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는 노동절, 재정립 필요

프린트

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는 노동절, 재정립 필요 근로자 40%는 정상 근무…노동의 가치 존중받는 사회돼야

기사입력2019-04-30 18:15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일은 노동절이다. 근로자의 날이라고도 한다. 5월 첫날이라 ‘메이데이(May Day)’라고도 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날이라 워커스 데이(Workers’ Day)라고도 한다. 노동조건 개선을 외치며 자신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 시대의 노동절만 하더라도 노동자와 자본가간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라도 하듯 5월은 치열하고 뜨거웠다.

하지만 1986년 민주항쟁 이후 노동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회 전반으로 조금씩 뿌리 내기기 시작한 민주주의는 독재를 막아 내고 군정을 종식시켰다. 그 열기는 2000년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일상 곳곳까지 세밀하게 스며들었다. 이때부터 노동절은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복지’ 즉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식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아직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은 그저 평범한 하루 일뿐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1026명을 대상으로 올해 근로자의 날 출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0%는 근로자의 날 정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인 영세기업 53%, 중소기업(직원 수 5∼299명) 40%, 대기업(1000명 이상) 35% 등 규모가 작을수록 근로자의 날에 근무하는 비율이 높았다.

‘지인 회사는 쉰다는데 왜 우리 회사는 출근해야 하는거지’, ‘옆집 아이는 내일 부모와 함께 놀이동산을 간다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가정의 달 5월을 자괴감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아닐까. 노동절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휴일로 정한 법정휴일인데, 누구는 쉬고 어떤 이는 출근하는 날이 됐다.

학부모인 기자는 다행스럽게 노동절을 집에서 보낸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라도 가고 싶지만, 아이는 학교에 간다. 학창시절 가열차게 노동권을 외치던 남편도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노동절에 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노동행위가 이뤄지는 장소만 달라질 뿐, 맞벌이 부부에게 휴일은 오히려 노동강도가 더 강해지는 날이다.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 정도로 인식하던 시대는 분명 지나갔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절. 하지만 정작 그날 휴무 판단에 노동자 의지는 반영되지 않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현실이다. 한평생 일했던 직장에서 푸대접 받으며 쫓겨나는 일도 허다하다. 소공인이라는 이유로 노동의 가치가 폄훼되기도 한다. 개인을 위한 쉼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소중한 날이 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노동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날이 될 수 있도록 노동절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