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기준 뺀 파견과 도급 구분 “위장도급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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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정책법률 판례기준 뺀 파견과 도급 구분 “위장도급 합법화” 판례 ‘계약당사자 실체’ ‘계약 목적·내용’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

기사입력2017-01-10 00:00

박홍기 기자 (phk4876@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의 쟁점 사항은 ▲파견대상업무 ▲파견 절대금지업무의 범위 ▲차별시정 신청 당사자 요건과 함께 ▲도급과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이다. 도급과 파견의 구별기준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사업장에서 ‘위장도급’의 형태 즉 도급을 가장해 불법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불법파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현대·기아차 노사는 불법파견 논란에 따른 법정다툼 등으로 수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근로자파견’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 계약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파견법 제2조 제1호). 반면 ‘도급’은 수급인이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도급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민법 제664조)으로 수급인 스스로의 재량과 책임 하에 자기가 고용한 근로자를 사용해 일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불법파견 논란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위장도급은 도급계약에 따라 ‘수급인이 고용한 근로자(이하 하청근로자)’는 수급인의 지휘·명령에 따라 근로를 제공해야 함에도 실질적으로는 도급인의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형태를 말한다.

위장도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근로자를 2년이상 사용하면 정규직(직접고용의무)으로 채용해야 한다(파견법 제6조의2 제3호). 기업은 파견법에 따른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장도급 형태로 파견근로자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픽=박홍기 기자> ©중기이코노미

9일 현재 20대 국회에 도급과 파견의 판단기준을 담은 파견법 개정안은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안과 더불어민주당의 송옥주 의원안 등 2개가 계류돼 있다.

이완영 의원안의 핵심내용은 도급계약의 형식을 갖춰도 도급인이 하청근로자에 대해 노무지휘권을 행사하는 경우 등 개정안에 명시된 기준에 해당하면 근로자파견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의원안에 따르면 도급과 파견을 구별하는 기준은 계약 이행과정에서 노무지휘권을 누가 행사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반면 송옥주 의원안은 ①계약 이행과정에서의 노무지휘권 행사 여부를 포함해 ②계약당사자의 실체와 ③계약의 목적과 내용이 도급사업에 부합되는지 여부에 따라 파견과 도급을 구분한다. 이 의원안에 따르면 ① 요건만 충족하면 적법한 파견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송 의원안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①, ②, ③ 요건 모두를 갖춰야 한다.

◇파견과 도급 구분한 판례기준 제외…이완영 의원안=이완영 의원안에 따르면, 도급계약 형식을 갖춘 경우에도 하청근로자에 대해 도급인이 ▲작업에 대한 배치 및 변경을 결정하는 경우 ▲업무상 지휘·명령을 하여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경우 ▲근로자에 대한 근로시간·휴가 등의 관리 및 징계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그 밖에 앞의 3가지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는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

환경노동위원회 김양건 전문위원은 개정안 검토의견을 통해 “최근 판례에서 제시된 도급과 근로자파견의 구분 기준을 참조하여 법률에 직접 명시함으로써 파견과 도급의 구분이 어려워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하다”면서도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판례가 제시한 ‘계약당사자의 실체’, ‘계약의 목적과 내용’을 제외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옥주 의원안에 포함된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인 ②와 ③이 빠졌다는 말이다.

송 의원안에 포함된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은 판례의 기준과 같고, 고용노동부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과도 사실상 동일하다.

고용노동부 판단지침에 따르면 문제가 된 고용관계가 도급인지, 근로자파견인지를 구분하는 첫 번째 기준은 ‘사업주로서의 실체(계약당사자의 실체)’가 있는지 여부다. 사업주로서의 실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급인이 ▲채용해고 등의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고 ▲소요자금 조달 및 지급에 대한 책임 ▲법령상 사업주로서의 책임 ▲기계, 설비, 기자재의 자기 책임과 부담 ▲전문적 기술경험과 관련된 기획·책임과 권한을 보유해야 한다.

이같은 권한과 책임을 수급인이 아닌 도급인이 행사하고 있다면, 수급인은 도급계약의 당사자로서 실체 자체가 부정된다. 수급인의 실체가 없어지면 도급계약 자체가 부정되고, 이들 하청근로자는 도급인이 직접 고용한 것으로 추정한다(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이 의원안이 입법화되면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없어 불법파견임이 명확한 경우에도 원사업자(사용사업주)가 ‘도급관계’라고 항변할 경우, 불법파견에 따른 법률효과가 즉시 발생하지 않는다. 법원의 판결에 의해 불법파견임이 확정되기 전에는 원사업자(사용사업주)에 대한 형사상 제재를 할 수 없다. 또 하청근로가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발생하지 않는다. 현행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근로자를 2년 넘게 사용하거나 불법파견인 경우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를 직접고용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또 이 의원안은 도급인이 ▲산업재해예방활동을 지원하는 경우 ▲직업능력개발을 위해 수급인에게 훈련비용, 장소, 교재 등을 지원하는 경우 ▲수급인 근로자의 고충처리를 위해 지원하는 경우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금을 수급인을 통해 수급인의 근로자에게 분배하는 경우를 ‘원·하청 상생조치’로 규정하고, 도급인이 이같은 상생조치를 한 경우 도급관계로 본다.

<그래픽=박홍기 기자> ©중기이코노미

김 전문위원은 개정안 검토의견을 통해 “개별법에서 원청의 하청근로자에 대한 안전·교육 지원 등을 권장하고 있는데, 판례에서는 이를 불법파견의 징표로 보는 사례가 있어 하청근로자를 지원하고자 하는 의지와 여력이 있는 도급인도 하청근로자를 지원하지 않게 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했다.

다만 김 전문위원은 “(개정안은) 판례에서 불법파견의 징표로 보는 사항까지도 불법파견의 징표로 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어 근로자파견이 확대될 우려를 제기하는 견해가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특히 ‘직업능력개발 지원’을 근로자파견의 징표로 보지 않는 경우, 근로자파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작업지시 성격의 직무교육’까지 근로자파견의 징표에서 제외될 수 있고, ‘고충처리 지원’을 이유로 근로자에 대해 업무 등과 관련한 지시 등을 하는 경우에도 근로자파견의 징표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 개정안에 대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정책본부 유정엽 실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불법파견을 합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양현 법무국장 또한 “위장도급의 합법화에 불과한 내용”이라며 “선진 유럽의 경우처럼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출산 등의 사유가 있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파견을 허용하는 방식이 좋은 입법례가 될 것”이라고 중기이코노미에 밝혔다.

이유는 다르지만 경영계 또한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법제연구실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도급과 파견을 구별짓는 파견법 개정안 발의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 실장은 “도급과 파견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고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선진국에선 이를 구별하는 곳이 없다”며 “현재 대법원에서도 엇갈리는 판결이 나오는 과정이고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구별기준을 입법화하는 것은 모호한 기준을 더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장 불법파견을 근절하려는 것…송옥주 의원안=송옥주 의원안에 따르면 ‘근로자파견과 도급을 구별하는 기준’을 신설하고, 사업주로서의 실체를 갖춘 사업주가 ‘도급의 기준’을 모두 갖추면 도급, 일부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근로자파견으로 본다.

개정안에서 ‘도급의 기준’은 도급계약의 목적 및 내용이 특정돼 있어야 하고, 단순히 노무의 공급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또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결과 평가 등에 관한 사항 ▲휴게시간, 휴일, 휴가, 시업 및 종업 시각, 연장근로 등에 관한 사항 ▲배치결정과 그 변경 및 복무상 규율, 채용 및 해고, 인사이동과 징계에 관한 사항 ▲도급인과 구별되는 독자적 사업목적에 따른 작업조직 및 작업수행방식을 수급인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도급계약에 따른 수급인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요자금을 전부 자기 책임 하에 조달·지급하고 ▲민법·상법 그 밖의 법률에 규정된 사업주로서의 모든 책임을 부담하며, 그 근로자에 대하여 법률에 규정된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하고 ▲자기 책임과 부담으로 제공하는 기계, 설비, 기재 또는 자재를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전문적인 기획과 기술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단순히 근로자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도급계약에 대한 보수가 수급인의 근로자의 수, 근로시간 등을 기초로 산정해 지급하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

또 개정안에 따르면 도급의 기준을 모두 갖춘 경우에도 고의로 위장한 경우, 도급인의 도급지시가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현장대리인에 의해 단순히 전달되는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으로 간주한다.

환경노동위원회 김양건 전문위원은 “개정안은 파견을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내하도급으로 위장된 불법파견을 근절하려는 것으로, 개정안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위장된 불법파견을 구별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불법적인 파견 행태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개정안 검토의견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