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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과거를 공유받고, 미래에 열릴 전시를 상상하다

다가올 전시에 관해 쓰는 일 

기사입력2023-07-05 17:02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다른기사보기

경험하지 않은 것에 관해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다짐이 아니다. 나는 경험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부딪치고, 만지고, 생각하고 느낀 것. 오래 바라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에 관해 주로 쓴다. 통상 어떤 경험으로부터 느낌과 감정을 공유받고 난 이후 뭔가를 알게 된다. 깨달음은 글로 번역된 후 종이 위에 멈춘 상태로 남겨지고, 그 글은 읽는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것임으로 상상만으로 이 모든 경험을 설계하긴 어렵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해가 갈수록 글쓰기가 점점 더 까다롭다 느끼는데, 글의 시제를 설정하기 어렵기 때문인것 같다.

 

올해 초, 오랜 친구들로부터 여름에 열릴 전시회의 서문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제안과 함께 매우 아름답고 논리적으로 짜인 기획안을 볼 수 있었으나, 당장 눈앞에 볼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이 놓인 전시회를 상상하기가 퍽 난감했다.

 

서문은 본디 전시회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글인데, 본 적 없는 작품이 놓일 전시에 관해 쓰는 일이 마치 예언을 하게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예언은 다가올 일을 미리 알리는 말이지만, 실패할 경우 허무맹랑한 공상이 돼버리지 않던가. 보탬이 되고픈 마음 반, 보탬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 반. 이메일에 답신을 보내기 전 여러 번 망설였다. 이 심정을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들의 믿음과 배려로 ‘Custom Axis’를 위한 글을 쓸 수 있었다.

 

‘Custom Axis’, 전시 전경. <사진=고정균, 사진제공=중간지점>

 

몇 가지 생각의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 ‘전시의 과거를 공유받자.’ 나는 전시장에 찾아올 미래의 관객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친구들의 작업실에 무작정 찾아갔다. 세 작가가 모여서 전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와 기존에 제작하던 작품에 관해 들었다. 이후에는 김다정 작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 형상을 찾아가고 있던 문나린 작가의 조각, 이지윤 작가가 구상하고 편집하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기획안에 쓰인 설명만을 공유받았을 때는 막막했지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받다 보니 전시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모습을 이모저모 살피며 천천히 작품과 전시의 연결점을 찾아보려 했다.

 

과거로부터 미래에 열릴 전시를 상상하자.’ 미래에 보게 될 것들을 계속해서 떠올려 보고자 했다. 세 작가는 작품을 만들며 이미지가 빠르게 소비되는 환경에서 오래 볼 수 있는 작품의 조건과 작동 방식을 궁금해했다. 질문을 전시를 통해 살펴보기 위해 이들은 몰입의 지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웠다. 작가들이 해석한 지연은 관객들이 작품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뜻했고, 세 사람이 함께 투명한 벽을 고안했다. 이 특별한 장치와 작품을 함께 놓게된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보려 했다.

 

마지막. ‘이제 써보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투명한 벽과 함께 놓인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전시장에 스미는 빛을 통해 투명한 벽 위에 여러 겹의 상이 맺히게 될 것이다. 뒷면이 보이는 투명한 벽을 통해 관객은 너머에 있는 것과 벽면 위에 맺힌 것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며, 보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보기 위해 조금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영상작품이 양쪽에 프로젝션 된 것을 알게될 것이며, 조각작품이 전시장에 꼭 맞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그림이 벽과 꼭 맞게 계획되어 그려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예측과 함께 내가 공유받은 작가들의 시간을 조금 덧붙여 글을 마무리했다.

 

다가올 전시에 관해 쓰며, 전시는 어떤 일의 결과가 아닌 무수히 많은 시간이 겹친 시제 불명의 사건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글의 말미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힘을 온전히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전시장에 놓인 것들을 세밀히 바라봐야 한다. 겪어본 적 없는 시간을 상상하고 눈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는 경험을 섞어 짜야 이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되어서야 확인한 전시는 명료하고 아름다웠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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