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불, 흙, 철…직접 자연과 접촉하고 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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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물, 불, 흙, 철…직접 자연과 접촉하고 호흡하다 ‘임옥상:여기, 일어서는 땅’…내년 3월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기사입력2022-12-06 14:43

한국 현대미술의 한 축을 끌어온 임옥상 작가의 대규모 신작 설치 프로젝트 ‘임옥상:여기, 일어서는 땅’이 2023년 3월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 리얼리즘 미술부터 대지미술, 환경미술로까지 작업의 영역을 넓혀온 임옥상의 미술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기, 일어서는 땅’, 2022, 흙, 혼합재료, 200×200×10cm(36ea), 1200×1200×10cm(전체),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사진=이의록>

전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업은 ‘여기, 일어서는 땅’(2022)이다. 이 작품은 패널 36개를 짜맞춘 세로 12m, 가로 12m의 대규모 설치작업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파주 장단평야에 있는 논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미술재료용으로 가공돼 정제된 흙이 아닌 진짜 장단평야 논바닥의 흙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해, 추수 후 땅의 상황을 자연 그대로 재현해냈다. 베고 남은 볏단의 아래 둥치, 농부와 농기계가 밟고 지나간 자국, 논에 내려앉은 이름 모를 생물들의 흔적 그리고 여전히 배어있는 땅 냄새, 숨 냄새 등이 원초적인 무의식을 건드리는 듯하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다른 설치작품으로는 흙으로 빚은 ‘흙의 소리’(2022)가 있는데 마치 대지의 신 가이아(Gaia)의 머리가 옆으로 누워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관객은 작품의 한쪽에 있는 입구에서 거대한 인간의 얼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 대지의 어머니가 내는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작업 초기시절부터 물, 불, 흙, 철 등을 작품의 소재로 자주 활용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몸으로 직접 자연과 접촉하고 호흡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탓이다. 이런 작업 태도는 캔버스 위에 흙을 덧바르고 그 위에 물감이나 먹물을 얹는 방식의 ‘흙 산수’라는 새로운 작품 흐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새로 작업한 ‘흙 산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흙의 소리’, 2022, 흙, 혼합재료, 390×480×300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사진=이의록>

작가는 미술관 내 중정에 지름 4m가 넘는 ‘검은 웅덩이’(2022)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속에는 검은 물이 가득차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미세한 파문이 인다. 작가는 웅덩이를 ‘숨구멍’이라 칭하며 바로 앞에 ‘검은 웅덩이’를 바라보는 조각작품 ‘대지-어머니’(1993)를 배치해, 생태적 시선으로 지금의 우리 모습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