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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작업 속에서 여러 맥락을 제시할 수 있기를

Super 8mm 필름…폼 퓨레(Pommes Purée)와 잡동사니 영상 

기사입력2024-02-12 10:00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다른기사보기

요리와 미술은 닮았다. 재료가 있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에 대한 반응도 있다.

 

겨울에 폼 퓨레(pommes purée)를 만들어 봤다. 매쉬드 포테이토(mashed potato)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말 그대로 으깬 감자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가진 폼 퓨레는 감자, 버터, 우유나 생크림, 소금, 후추 등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재료가 간단한 대신 가공법이 중요하다. 부드러운 식감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많은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완전한 폼 퓨레가 된다. 조리과정은 다음과 같다.

 

감자 한 알을 산 뒤 푹 익을 때까지 삶는다(나는 주먹보다 큰 감자 한 알을 샀는데, 커다란 감자는 쉽게 익지 않기 때문에 20분 정도 기다렸다). 뜨거운 물에 담긴 감자를 쿡 찔러보면 익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감자가 다 익은 것을 확인하면 포크 두 개를 사용해 으깬다. 여기에 버터 한 덩이를 넣고 잘 섞는다. 고운 채에 옮겨 꾹꾹 눌러 거른다. 체에 거른 것을 팬으로 옮겨 우유와 함께 끓이며 섞어준다. 이때, 포슬포슬한 감자가 부드러운 크림처럼 변한다. 팬에 있는 감자를 다시 체로 가져와 한 번 더 거른다. 이후 팬에서 끓이기를 한 번 더 반복. 마지막으로 소금 간을 더한다. 감자 한 알이 한 접시의 폼 퓨레가 됐다.

 

폼 퓨레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체에 거르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루한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다른 음식들에 비해 뭔가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요리의 전반적인 과정은 재료를 활용한다기보다는 재료의 가공에 가까웠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완성한 폼 퓨레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고, 노고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숭덩숭덩 썰어 펄펄 끓는 물에 삶은 감자도 물론 맛있겠지만, 이 음식은 원재료를 전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아마 감자 한 알의 성질을 완벽하게 바꾼 음식이지 않을까. 폼 퓨레를 만들고 맛봤던 경험은 내게 재료와 자료를 가공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했다.

 

요리와 미술이 닮은 점이 또 있다. 레이어(layer)를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레이어는 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볼 수 있는 층뿐 아니라, 느끼거나 알 수 있는 층까지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에서는 다양한 풍미, 식감 등이 어우러지는 상태와 감상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에서는 물감층, 설치작업에서는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 자료, 화면과 소리의 결합이나 작품 안에 놓인 요소들의 얽힘과 쌓임 등으로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상작업을 주로 제작하는 나는 늘 감자와 씨름하고 있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촬영한 이미지, 수집한 자료와 정보, 기억과 이미지. 이것들은 내게 모두 감자와 같은 재료다. 이 재료들을 가지고 여러 개의 층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능숙한 작가와 서투른 작가를 가름하는 기준일 것이다.

 

최근에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그 어느 때보다 제약이 많다. 재료를 가공하는 방식을 고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6fps만큼 부족한:Super 8mm 필름을 활용한 잡동사니 영상 제작을 위한 리서치이다. 이전에 소개한 적 있는 Super 8mm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조합해 영상을 만들겠다는 기획이다. 여기서 잡동사니는 잘 쓰일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의 모음을 비유한다.

 

어찌 보면 현대 광학기술의 기준에 미달하는 재료를 통해 나는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단지 촬영된 화면인 재료를 넘어설 수 있기를, 작품을 통해 경험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이것에 감응하길 꿈꾸게 된다.

 

Super 8mm 필름의 질감과 한정된 프레임 레이트를 토대로 작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제약을 극복하고 영상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생시키기 위한 가공법을 찾고, 작업 속에서 여러 맥락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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