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대금 깎기…언제까지 갑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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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하도급대금 깎기…언제까지 갑질할 것인가 수직·종속적 하도급시장을 수평·대등하게 재편해야 경제민주화

기사입력2016-12-20 21:3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깎은 대원강업㈜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990만원 부과했다고 19일 밝혔다. 대원강업은 2015년 4월부터 4개월 동안 철판 등 원자재 가격하락을 이유로 차량용 시트 등의 부품을 공급하는 12개 하도급업체와 납품단가를 내리기로 합의했다. 합의 후 대원강업은 인하한 납품단가 적용일을 합의시점보다 적게는 120일, 많게는 243일 소급적용해 2억9600여만원의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했다.

대원강업이 부당이익을 취한 행태는 한마디로 ‘악질적’이면서 범죄동기 측면에서도 ‘고의적’이다. 시장에서 ‘갑’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을’을 착취한 것이다. 그래서 대원강업이 받은 과징금이 1억원 좀 넘는다. 시장에서 또 경제적으로 약자인 ‘을’한테 금전적 손해만 3억원 가까이 끼쳤음에도 손해액의 1/3 가량 과징금만 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만 유별난 수직·종속적인 대·중소기업 하도급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솜방망이긴 하지만 대원강업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처분이란 제재를 받았다. 그래서 납품업체들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나. 대원강업이 시정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해 부당하게 감액된 하도급대금을 12개 하도급업체가 전액 돌려받았다고 해도 하도급업체는 ‘본전’을 찾지 못한다. 모르긴해도 대원강업은 공정위가 조사하게 된 경위가 궁금할 터이고, 조사결과 확인된 ‘내부고발자’를 ‘본보기’ 삼아 ‘응징’할 개연성이 크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제재수준이 너무 미약해 법을 준수해야할 기제로 작동되지 않는다. 만약 하도급법을 강화해 공정위가 법에 따라 부당이득금 3억원의 100배 수준이 300억원의 과징금(또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배상금)을 부과할 수 있다면 이같은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 약자인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고의적’, ‘악질적’ 범죄를 저지른 원사업자에게 100배 수준의 배상금이 사회통념상 과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사건에서 원사업자는 원자재 가격인하를 이유로 하도급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말이 요구지 현실에선 납품단가 인하통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경우 하도급업체 사정을 배려해 자발적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주겠다는 원사업자는 경험칙에 비춰 없다. ‘갑을관계’인 하도급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해 만들어진 제도가 하도급법상 납품단가 조정신청제도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하도급업체는 ‘원재료 가격이 변동된 경우’ 원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원재료 가격이 인상된 것을 전제로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까지만 보장한 것이다. 원사업자가 조정에 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납품단가 인상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재벌급 대기업들이 사회적 평판 등 이런 저런 눈치 때문에 응하기는 하지만, 원사업자가 눈만 찔끔 감으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다.

사문화된 조항이란 것은 지난해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300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중소제조업 납품단가 반영실태 결과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를 보면 납품단가 인상요청 경험이 없는 업체가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이었다. 인상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짐작대로 ‘거래단절에 대한 우려(26.0%)’, ‘인상요청이 수용되지 않을 것(24.7%)’ 등 원사업자의 ‘갑질’ 때문이다. 그나마 법상 존재하는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은 ‘원재료 가격이 변동된 경우’에만 인정되기 때문에 인건비가 올라간 경우 또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생산비가 뛴 경우에는 중소기업이 알아서 해야 한다.

납품단가 조정신청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납품단가 조정신청 요건에 인건비 및 생산비 인상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또 조정신청을 한 경우 원사업자의 응락의무를 부여하는 방안, 납품단가연동제 등의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납품단가 조정신청제도 등 왜곡된 하도급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미비하거나 부재한 가운데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훼손을 넘어 결과적으로 시장 자체를 무너뜨린다. 중소기업, 하급업체의 협업없이 대기업이 모든 생산과정을 통제할 수는 없다. 수직·종속적 하도급시장을 수평·대등한 하도급 시장으로 재편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다. 아울러 우리 산업생태계를 지속 발전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하도급시장 건전화를 위해 법·제도·관행 개선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