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가 있는 고가에서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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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가족여행 툇마루가 있는 고가에서 하룻밤 유철상의 가족여행 <55>영주 선비촌의 밤하늘

기사입력2016-10-12 11:15

유철상 객원 기자 (poetry7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풀벌레 울음소리 들리는 밤. 툇마루에 앉아 보는 밤하늘은 별투성이. 헛기침 한 번에 놀라 날이 샌다. 어른들은 두툼한 이부자리와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한옥이 매력이고 아이들은 투호, 그네타기, 서당체험 등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맑은 기운을 듬뿍 받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영주 선비촌으로 GO! GO!

떠남에 목마른 계절, 가을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발바닥이 간지러울 만큼 떠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집에서 뒹굴기만 한다면 화창한 날씨가 아깝다. 지금 떠나고 싶다면 영주 선비촌이 제격이다.

선비촌 전경 ©상상출판

영주 소수서원 바로 옆에 자리한 선비촌은 1만7000여평 대지에 세워진 매머드급 민속촌. 영주의 고택 열두 채를 원형대로 재현한 문화 테마파크다.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의 생활상을 두루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전통 체험마을로, ‘선비’ 빼고는 모든 게 다 있다. 조선시대 저잣거리에서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초가, 정자, 물레방아, 곳집까지 무려 76채의 건물이 들어섰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 듯 풍경이 이채롭다. 최고의 볼거리는 사람이 사는 듯 꾸며놓은 고가. 방마다 삼층장과 자개장이 놓여 있고 벽엔 도포까지 걸려 있다.

부엌엔 가마솥·주전자·놋그릇이 가지런하다. 가옥마다 글 읽는 선비, 가야금 뜯는 선비 등 양반가의 생활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했다. 영락없는 조선시대다. 해우당 고택의 안방도 눈길을 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자개장이 놓인 안방은 숨은 듯 고요한 것이 특징.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도시와 달리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그만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고, 자고 나면 몸도 가뿐하다.

기와집부터 초가집까지 다양한 잠자리

선비촌 두암고택(위)과 두암고택의 툇마루 ©상상출판

양반 집만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김문기 가옥, 김상진 가옥 같은 중류 가옥도 기품 있는 잠자리다. 연인이라면 김상진 가옥이 제격. 화장실까지 딸린 가옥 전체를 단독으로 쓸 수 있다. 작고 아담하지만 초가에서 보내는 하룻밤도 제법 운치 있다. 초가지붕 위에는 탐스러운 박이 열렸고, 마당에서는 지붕 위를 밝힌 달이 보인다. 잘 익은 가을빛을 감상하기엔 양반 집보다 오히려 낫다. 모든 집은 새집 증후군이 없는 황토집이고, 한 번에 100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툇마루에 앉으면 소백산이 눈앞이다. 새벽녘 소백산 자락에 걸린 운해와 해질 녘 노을이 일품. 하지만 소백산 주봉을 눈앞에 마주할 수 있는 곳은 툇마루가 높은 고택뿐이다. 두암고택 툇마루에 앉으면 단풍에 물든 소백산 자락을 조망할 수 있다. 객실마다 옛 정취 물씬 풍기는 목가구를 비치해 아늑함을 주는 것은 물론 황토방의 기운까지 고스란히 전해준다. 가구나 인테리어는 고택 쪽이 낫다. 화장실이 없는 가옥도 있는데, 이 경우 다른 가옥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어른들도 신기한 문화 체험 가득

소수서원(위)과 소수박물관 ©상상출판

선비촌 내에는 문화체험과 관련한 부대시설이 많다. 서당체험을 할 수 있는 강학당을 비롯해 소수박물관, 죽계루, 승운정 등 정자와 누각이 있고 저잣거리 내에 공방, 전통 찻집, 특산품 코너 등의 시설이 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소수박물관. 괴헌 김영의 후손이 기증한 희귀 서적과 고문서·고지도, 민속자료 등 2만여점이 전시돼 있다. 그래서 선비촌은 사실 숙박시설이라기보다 문화 체험시설에 가깝다. 숙박도 일종의 문화 체험. 화장실 빼고는 모두가 예스럽다. 관람객 누구나 체험해볼 수 있는 전통놀이도 있다. 팽이치기, 투호, 널뛰기, 제기차기 등.

선비촌에 재현된 전통 가옥 열두 채에서는 고가 체험, 즉 숙박도 가능하다. 제일 규모가 큰 두암고택부터 둘러보자. 6칸 대청에 방만 다섯 개. 부엌, 외양간, 마루방, 문간채, 곳간까지 갖추었다. 압권은 사랑채의 넓은 툇마루. 해질 녘, 소백산 연봉을 적시는 노을이며 한밤, 머리맡으로 쏟아지는 별빛이 툇마루에서 보인다.

산책 삼아 소수서원 둘러보기

선비촌을 방문한 이상 소수서원을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사액서원이었다는 소수서원, 유교문화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수박물관까지 연결돼 있어 제대로 구경하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선비촌에서는 돌다리로 연결된 죽계천만 건너면 바로 소수서원 뒷마당이 나온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여분. 하지만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은은한 솔향기를 맡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죽계천 건너, 소나무 사이에 있는 취한대도 볼거리다. 공부에 지친 선비가 한가롭게 풍류를 즐기던 정자답게 취한대는 소수서원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사적 제55호)은 명성에 비해 소박하고 아담한 것이 특징이다. 강의와 토론을 했던 강학당, 스승의 집무실 겸 숙소인 일신재·직방재, 학생 숙소인 학구재·지락재 등 몇 채의 낡은 한옥이 전부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연과 어울림이 빼어나 쉬기에는 딱 좋다.[유철상 상상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