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원더도 구입 ‘세상에 필요한’ 점자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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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스타트업·TIPS 스티비 원더도 구입 ‘세상에 필요한’ 점자워치 3억 시각장애인의 스마트기기…12월 출시 전 선주문만 13만대

기사입력2016-07-05 13:09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스마트점자워치 ‘닷워치’<사진=닷>

TIPS 지원사업 선정 ⑥㈜닷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디지털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디지털문명이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밝게 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전 세계 2억8500만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은 95%,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점자도서는 전체도서의 1%에 불과하다. 꼭 필요하지만 개발이 더딘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든 스물일곱살 청년은 세 번의 창업 전력을 바탕으로 가치있는 혁신을 이뤘다. 스마트점자워치를 개발한 스타트업 ‘닷’의 김주윤 대표는 ‘가슴 뛰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 대표가 건넨 하얀 명함에는 기자가 알지 못하는 문자, 점자들이 올록볼록 새겨있었다. 중기이코노미는 TIPS운영사와 함께 TIPS 지원사업에 선정된 업체를 찾아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닷은 2015년 5월 스마트점자워치 기술로 TIPS프로그램에 선정됐다.

하드웨어 스타트업 ‘닷’이 만들고 있는 스마트점자워치 ‘닷워치’에 담긴 가치는 따뜻하고 소프트하다. 미국유학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시각장애인 친구와의 만남이 ‘닷워치’를 고안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 일반책보다 두배이상 크고 무거운 점자정보단말기를 가지고 다니던 시각장애인 친구가 ‘기기가 불편한 것은 둘째고, 이 기기를 통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불편’이라 말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스마트워치 시대에 점자정보단말기 기술이 너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시각장애인 친구에 대한 관심이 사업 아이템으로

그 무렵 그는 시각장애인들은 디지털기기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관련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2억8500만명의 시각장애인들은 디지털 문명시대에서 여전히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꼭 필요하지만 아직 누구도 하지 못한 시장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세 번의 창업경험이 있는 김주윤 대표는 “첫 창업은 제3세계에 교육서비스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가슴이 뛰는 일이었지만 미국 유학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해 돌아온다’고 큰소리 치고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점점 트렌드에 편승하고 바로 현금을 벌수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닷워치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동돼 스마트폰으로 수신되는 문자를 점자로 바꿔준다. ©중기이코노미

세번째 창업은 유휴 트럭을 이어주는 우버 형태의 트럭 서비스였다.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고 CEO로서 영업을 다녔지만 그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김 대표는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왜 해야하는가 하는 고민에 힘들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째 사업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때 만나 가까워진 한 시각장애인 친구가 그동안 관심 없었던 세상을 그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친구들과 숙식하며 개발…세계최초 순수국산 ‘닷워치’ 탄생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이 뭘까?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그동안 창업도 하고 NGO 활동도 해오면서 가슴뛰는 일 그리고 사회를 좋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2014년 초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6월 동갑내기 친구 성기광 최고기술경영자(CTO)와 주재성 디자이너와 함께 용인 명지대학교 근처 원룸을 임대해 첫 사업 모의를 시작한다. 세 명의 공동창업자는 이 작은 방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7개월 동안 제품개발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 순수 국내생산 시각장애인용 스마트워치 닷워치가 태어나게 된다.

닷워치의 외관은 심플 그 자체다. 동그란 시계모양 화면에 24개의 점자핀, 이 핀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점자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심플하지만 혁신적인 이 디자인은 지난 2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독일 iF 디자인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지난 3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보조공학 장애인 컨퍼런스’를 찾은 스티비 원더가 닷의 시제품을 보고 즉시 사전예약 주문을 했다.<사진=닷>

닷워치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동돼 스마트폰으로 수신되는 문자를 점자로 바꿔준다. 닷워치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들이 모바일 뉴스와 SNS 소식을 읽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계·알람 등의 기능은 기본, 음성녹음 기능도 제공한다.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의 점자를 지원한다. 크기는 점자정보단말기의 20분의 1, 가격은 10분의 1로 줄였다. 3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뜨거운 반응…선주문 13만대, 스티비 원더도 예약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오는 12월 출시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출시도 하기 전 13만대를 주문했다. 350억원 규모다. 선주문자 중엔 미국의 팝 아티스트이며 시각장애인인 스티비 원더도 있다. 지난 3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보조공학 장애인 컨퍼런스’를 찾은 스티비 원더가 컨퍼런스에 참가한 닷의 시제품을 보고 즉시 사전예약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김주윤 대표는 “20년간 진보가 없었던 값비싼 기술을 10분의 1의 비용이 드는 적정기술로 재탄생 시킨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석으로 만든 점자 핀의 자력 간 간섭을 해결해야 하거나, 자석핀을 고정해 전력소비를 줄이는 문제 등 풀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업에 확신을 준 투자자들과 전세계 팬들의 지지 때문이었다.

스마트점자워치를 개발한 스타트업 ‘닷’의 김주윤 대표는 ‘가슴 뛰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중기이코노미

국내 시각장애인 수는 약 30만명. 그 중 점자해독이 가능한 사람의 비율은 5.1%에 그친다. 김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는 문자이고 점자를 안다는 것은 문맹을 탈피한다는 것이다. 점자를 배운 시각장애인들은 취업도 더 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관련 시장이 작고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점자시장에 나서는 기업도 많지 않아 소수 업체가 독점하다보니 발전도 더디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는 점자정보단말기는 시각장애인이 문서작성을 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꼭 필요한 장비다. 하지만 무게가 2~3kg에 달하고 크다. 또 300만원이 넘는 고가라 보급률은 2%에 그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000대 정도를 정부가 구입해 시각장애인에게 지원하고 있는데 경쟁이 심하다. 김 대표는 “선주문 고객 중엔 이 지원사업에 7번 떨어졌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임팩트 투자’와 맞닿은 사업…차원 다른 점자정보단말기 도전

닷의 사업방향은 최근 엔젤투자나 벤처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론화하고 있는 ‘임팩트 투자’와 맞닿아 있다. 임팩트 투자는 환경·복지 등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투자해 수익창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닷은 지난해 6월 TIPS프로그램에 선정됐다. 김 대표는 TIPS프로그램 운영사인 액트너랩과의 만남을 “운이 좋았고 궁합이 잘 맞았다”고 했다. 그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액트너랩에 투자를 제의한 것 자체가 도전이었는데, 액트너랩 조인제 대표는 첫 만남에 투자를 결정했다”며 “액트너랩은 창업초기부터 가족처럼 직원처럼 곁에서 관심을 가지고 조언해줬다. 또 적절한 시기에 TIPS프로그램에 추천해주는 등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중인 ‘닷패드’는 시각장애인이 혼자서도 점자를 학습할 수 있는 점자 태블릿PC다.<사진=닷>

닷은 최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술벤처 지원프로그램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에 참여했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저가형 모델 ‘닷미니’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닷미니는 10만원대에 보급된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중인 ‘닷패드’는 시각장애인이 혼자서도 점자를 학습할 수 있는 점자 태블릿PC다. 기존 점자기기들은 한 줄로만 표현이 가능한데 비해 닷패드는 여러 줄로 표현할 수 있어 이미지 표현까지 가능하다. 시중에 나와있는 이미지 표현이 가능한 기기는 가격이 1500만원 상당이고 크기도 매우 크다. 김 대표는 “닷패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점자정보단말기”라고 강조했다.

닷은 공공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닷워치의 핵심기술을 지하철에 적용하면 열차도착정보 등을 알려주는 점자전광판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윤 대표는 국내시장에 앞서 세계시장을 목표로 했다. “전 세계 시각장애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면 한국시장도 자연스럽게 담길 것”이라는 김주윤 대표. 서글서글한 외모와 다르게 뭐든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의 ‘악바리 근성’은 단순한 외관만으로도 단숨에 세계시장을 사로잡은 ‘닷워치’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