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내가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나요?

프린트

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언제, 어디서 내가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나요? 놀이와 약속…내가 누구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를 함께 하며

기사입력2023-03-06 10:13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교육. 정말 오랜 기간 학생이었다. 20대의 대부분 시간을 교육기관에서 보냈고, 작년 학업을 마치고 가방끈이 긴 사람이 됐다. 학생이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내 삶에서 중요한 단어는 ‘교육’과 ‘육성’이 됐다.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스승들의 도움을 받았고, 나는 이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점차 어른이 됐다.

학생일 때부터 다양한 일을 병행했다. 경제활동과 작품활동 그리고 학업을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일하며 배우는 것이 많았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었다. 연초에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교육팀에서 주관했던 서울예술교육사업에 지원했고,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다.

표봄, ‘보고픈 사람’, 2022. ‘내가 두려워하는 것’의 가면을 착용하고 상상여행을 떠나는 놀이 활동 이후 경험한 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 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미술,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전공자들로, 공교육 현장에 파견돼 2인 1조로 90분간 수업을 진행한다. 자유학기제에 할당된 수업이기에, 수업의 내용은 교과과정과는 별개로 온전히 두 예술가의 손에 맡겨진다. 나는 또래 연극배우와 함께 팀을 꾸렸고, 운이 좋게도 마음 맞는 협업자를 만나 ‘그레고르의 변신술’이라는 수업을 개발할 수 있었다.

8주간의 수업은 자신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를 겹쳐보며,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까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취지로 기획됐다. 수업은 연극 놀이, 만들기와 그리기, 글쓰기 활동 등으로 구성됐고,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이 마법 학교에서 변신술 수업을 받는 마법사가 된 것처럼 참여를 유도했다(일부 학생들은 이 상황을 킬킬대며 비웃거나 낯 뜨거워하기도 했다).

돌멩이와 나무와 같은 자연물을 휴대폰이나 책상 등 무생물의 시점으로 영상을 촬영해보기도 하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가면을 만들어 착용한 뒤 춤을 추거나 그것의 걸음걸이를 연습해보며 상상여행을 떠나보기도 했다. 매 수업을 마무리하기 전에는 자신이 이 활동을 통해 어떤 것을 느꼈는지 작성하게 하고, 다른 학우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지인, ‘행복’, 2022, 작품 설명서.

‘그레고르의 변신술’의 마지막 수업은 ‘나만의 변신술서 만들기:내가 되는 법’이다. 이 수업은 7주간 타자의 시선을 경험하는 활동을 진행한 이후 돌아와 자기 인식을 새롭게 도모하기 위한 마무리 과정이었다.

두 교시의 수업 중 첫 교시에는 학생들에게 ‘언제, 어디서 내가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후에는 ‘가장 나답게 느껴지는 내가 되는 법’을 담은 작은 그림책을 만들게 한다. ‘가장 나다운 나’를 설명하는 학생들의 답은 엇비슷했다. 주말에 휴대폰을 보는 나, 학교나 학원에 가는 나, 친구와 함께 있는 나. 학교와 집을 오가는 하루는 엇비슷한 리듬으로 흐르겠다고 생각했지만, 10대들의 라이프사이클을 살펴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던 순간이 많았다.

또한, 이 수업 중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 것 같냐는 질문을 선생님인 내게 역으로 건네거나 자신에 관해 쓸 말이 없다며 하염없이 활동지를 노려보기도 했다. 자신의 주관과 취향이 있지만 내가 누구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의 학생들에게 타인과 내가 아닌 것의 입장을 살펴보고 유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그레고르의 변신술’, 야외 수업. 내가 아닌 다른 사물, 동물, 자연물의 시점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예술가들이 수업을 개발하는 일의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성심으로 수업을 채우려 했다. 나와 파트너 선생님은 학생들이 수업시간 동안 안전함을 느끼게 하려 했다. 우리는 놀이를 통한 안전함을 약속했다.

내 10대와 20대를 돌이켜보면, 학교와 집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세상을 가득 채웠고, 나는 그들의 말에 하나하나 영향받고 움츠러들었다. 그렇기에 그 시간을 되새기며 학생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안전한 시간을 제공하려 했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가 역할을 다하면 삶으로 무사히 돌아오듯, 수업이 끝난 뒤 함께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레고르의 변신술’은 그렇기에 안전했다고 말해본다.

모든 학급의 수업이 종료된 후, 교육과 육성의 ‘아름다움’은 원하는 것을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공유받는 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느꼈다. 이러한 취지를 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환경이 더 많아지면 학생들의 시간이 앞으로 더 풍요로워질 거라 생각했다.

아쉽게도,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교육 사업은 사업예산 편성 불가를 통보받아 2022년을 기점으로 종료됐다. 사업에 참여한 첫해를 마무리 한 뒤 사업 종료를 고지받아 유감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어디에선가 더 많이 살아낸 사람이 앞으로 더 살아갈 사람들을 돕고, 그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돕는 스승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한 학기에 약 100명의 학생을 가르쳤으니, 작년에만 200명의 10대를 만난 셈이다. 중학교 1학년이던 학생들은 3월이 돼 중학교 2학년이 됐을 것이다. 8주간 만났던 모든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더욱 자유롭고 안전하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