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24/07/14(일) 10:00 편집
스마트복지포털

주요메뉴

등기데이터2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라운지예술을 읽다

가릴수록 일상의 새로운 풍경이 드러나 보인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아름다움…김혜원 작가 

기사입력2024-02-19 11:52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다른기사보기

김혜원의 회화를 마주친 사람은 아마 그것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자주 보게 되는 것, 그러니까 일상적 풍경을 찾아 그림으로 담아낸다. 예컨대 도서관 서가, 늘 타는 버스, 지하철에서 내다본 차창 밖 경치 등이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언뜻 평범하게만 보이는 그림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의외의 광경이 나타난다. 멀리서 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물감층의 갖은 색채와 섬세한 질감이 관찰된다. 일상적 풍경의 표면으로부터 예외적인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김혜원, ‘서강대교를 건너는 버스의 내부’, Watercolor and Gouache, Acrylic Medium on Canvas, 78.2×100.2cm, 2022.

 

어쩌면 이 그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에 숨어 있던 색과 질감을 열어 보이는 회화라고. 그런데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살펴본다면, ‘열어 보인다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김혜원은 수채 물감을 이용해 풍경을 묘사한 뒤 물감에 미디엄을 섞어 층을 쌓는다. 얇은 물감층이 정교한 붓질로 한 겹 한 겹 올라가면 그림이 완성된다. 물감층은 쌓이고 또 쌓이되 그림 속 이미지를 아주 가리지는 않는 정도로 위태롭게 덮인다. 무언가를 열어 보인다라는 말보다는 가린다는 말이 알맞게 느껴지는 그리기다. 물리적으로 물감층이 쌓이면서 이미지를 가릴수록 일상을 바라보던 기존의 감각이 벗겨지고 새로운 풍경이 드러나는 역설적 운동이 회화 위에 있다.

 

과거 김혜원의 작가 노트를 흥미롭게 읽은 적 있다. 일부를 간추려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감을 짜서 색을 계산하고 적절한 크기의 붓을 선택해 화면에 바르는 행위는 특정한 대상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잊게끔 한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물감을 화면에 바를 때, 무언가를 그린다는 생각은 0에 수렴하고 손의 움직임만이 내 시각을 자극한다.’

 

일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조적이고 작가적인태도로 그림을 그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작가는 오히려 자신의 그리기가 기계와 같이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서 성립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유가 사라지고 오직 움직임만이 남는 반복은 예술가의 창조 행위라기보다는 노동과 더욱 가깝게 보였다.

 

김혜원, ‘마포중앙도서관’, Watercolor and Gouache, Acrylic Medium on Canvas, 193.9×97.0cm, 2021.
여기서 김혜원이 자수나 뜨개질과 같은 수공예에도 관심이 깊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Thickness of Pictures(2022)’에 평론을 쓴 박정우는 작가가 수공예 작업을 병행하면서 얻은 섬세한 감각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고 관찰한 적 있다. 창조와 노동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수공예는 김혜원의 그리기에 있어 떼어 놓을 수 없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회화는 그림 그리기, 수공예, 그리고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이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행위가 우연히 합을 맞춘 끝에 만들어진 결과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삶을 이루는 근본적 활동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아주 유명한 세 개의 분류를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먼저 노동이 있다. 노동은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생물학적 활동이다. 다음은 작업이다. 작업은 자연이 아닌, 인공적 세계를 구성하는 활동이다. 노동과 작업은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보충하는 활동에 속한다. 그런 한편 행위가 있다. 행위는 필요와 욕구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활동이며, 인간의 주체성과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특권적 활동이다

 

아렌트의 행위 개념은 예술 활동의 본질적 필요를 설명하는 데에도 자주 인용되고는 했다. 하지만 김혜원의 그리기에서 행위란 자아실현을 위한 창조적 활동이 아니라 노동과 유사한 어떤 것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그리기를 수행하는 동안 자유롭고 특권적인 행위 안에 숨어 있던 모순된 측면을 갑작스레 마주한다.

 

김혜원의 회화를 마주친 사람은 아마 그의 그림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숙련된 필치로 가득한 그림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나 역시 작업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화면에는 작가의 의지가 없다. 여기에 만약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건 지루하고 무의식적인 손의 움직임 끝에 예기치 못하게 나타난 우연한 결론에 불과하다

 

김혜원의 그림은 일상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오히려 일상을 구성하는 것이 지루하고 기계적인 반복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거기선 우연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름답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스마트에듀센터

객원전문 기자칼럼

 
  • 부동산법
  • 상가법
  • 준법길잡이
  • IP 법정
  • 생활세무
  • 판례리뷰
  • 인사급여
  • 노동정책
  • 노동법
  • 인사노무
  • 민생희망
  • 무역실무
  • 금융경제
  • 부동산
  • 가맹거래
  • 기업법률
  • CSR·ESG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예술별자리
  • 세상이야기
  • 빌딩이야기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