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삼성공화국’ 보장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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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상법개정안 ‘삼성공화국’ 보장하겠다는 것인가 3당이 합의한 상법개정안에서 ‘1년 유예’ 부칙은 폐기해야 한다

기사입력2017-03-16 17:4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삼성공화국’이다. 삼성의 민원을 위해 국가기관과 국민연금관리공단까지 총동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심판을 받아 권좌에서 쫓겨났다. 그래도 여전히 삼성의 그림자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2년 가까이 병석에 있어도, 이재용 부회장이 구치소에 간 지금도, 아직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 삼성은 로비대상을 파면된 대통령에서 국회로 바꿈으로써 삼성만을 위한 공화국을 유지하려고 하는가? 탄핵정국에 무임승차해 현존하는 ‘최고권력기관’이 된 국회는 삼성의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상훈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은 지난 14일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방침을 밝히면서 “그룹 이슈와 관계없이 주주들에게 약속한 사안이기 때문에 차질없이 검토하고 예정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위해 속도를 내겠다는 얘기다.

국회가 화답했다. 상법개정안을 통과시켜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법적근거와 정당성까지 부여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3당은 지난 15일 ▲기업 인적분할시 신주 배정 금지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전자투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에 합의했다. 이들 3당은 3월 임시국회에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부칙을 통해 시행일은 개정안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키로 했다. 3당 합의 상법개정안의 진짜 ‘골자’는 지주회사 전환이 지상과제인 삼성에 던진 메시지다. 상법개정안이 시행되기까지 유예기간이 있으니, 1년 내에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팁’을 준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반영해 지난 2월 임시국회에 상법개정안이 상정됐고, 통과전망 또한 어느 때보다 높았다. 당시 상법개정안을 상정한 정당 역시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다. 상법개정안이 국회에 들어오자 삼성을 포함 재계는 온갖 억지와 궤변을 다 끌어다가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외국투기자본이 한국기업을 모두 접수한다’, ‘남발되는 소송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재계의 저항과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서 결국 상법개정안 통과는 무산됐다. 2월 임시국회 당시 상법개정안과 3월 임시국회에 올라갈 상법개정안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칙이란 이름으로 꼬리표를 붙여, 시행일을 1년간 유예한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 같다.

3당 합의 상법개정안의 진짜 ‘골자’는 지주회사 전환이 지상과제인 삼성에 던진 메시지다. 상법개정안이 시행되기까지 유예기간이 있으니, 1년 내에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팁’을 준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상법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이 인적분할하는 경우 자사주 신주 배정이 금지된다. 그리고 현행 상법에 따르면, 기업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의 2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시 자사주 비율만큼 신주를 배정받는 방식으로 대주주는 별도의 자본금 투자없이 자회사 지분요건(20%)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대주주의 재산이 아닌 기업의 지분 또는 주주의 공동지분인 자사주가 대주주의 기업지배권을 강화하고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인적분할의 마법’ 또는 ‘자사주의 마법’이란 표현은 그래서 생긴 말이다.

상법개정안의 취지는 자사주 신주 배정을 금지함으로써 자사주를 기업의 주주들에게 환원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자 함이다. 대주주의 편법적인 자산증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주주평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또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전자투표제 도입 등을 통해 재벌개혁과 함께 경제민주화로 가는 초석을 놓고자 함이다. 그럼에도 3당이 합의한 상법개정안은 대주주가 자신의 지분을 초과해 기업지배권을 강화하고,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반재벌개혁’ 법안이고 ‘반경제민주화’ 법안으로 폐기돼야 한다. 상법개정안을 입법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부칙조항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인적분할을 통해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전사 사업회사(자회사)로 재편하고자 하는 삼성 얘기를 해보자. 2만기업연구소에 따르면, 3월10일 현재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9.0%)이다. 이건희 회장(3.54%), 이재용 부회장(0.6%), 홍라희 前 삼성리움미술관장(0.77%) 등 삼성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쳐야 5%가 되지 않는다. 자사주 마법이 작동하지 않으면 삼성일가의 자력으론 자회사 지분요건(20%)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스럽게 이재용 부회장에겐 삼성전자의 자사주(13%)가 있고,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자사주 마법을 1년간 허용하겠다는 국회가 있다. 어디 삼성뿐이겠는가. 지분 이상 기업의 지배권을 확대하고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법으로 보장된 마지막 세일기간이다. 대한민국의 재벌·대기업·중견기업의 대주주는 너나 할 것 없이 유예기간을 틈타 지주회사 전환 러시 행렬에 동참할 것이다. 이쯤되면 상법개정안을 만드는 이유 자체가 궁금해지고, 누구를 무엇을 규제하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국회가 길을 잃었다. 그나마 ‘野’성을 가졌던 민주당, 국민의당은 다당제하에서 중구난방, 자신들이 하는 말과 행동의 의미 자체도 모르고 있다. 입으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떠들고 있지만, 정작 도장을 찍은 문서의 내용은 재벌체제의 보장이다. 재벌과 한 몸통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야권성향의 국민 대다수는 신뢰하지 않았지만, 혹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수표라는 것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유력 대권주자 모두 입을 모아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속한 당의 행보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역행하는 상법개정안 합의다. 당 따로 대권후보 따로다.

한번 속은 것으로 족하다. ‘公約’이 ‘空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당의 대권후보는 당을 대표해서 나왔고, 당의 후보로 선출되는 순간 현재 보직과 무관하게 당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선후보와 현재 당이 행한 정책이 다르다면, 자신의 공약에 맞게 당의 정책을 수정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대선후보의 요구에 당이 응하지 않으면, 대선후보에서 사퇴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空約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행동을 보여줘라. 3당이 합의한 상법개정안에서 부칙은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