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협력 하도급 정착 위해 ‘공동도급제’ 실험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수평·협력 하도급 정착 위해 ‘공동도급제’ 실험 고질적 ‘수직·종속 관계’ 벗어나자…서울시 건설업 혁신 3불대책

기사입력2016-12-28 20:0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자유경쟁시장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는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악질적인 고질병이다.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는 최상층에 위치한 원사업자의 배만 불릴뿐 중간층과 하층에 있는 중소기업을 쥐어짬으로써 중소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또한 99%를 차지하는 다수 중소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함으로써 이들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는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까지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수평·협력적관계 구축은 지속성장 가능한 산업생태계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건설업계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지속성장 가능한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해 서울시가 발벗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8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를 수평·협력적인 하도급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안과 함께 ▲임금체불 등으로 인한 근로자 불안 해소 ▲부실공사 추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설업 혁신 3불(不)대책’을 발표했다.

수평·협력적인 하도급관계 조성을 위해 서울시는 ‘주계약자 공동도급제(이하 공동도급제)’를 강화하고 적용범위 또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공동도급제는 건설업계의 고질적 병폐인 원·하도급자간 불공정행위를 척결하고 부실공사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2010년 도입한 제도다.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가 공동으로 입찰·계약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전문건설사는 종합건설사의 하도급업자의 자격이 아닌 서울시와의 관계에서 계약당사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지금까지는 서울시가 종합건설사와 공사계약을 체결하면 종합건설사는 1개 이상의 전문건설사에 하도급계약을 맺고 함께 공사를 수행했다. 또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사가 또 다른 전문건설사와 재하도급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부실공사 논란이 일고 하도급업체 근로자의 임금체불 등 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박 시장은 “하도급-재하도급으로 내려갈수록 작업예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업체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하고 임금을 낮게 지급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공동도급제가 시행되면 직접시공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사가 적정 공사비를 확보해 부실시공과 산재발생을 예방하고 더 나아가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간의 상생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건설업계의 불공정한 하도급거래 관계를 바로 잡기위해 ‘3불대책’을 내놨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건설현장.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 ©중기이코노미

현행법에 따르면 공동도급제 적용대상은 지방자치단체 발주공사의 경우 2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추정가액 기준) 모든 건설공사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1~2015년 서울시(사업소, 자치구, 투자기관 포함)가 발주한 2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종합건설공사는 모두 2968건, 금액으론 총 3조4487억원이다. 이중 공동도급제로 발주한 공사는 529건(17.8%), 6138억원(17.8%)에 불과하다.

정부의 공동도급제 권고에도 이행률이 낮은 이유중 큰 부분은 하자책임 구분이 불분명해져 시설물의 하자발생시 수요자의 불편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로 종합건설사 측에서 제기하는 논리다. 그러나 지방계약법은 하자구분 주체를 구분해 분쟁소지를 예방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행률이 낮은 진짜 이유를 업계는 지자체의 의지부족으로 지목하고 있다. 공사 발주처인 지자체가 원도급사와 하도급사 모두를 관리해야 하는 이중적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공동도급 발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2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규모의 건설공사 전부를 공동도급제로 발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 이외 다른 지자체도 동일 또는 유사한 행보를 취할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공동도급제 시행 첫해인 2010년 전라북도가 공동도급제로 발주한 공사는 4건이었고 2011년에는 6건, 2012년 7건, 2013년 4건, 2014년 3건, 2015년 3건 등 총 27건에 그쳤다. 다른 지자체의 경우에도 사정은 이와 다르지 않아 지금까지 공동도급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평가받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서울시는 또 공동도급제 적용대상도 확대한다. 서울시는 내년 7월부터 100억원 이상 공사로도 확대 시행할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에 예규 개정을 건의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건설업 생활임금’ 지급을 내년 7월부터 의무화해, 건설업체가 근로자에게 시중노임단가 이상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서울시의 공사를 수주할 수 없도록 했다.

건설업계의 불공정한 하도급거래 관계를 바로 잡겠다는 서울시의 이번 3불대책은 ‘역사적인’ 실험이다. 역사적이란 수식어를 굳이 붙인 이유는 우리 산업생태계에서 가장 곪은 부분이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근원까지 도려내지 않고는 1%의 대기업만이 과실을 독식하는 우리 산업생태계를 바꿀 수 없다.

당장 우려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종합건설사, 또 이들과 이해관계가 같은 대기업들이 3불대책에 저항할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굳건한 의지, 서울시의 책임이 막중하다. 서울시의 실험이 성공해야 건설업에서 시작된 ‘경제민주화’가 제조업, 유통업 등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 산업계 전반에 경제민주화가 확산돼 자리를 잡을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공존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 재벌·대기업 편중의 경제구조를 근본부터 뜯어고칠 수 있는 역사적인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를 포함, 국민 모두가 관심과 함께 격려를 보내야 한다. 거듭 당부하지만 서울시의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