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먼저인데 안전대책 부실이 낳은 행정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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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예방 먼저인데 안전대책 부실이 낳은 행정 참사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사고예방 조치가 있었어야 했다

기사입력2022-11-01 00: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사고 현장 부근에 마련된 추모공간. <사진=뉴시스>

1999년 10월30일 인천 인현동에서는 호프집이 있던 건물에 불이 나, 10대 청소년 56명이 사망하고 78명이 부상을 입는 참변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불법 무허가 영업, 미성년자 주류 판매, 호프집 사장의 비리와 탈세라는 비정상이 만든 결과였으며, 이 지역 공무원·경찰들의 뇌물수수와 유착, 방조가 그 배경이었다.

당시 유족들은 아이들을 잃은 슬픔에 더해, ‘술집을 간 불량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손가락질에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10월 말 고등학교 축제가 몰려있던 시즌, 학생들은 마땅히 놀 곳이 없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탄하기도 했다. 사고의 책임은 이 아이들에게 있었을까.

1989년 FA컵 준결승전이 열렸던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축구경기장, 이곳에서는 수용가능 인원을 넘어선 관중들이 모여들어 철조망 펜스가 무너져 사람들이 밀려 넘어지면서 96명이 죽고 70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당시 사람들은 ‘훌리건의 난동 때문’, 혹은 ‘철 없는 어린 것들 때문’이라며 참사의 책임을 관중들에게 돌렸다.

유가족은 숨진 가족의 명예회복과 참사 재발방지를 위해 싸웠고, 27년 만인 2016년 4월 영국 법원은 참사의 책임이 경찰에게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그제서야 영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며 공식 사과를 했다.

지난 주말 핼러윈 축제를 맞은 이태원에서는 150여명이 넘는 청년들이 믿을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일부 SNS와 인터넷 게시글에는 ‘그곳에 간 사람들이 잘못’이라거나 ‘서양 행사를 챙기러 간 이들’이라며 비난하거나 ‘놀다가 죽은 이들을 추모해야 하느냐’는 등 희생자들을 조롱하거나 비난하고 혐오하는 발언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장기화된 코로나19에 갇혀있던 청년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올 것은 당연했고,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언론에서는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행정당국도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국가는 변명이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변명과 책임회피, 공감의 부족에서 유족들과 희생자들의 생채기가 더욱 깊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참사 관련 브리핑에서 한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발생 현장을 찾아 사고 현장을 둘러보며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라고 관계자에게 묻는 장면이 보도돼,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과 아픔을 느낄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정부의 이러한 해명에 대해, 참여 인원을 잘못 예측한 것과 인원이 모여도 큰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한 안일함 그리고 경찰소방관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핼러윈 기간 이태원처럼 명확한 주최자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상황을 대비한 경찰 매뉴얼은 없다고 한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의 발언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안 소장은 “주최자 유무에 상관없이 헌법, 지방자치법,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도 위험이 예견될 경우 경찰과 지자체장 등은 안전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며,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면 더 위험하고 현장 안전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 더 무질서할 것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임에도 이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고 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위험 발생의 방지’ 조항에서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天災), 사변(事變), 인공구조물의 파손이나 붕괴, 교통사고, 위험물의 폭발, 위험한 동물 등의 출현,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에는 그 장소에 있는 사람, 사물의 관리자, 그 밖의 관계인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하게 하거나 직접 그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씨 좋은 날 가족들과 함께 찾은 지역 축제 혹은 어느 행사에서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면, 이 나라 정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안전대책 부실이 낳은 행정 참사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번과 같은 불행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정부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적어도 국민 안전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사전 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