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 저항있어도 공정한 사회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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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부자증세’ 저항있어도 공정한 사회로 가야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과감하게’ 최저임금 인상과 명목세율 인상부터

기사입력2017-07-10 17:2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시대’ 실현,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통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핵심사업 모두 돈이 필요하다. ‘일자리 추경’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이유도 부족한 재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한 여야간 이견과 힘겨루기, 결국 돈의 문제다.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계획중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재정지원 역시 돈이 문제다. 최저임금을 올해 당장 1만원으로 하겠다는 급진적인 방안도 아니다. 2020년을 목표로 하는 단계적 인상안임에도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대표한 5명의 사용자위원이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최저임금위원회 보이콧에 앞장선 이들은 PC방, 편의점, 슈퍼마켓, 주유소, 이·미용업, 일반음식점업, 택시업, 경비업 등 8개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률 감액을 주장했다. 이들 8개업종이 낮은 영업이익률 등 저부가가치업종으로 지불여력이 없다는 것이 감액주장의 근거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중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의 50%만 8개업종에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저부가가치에 따른 지불여력의 문제는 업종 스스로의 혁신노력과 함께 정부의 공정한 시장환경 조성 및 재정지원 등 복합적인 정책조합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가맹본부 중심의 현재 시장질서를 중소기업·소상공인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큰 틀에서의 방향이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경제운용 기조라는 점에서 시간이 다소 필요하겠지만,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단체와 새 정부간의 이해관계는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미준수율이 높다’는 현실에 근거해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며, 최저임금법 위반 범죄를 면책해 달라는 요구는 국가 법질서 체계를 부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또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에게 최저생계비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고 사용하겠다는 주장은 반인권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장에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는 행위는 공정한 시장질서를 저해하는 불공정행위다. 법정임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동종업종에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경쟁자에 대해 원가우위를 가져가겠다는 얕은 술책이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비난하면서 스스로 닮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할거면 사업을 과감하게 접는 것이 국민과 국가경제 모두에게 유익하다.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성실한 경쟁자를 위해서도, 최저생계비 미만을 받는 근로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그리고 스스로 범법자가 되기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무엇보다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한계상태에 이르렀다면 다른 업종으로 전업하든가, 직장을 찾아 전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자증세를 통한 세수확보에 이어 재정지원을 통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재정지원 등 분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지 못했다. 조세저항을 우려하는 바를 모르지 않지만, 지금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여건은 더 악화될 수 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 9명중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5명이 ‘최저임금 인상 저지’를 위해 ‘총대’를 멨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나머지 4명은 침묵하며, 내심으론 자신들의 대리전을 치르는 5명의 대표를 지지하며 판을 즐기고 있다. 시장에서 현재 점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기준으로 ‘갑’·‘을’·‘병’으로 구분한다면, 갑은 즐기는 반면 을과 병이 피터지게 싸우는 모양새다.

대기업 중심의 시장질서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지난 수십년 이상 독점했던 ‘갑’이 조금만 양보했다면, 최저임금위원회가 지금과 같은 파행을 겪진 않았을 것이다. 또 갑에 비해 약자인 을과 병이 한 목소리로 연대해 갑에게 저항했다면, 사정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빵조각을 둘러싸고 을과 병이 다투는 데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재벌개혁, 중소기업·소상공인 중심의 공정한 시장경제, 조세정의 실현, 노동존중 사회 실현 등 새 정부가 거대한 담론을 계속 제시하고 있음에도, 을과 병에게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오늘 당장은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다수에게 지불여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빈 곳간을 채워주겠다는 실질적인 계획과 함께 재정확충방안을 정부가 제시하지 않는다면, 을과 병간의 다툼은 계속될 것이다. 또 을과 병간의 갈등이 길어져 양자 모두 내상이 깊어지면, 이들 양자는 새 정부에 칼끝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갑과의 싸움이 상수인 상태에서, 정부는 을과 병 모두와의 갈등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 대다수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빠른 시간내에 최저임금 지불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도 준비됐고, 돈 또한 마련했다는 메시지가 을에게 전해져야 한다. 병에게도 조급증 내지 말고, 기다릴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한다. 머뭇거리는 지금, 정부와 을 또는 병과의 벌어진 틈새를 본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비난하면서 “국민들을 조롱하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필요하지만 장기적 재정에 부담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야당이 재정확대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아니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 “(파업하는 이들은) 미친놈들이야, 완전히. 이렇게 계속 가면 우리나라는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조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등의 막말로 노동계를 자극하고 있다.

국정지지율이 80% 전후로 고공행진중인 새 정부 초기인 지금은 먹히지 않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상한가를 치고 있는 국정지지율이 빠지면 야당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고, 이른바 개혁 피로증에 노출된 국민여론은 어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 바로 지금,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는 을과 병에게 분명한 메시지와 함께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정부의 ‘부자증세안’은 을과 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한참 모자라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했던 ‘소득세 과세표준 3억원 초과자 최고세율 42% 인상안’은 보류됐다. 그리고 기존 최고세율 40% 적용대상을 5억원에서 3억원으로 하향조정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최고세율 문턱을 3억원으로 낮춤으로써 최고세율 구간에 편입되는 납부자는 4만여명 수준이다. 또 소득세를 포함 법인세·상속증여세 등에 대한 명목세율은 건들이지도 못했다. 부자증세를 통한 세수확보에 이어 재정지원을 통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재정지원 등 분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지 못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있음에도,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중심의 시장질서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주저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모두 지불여력 압박감 때문에 새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에 선뜻 동참하기 어려운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전책을 충분하게 제시할 수 있을지 의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그리고 을과 병 모두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조세저항을 우려하는 바를 모르지 않지만, 지금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여건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실효세율을 포함 명목세율 인상 등 조세정의를 실현해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과감하게 열어야 한다. 다소 저항이 있을지라도, 저항을 극복하지 않고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