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아니라는 야쿠르트 아줌마…‘특고노동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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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근로자 아니라는 야쿠르트 아줌마…‘특고노동자’의 함정 개인사업자라 연월차 휴가·퇴직금 못 받고 노조설립도 못해

기사입력2016-09-07 16:31

이혜원 기자 (dipsy@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달 24일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한국야쿠르트 블로그>

야쿠르트 아줌마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4일 대법원은 한국야쿠르트 위탁판매원 출신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연차수당 지급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이므로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02년부터 10여년간 판매원으로 일한 A씨는 회사가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지시했고 사실상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했으니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는 A씨에게 정해진 출근시각이 없었으며 취업규칙 적용을 받지도 않았고, 판매량 할당을 주지도 않았으니 개인사업자라며 맞섰다.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다.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방송 구성작가, 퀵서비스 배달원, 대리운전기사, 화물운송차주 등이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처럼 보이나, 법적으론 근로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때문에 억울하게 해고를 당해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없으며 초과근로수당, 연월차, 4대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다. 근로자가 아니니 노동조합 결성도 할 수 없다.

특수고용노동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다. 직접고용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특수고용이라는 간접적인 형태로 고용관계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이영철 의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토론회에서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는 대부분의 근로자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직접고용돼 있었다. 사용자들이 근로계약서를 업무위탁계약서나 도급계약서로 바꿨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올해 들어서만 2명의 택배기사 과로사하며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법적으론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된 배달원도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고등학생인 B군은 2013년 산재보험 미가입 사업장인 배달대행업체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신청을 한 B군에게 요양급여 5000만원을 지급했다. 이어 근로복지공단은 배달대행업체에게 산재보험 미가입에 따른 미납된 보험료와 함께 요양급여 절반에 해당하는 2500만원 징수처분을 통지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산재보험 미가입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한 경우 미납 보험료 이외 산재근로자에게 지급된 보험금의 50%를 추가 징수토록 한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배달대행업체는 B군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도 아니고, 배달대행업체 역시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납된 산재보험료와 추가 징수금을 납부할 법률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1심과 같이 원고 승소판결을 냈다. B군은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배달대행업체는 산재보험 의무 가입 사업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B군이 배달업무를 하긴 했으나 배달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수락할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배달대행업체로부터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B군은 개인사업자로 볼 수 있으므로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 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와 관련, 한국노동연구원 정흥준 부연구위원은 “기술이 발달하고 고용관계가 복잡해지며 전통적인 방식의 정규직 고용관계 대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특수고용”이라며 “국가는 근로자 여부를 떠나 모든 성원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최소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