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하는 中경쟁법 ‘반독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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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ㅣ 중국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하는 中경쟁법 ‘반독점법’ 자국산업보호 속내…과징금기준 불명확, 소명기회 없어 사전예방 뿐

기사입력2016-12-01 14:01

# 2013년 1월 중국정부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그리고 대만의 치메이이노룩스(CMI), AU옵트로닉스(AUO), 중화잉관, 한위차이징 등 한국과 대만의 LCD업체 6곳에 대해 담합혐의를 적용, 총 3억5300만위안(약 6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양국기업이 2001년부터 5년간 수차례 모임을 갖고 휴대폰과 TV에 들어가는 LCD패널의 가격을 담합해 중국기업에 피해를 줬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과징금의 60%에 해당하는 2억1900만위안(약 370억원)을 냈다. 두 기업은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 LCD패널 수출을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고 외국기업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경쟁법을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2014년 8월 한국국적 선사인 유코카캐리어스㈜는 운임담합 혐의로 중국 경쟁당국으로부터 총 2억8400만위안(약 505억5000만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함께 조사받은 닛폰유센, 쇼센미쓰이, 가와사키키센 등 일본계 선사들은 담합 자진신고(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최대 100% 감면받았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애초부터 연 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시장 영향력이 큰 한국계 선사를 노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중국의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최근 경쟁법을 외국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 자국기업 보호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의 권대식 변호사는 3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한국과 중국의 경쟁법 집행 동향’ 세미나에서 “2014~2015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적발된 카르텔(독점계약) 총 12건 가운데 10건이 외자기업과 관련된 것”이라며 “한·중 갈등이 심화되면 제재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어 사전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쟁법은 독과점을 방지하고 경쟁촉진을 통해 경쟁적인 시장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률이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 미국의 반트러스트법, 일본의 독점금지법, EU의 경쟁법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은 2007년 8월 중국판 경쟁법인 ‘반독점법(反壟斷法)’을 제정·공포해 2008년 8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경제헌법이라고 불리며 가격담합,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정독점 등을 규제한다.

과거 중국이 개방되기 전에는 국유기업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구조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개방정책 시행 이후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민간기업의 독과점행위나 반경쟁행위 등이 사회전반적인 문제로 확산됐다. 반독점법을 도입한 배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반독점법이 중국 내수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장벽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독점법을 활용, 외국기업의 중국시장 지배력 확대를 막고 자국산업을 보호·육성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속내인 셈이다.

2013년 1월 한·대만 LCD패널업체 6곳에 3억5300만위안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8월에는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글로벌 분유업체 6곳에 6억6900만위안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4년에는 일본 자동차 부품 및 베어링 업체 12곳에 12억3500만위안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에는 첨단 디지털 무선통신기술·제품 및 서비스 선도기업인 퀄컴에 60억8880만위안(약 1조613억원)이라는 역대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반독점법을 위반하면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해당 행위의 중지는 물론이고, 위법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위법소득은 몰수한다. 담합으로 인한 기업의 이미지 실추 또한 피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 제재를 받아도 소명기회가 없다는 점도 애로사항이다. 국내의 경우 이의제기와 소송 등을 통해 과징금을 낮출 수 있지만, 중국은 이러한 절차가 없어 부과된 과징금을 몽땅 지불해야 한다. 과징금 산정기준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당국의 재량에 따라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자칫 중국정부에 찍혔다가는 언제든 막대한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가격 남용·카르텔),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SAIC, 비가격 시장지배력 남용·카르텔), 상무부(MOFCOM, 기업결합) 등 경쟁당국 3개 기관이 사안별로 나눠 법을 달리 집행하고 있어 법 적용도 까다롭다.

따라서 사전에 예방조치를 취하는 게 유리하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의 김성욱 변호사는 “중국에서 경쟁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사업을 접겠다는 의미와 같다”며 “그래서 사전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 반독점법은 규제범위가 포괄적이고 과징금 산정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 등 공공기관이 이에 대한 정보를 기업에 제공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기업은 ‘반독점법 자율준수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위법행위가 있는지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만약 법을 위반했다면 자진심고 감면제도(리니언시)를 적극 활용해 피해를 줄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반독점법 집행이 강화되면,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담합 등 경쟁법 위반으로 중국당국의 제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가 외국 경쟁당국과의 협조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에 필요한 법률을 자문해 줄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