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편중된 富를 나눠 최저임금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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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대기업에 편중된 富를 나눠 최저임금 올리자 소비절벽, 내수침체, 가계부채 그 원인은 ‘쓸 돈이 없기’ 때문

기사입력2017-01-03 11:25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새누리당이 개혁입법의 일환으로 ‘매우 의미있는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여야협상을 제안했다.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2일 열린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그동안 두 야당이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이 심사숙고 해왔던 여러 법안들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설 용의가 있다”며 “특히 최저임금은 여야 논의 진전에 따라 매우 의미있는 수준으로 상향 조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가 제안한 ‘매우 의미있는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안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 야3당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정 원내대표가 ‘두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조만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여야간 협상테이블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특히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소상공인·중소기업이 의도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도 적극 마련하겠다”는 정 원내대표의 발언에 주목하고 싶다.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매년 반복된 문제제기였음에도 ‘답’이 없었던 중소기업·소상공인 그리고 자영업자의 지불능력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에 대해 집권여당이 나서 ‘대책 마련’까지 약속했다는 점에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협상과정과 그 결과가 예년과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 8시간 기준 일급은 5만1760원 그리고 월급으로 계산하면 주당 40시간 기준 월 135만2230원(6470원×209시간)이다.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 6030원과 비교하면 7.3% 오른 금액이다. 최저임금은 고용노동부장관이 매년 3월31일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 심의요청을 하고, 심의요청일로부터 90일 이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안을 결정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한다. 이후 고용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안 고시 등의 법정절차를 거쳐 8월5일까지 최저임금액을 결정하면 다음연도 1월1일부터 변경된 최저임금은 효력이 발생한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안을 고용노동부장관이 3월31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새누리당의 협상제안은 시의적절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4·13 총선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정의당은 2019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국민의당 또한 기간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근로자 평균소득의 50% 수준에 맞춰 1만원으로의 인상을 약속했다.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매우 의미있는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제안한 배경에는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세간의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최저임금 ‘현실화’에 대한 여야 정치권 합의가 이뤄진 만큼 이제 남은 일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재계,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여야 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은 ‘매우 의미있는 수준’이 어느 지점인가이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중소기업·자영업자가 추가 부담해야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 것인가 또한 쟁점이다. 두 쟁점 모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이와 함께 세밀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딴지걸기’에 휘말려 논의 자체가 공전할 개연성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수준’과 ‘중소기업·자영업자 지원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재계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하루빨리 협상의 틀을 만들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수준’의 경우 민주당안에 따라 2020년 1만원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3년 연속 15% 이상 유지해야 가능하다. 지난 10년간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 수준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비교적 높았던 노무현 정부 5년간에도 10%대에 머물렀다. 2%대 성장도 장담하지 못하는 저성장기조 속에서 3년 연속 15% 수준의 인상률을 관철하기에는 경제여건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을 인상률 15%에 주목하기 보다는 현재의 최저임금이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란 최저임금법 취지에 맞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보장, ‘행복추구권’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헌법 제10조가 죽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최저임금 수준을 2020년 기준 1만원 또는 그 이하, 이상으로 할지는 여야 협상과 함께 국민적 동의과정을 거쳐 결정될 것이다. 국가재정을 통한 지원은 불가피하겠지만 최근 어려워진 내외환경을 고려하면 그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지 않다. 시장의 불공정 경쟁에 따른 불공정한 이윤분배 구조를 공정한 경쟁 및 이윤분배 구조로 개선함으로써 국가재정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이 독점 또는 편중됐던 이익의 일부를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돌림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이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편의점의 경우 본사 수수료를 조정, 카드수수료 인하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상쇄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 하도급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납품단가를 연동시킴으로써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소득세, 부가세 등에 대한 공제 및 감면 확대도 검토할 수 있다.

어려운 때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은 현실 경제에서 가장 쉽게 사용하는 방안이다. 긴축정책이 순기능을 발휘할 있는 전제는 ‘수건’ 자체가 말라있지 않아야 한다. 소비절벽으로 표현되는 최근 내수시장의 극심한 침체는 급증한 가계빚 부담과 낮은 소득수준으로 소비여력이 바닥을 드러낸 결과다. 최저임금이 ‘최저임금이 아닌 기준임금’으로 작동하는 우리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고는 가계의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OECD 또한 ‘2016년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임금 격차에 따른 소득불평등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에 보고한 분석보고서를 보면, 전체 근로자 대비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 비중은 지난해 14.6%에서 올해 16.3%로 높아진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 근로자, 최저임금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근로자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인간다운 삶’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생산의 주체인 근로자가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갑을 채워주는 방법만이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의 가장 대표적인 주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다. 그러나 이 가설은 현실 경제에서 확인된 바 없고,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증가를 가져왔다는 보고도 있다. 또 자본 편향이란 비판을 받는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지난해 2월 주요 20개국 회의에 낸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 영향은 다소 과장됐다”고 밝힌 바 있다.

파탄 직전의 서민경제난 속에 진행되는 최저임금 인상 논의다. 내외 여건이 어렵다고는 하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 비해 대기업은 아직 여력이 있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여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가 한곳에 집중돼 있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만의 홀로 성장이 아닌 국민경제의 균형적 성장을 위해 대기업이 독점했던 부를 이제는 나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