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년…‘통치행위’ 위에 헌법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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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개성공단 1년…‘통치행위’ 위에 헌법이 있음을 법치주의 통해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고통을 치유해야

기사입력2017-02-20 20:3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단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통’이다. 소통의 부재로 대통령의 말과 사고는 늘 허공을 맴돌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번역기’를 가동해야 그나마 좀 이해를 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의 사고 역시 확인되는 경우는 드물고, 정치평론가의 이런 저런 평석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말과 사고가 땅을 딛지 않고, 국민대중의 정서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유체이탈화법’의 화신으로 등장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 박근혜 대통령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이다. 유체이탈화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무슨 이유로 추진하는 것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실행돼야 하는지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행한 일에 따른 결과가 무엇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잘되면 자신의 총명과 선견지명 때문이고 잘못되면 남 탓을 하면 될 터이니, 일 그 자체 성사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사인간의 관계에서 유체이탈화법 사용자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입장에선 짜증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사람인줄 알고 있고 자기방어 기제를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 그런데 유체이탈화법 사용자가 국가기관의 수장인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유체이탈화법 사용자인 대통령이 국가적 어젠다인 개성공단 사업의 전면중단을 결정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단 이유에 대한 설명을 못하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또 법적 근거도 없이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고, 폐쇄과정에서 법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 또한 결여됨으로써 대통령 스스로 법치주의를 전면 부정했다. 남북관계 경색, 북한의 계속되는 핵개발 및 미사일발사 실험 등 공단폐쇄 이후 드러난 결과는 공단폐쇄 결정이 타당했다는 최소한의 이유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체이탈화법에 따르면 개성공단 전면폐쇄에 따른 부정적인 모습 모두는 대통령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김정은 때문이고, 북한을 잘못 길들인 김대중·노무현정권 책임이다. 진단이 이러니 해법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2월10일 통일부는 개성공단 사업 전면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3일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 당일 통일부는 “개성공단과 관련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을 감안해 650명 수준으로 축소한 체류인원을 500명까지 추가로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의 방침은 개성공단 전면폐쇄가 아닌 부분축소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10일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개성공단 전면폐쇄가 결정됐다.

개성공단 방침이 3일만에 급선회한 배경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영역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개성공단 방침이 급선회한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 부처가 협의해서 NSC에서 결정이 난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정부부처간 협의가 3일만에 완료됐다는 홍장관의 발언은 거짓말일 개연성이 아주 크다. 개성공단 전면폐쇄에 따른 관련 정부부처의 대응방안 및 영향력 분석 그리고 인력 및 장비 철수계획 수립, 개성공단에 남겨질 자산처리문제 등 복잡다난한 현안은 3일만에 합의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지난해 1월22일 진행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홍 장관은 “개성공단은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다. 홍 장관의 발언을 그대로 믿는 경우에도 개성공단 폐쇄결정은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던 1월22일 이후 결정됐다. 그래봐야 20일 남짓한 기간내에 개성공단 방침이 전면 수정된 것이다. 정부방침이 급작스럽게 변경된 것 자체도 그렇지만 변경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개성공단 전면폐쇄 이유 중 하나는 북 핵개발과 미사일발사 실험이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문제는 공단폐쇄 이전부터 존재했던 사안이다. 그나마 정부가 이유로 내세우는 것 중 들어줄 만한 것이 ‘개성공단 자금의 핵개발 자금으로의 전용’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의혹수준이고, 정부는 그 의혹을 뒷받침해 줄 증거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의혹을 부풀리기 위해 ‘말바꾸기’ 등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했다. 홍 장관은 지난해 2월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핵개발 자금 전용’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대해 “자금이 들어간 증거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됐다”며 “그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개성공단 자금이 핵개발에 사용됐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개성공단 부분축소 방침이 ‘알 수 없는 의사결정 단위’에서 전면폐쇄로 급선회됐다고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인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재산상 손해를 초래한 것 자체도 문제다. 특히 공단폐쇄 과정에서 정부는 공권력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과 절차를 외면함으로써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국민들을 대상으론 법치주의를 그토록 ‘강요’했음에도, 정작 정부 스스로 법을 초월해 공권력을 남용함으로써 사법체계를 무너뜨렸다. 법치주의란 국민들의 준법정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헌법과 법에 정한 절차에 근거해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권력에 대한 통제장치다.

개성공단 전면폐쇄 ‘결정’의 법적근거에 대해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해 2월18일 국회에서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따른 것”이라며 “다른 법을 이 행위에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황 총리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인정하는 게 고도의 정치행위에 관한 법리”라고 덧붙였다. 공단폐쇄 결정은 대통령의 이른바 ‘통치행위’에 해당돼 헌법재판소나 법원 등 사법부의 통제범위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공안검사 시각이 철철 묻어나는 자의적인 법 해석이다.

법치국가에서 사법권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통치행위라는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고, 우리 헌법재판소의 입장이기도 한다. 헌재는 “통치행위를 포함하여…(중략)…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것(헌법재판소 1996. 2. 29. 선고 93헌마186 결정)”이라 밝혀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통제 방침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결정을 통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기본권인 재산권이 침해됐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침해된 기본권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결정이 헌재의 심판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황 총리의 통치행위 운운은 헌법과 법률 위에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것이기에 반헌법적 발상과 다르지 않다. 개성공단 폐쇄결정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통해 재산권을 침해받은 기업인들의 손해배상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헌재에 의해 위헌결정을 받기 이전에 정부 스스로 나서 기업인들의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이미 1년 넘게 지속됐던 이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함으로써 헌법과 법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정부의 책임있는 태도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