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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생명…하늘을 나는 물고기, 물속을 헤엄치는 새
노은님 회고전 ‘빨간 새와 함께’…11월23일까지 현대화랑
- 기사입력2025-11-17 09:10
김현성 기자 (kimhs@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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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님, 큰 물고기 식구들, 1991, 한지에 혼합재료, 275×279cm. <이미지=현대화랑 제공>“인생의 숙제를 푸는데 그림은 나에게 도구였으며 길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태우고, 녹이고, 잊고, 들여다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작가 노은님의 이 고백은 단순한 예술철학이 아니라 그의 존재방식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현대화랑에서 오는 11월 23일까지 이어지는 회고전 ‘빨간 새와 함께’는 그가 생애 내내 탐구했던 삶과 예술, 자유와 생명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펼친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처럼
19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1970년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에서 수학하며 예술과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의 회화는 동양적 사유와 서구 표현주의가 자연스럽게 융합된 힘의 언어였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 물속을 헤엄치는 새, 초승달 배를 타고 유영하는 인물들. 이 모든 형상은 작가가 꾸밈이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그려낸 존재에 대한 형상들이다.
전시에 공개된 대형작들은 최대 3미터에 달하는 화면에 검고 굵은 선, 강렬한 붓질, 선명한 색을 담아낸다. 그의 선은 세속의 틀을 벗어난 자유의 흔적이며, 화면의 여백과 마찰하며 생명력을 발화한다. 낡은 규범을 깨뜨리고 무의식에 다다른 손끝의 유연한 움직임은, 그가 “병사처럼 싸우지 말고,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고 언급한 태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듯하다.
노은님, 빨간 새와 함께, 1986, 한지에 혼합재료, 140.5×71cm. <이미지=현대화랑 제공>생명의 즉흥시, 그리고 그 이후
1980~1990년대는 노은님의 예술이 가장 왕성하게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백남준, 요셉 보이스와 함께한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1984)는 그가 한국과 유럽 미술을 잇는 다리가 되었고, 199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함부르크미술대학 정교수가 되어 후학을 양성했다. 동시에 그는 “예술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믿음 아래, 국내외 수많은 전시와 설치 작업을 펼쳤다.
함부르크의 알토나 성 요하니스 교회에 영구 설치된 480장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동양 출신 작가가 유서 깊은 유럽 문화재에 남긴 드문 흔적 중 하나다. 검은 선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노은님의 예술이 지향한 본질인 생명·신성·자유를 영구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대화랑 전시장에는 그의 생명을 향한 예술적 여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내 짐은 내 날개다’(1989, 바바라 쿠젠베르그 감독)가 상영되며, 관람자는 화면 속 노은님이 남긴 말을 통해 그의 존재를 다시 만나게 된다. “내가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연도 당연도 아닌 것.” 그에게 삶은 의식의 선택이 아니라 생명의 파동이었고, 그림은 그것을 기록하는 시였다.
노은님은 언제나 ‘살아 있는 선’을 추구했다. 그 선은 현실을 직선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호흡을 따라 부드럽게 굽이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것이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빨간 새와 함께’는 단지 한 작가의 회고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선언이다. 그의 붓끝에서 날아오른 그 '빨간 새'는 여전히 우리 마음 어딘가에서 노래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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