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를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데는 관심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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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초상화를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데는 관심없다 20세기 표현주의…예술가의 뮤즈 ⑤프랜시스 베이컨과 조지 다이어

기사입력2017-05-11 14:42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인 프랜시스 베이컨(Pierre Francis Bacon, 1909∼92). 그의 뮤즈는 동성이었던 조지 다이어(George Dyer, 1934~1971)다. 둘은 1964년 집주인과 도둑 사이로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당시 베이컨은 50대 중반이었고 다이어는 30살의 젊은이였다.

조지 다이어는 어릴 적부터 도둑질로 소년원을 드나들던 문제아였다. 베이컨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젊은이를 때론 보호자처럼 때론 연인처럼 보살폈다. 특히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늘 함께 동행하며 인생의 동반자로 여겼다. 방탕스러운 삶을 살며 마약에 빠져 살던 조지 다이어 또한 베이컨의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격정적인 태도에 자신의 인생을 내맡긴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조지 다이어<출처=christies.com>

그러나 자아도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던 다이어는 결국 1971년 10월, 파리 그랑팔레에서 베이컨의 회고전이 열리기 전날 밤 함께 머물던 호텔방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사인은 마약성 최면제 과다복용. 베이컨은 그를 잊지 못하고 검은 3부작(Black Triptych) 시리즈를 조지 다이어에 관한 헌정작으로 바친다.

베이컨은 다이어를 모델로 누드작업을 비롯한 다양한 초상화를 그렸다. 그 중 대표작은 1966~67년에 그린 ‘조지 다이어의 두상 연구’와 1969년 작업한 ‘조지 다이어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이 있다. 베이컨이 그린 다이어의 초상화는 대부분 크고 추상적인 멀티 패널로 구성돼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베이컨은 어린 시절부터 천식을 앓았고, 학교를 다닌 것은 1924년부터 1926년까지의 고작 3년이 전부다. 16세 되던 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다. 그는 파리, 베를린 등을 떠돌아다니며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고 1944년에 그린 ‘십자가 아래 인물들을 위한 세 가지 습작’이란 작품으로 데뷔했다.

인간은 죽어가는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며 줄곧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비평가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만 했다.

“정육점에 걸려있는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깃덩어리를 보며 나는 나의 생명을 다른 생명에게서 얻어왔다는 사실과 생명의 끔찍함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나는 도살장과 같은 이미지들로부터 창조적 영감을 얻는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정육점에 걸려있는 핏빛 고깃덩어리가 자신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일생 동안 인물화만 그린 것으로 유명한 베이컨. 그는 피카소나 앤디 워홀 같은 작가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오히려 미술관과 컬렉터들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음으로써 세계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추상과 구상 사이의 외줄 타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든 그는 초상화를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2013년에 표현주의 회화의 정수를 보여줬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라는 작품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액인 1억4240만 달러(한화로 약 1500억원)를 기록하며 20세기 표현주의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