입을 모아 ‘선의’라고 강변했던 이들이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른바 ‘선의’란 미명하에 출연금을 낸 경위만이라도 실토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미르·K스포츠재단, 청년희망펀드 등 6개 민간재단 등에 출연한 기업의 기부금 규모는 약 2164억원이다. 재정난을 이유로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복지공약을 취소 또는 후퇴하면서 증세요구를 원천봉쇄했다. 특히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법인세 인상 논의 자체를 막았던 것이 이 정부다. 박 대통령은 법인세 유지를 미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기업을 겁박해 돈을 뜯어내는 반국가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얼마 남지 않았다. 9개 그룹 총수들은 국민 앞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권력에 돈을 갖다 바친 대가로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반시장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아울러 더이상 권력에 기생하지 않고 버는 만큼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세금도 내겠다고. 이와함께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과 상생관계를 도모하고, 대기업에만 쏠리는 이윤을 중소기업과 가계 그리고 국민경제를 위해 나누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총수들이 청문회 자리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약속과 함께 실천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들이 짊어져야 할 짐은 출연금 기부에 따른 뇌물공여죄다. 또 정당한 회계절차를 밟지 않고 자금을 기업 밖으로 빼냈다는 점에서 배임 또는 횡령죄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형벌은 국민 모두가 이들 기업총수들을 반사회적·반국가적 기업인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질기고 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던 정경유착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아버리겠다는 의지와 실천을 이번 청문회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