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감각…타임紙의 ‘문재인’과 초상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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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새로운 감각…타임紙의 ‘문재인’과 초상화 읽기 ‘닮음’이 아닌 대상자와 미술가의 성찰이 담긴 초상화

기사입력2017-06-29 10:45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Time, 2017 May

2017년 상반기를 보낸 지금, 올해의 이슈는 그 무엇보다도 혁명과 같았던 ‘촛불’들로 인한 이전 대통령의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대선 전 4월 타임지는 당시 한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후보를 인터뷰 하였고, 대선 이전인 5월 문재인 후보를 아시아판 표지로 선보였다.

강렬한 이미지…‘협상가(The Negotiator)’ 문재인

당시 타임지의 문재인 후보 초상은 많은 이들에게 참신한 충격을 주었다. 타임지에 등장한 ‘문재인’은 우리가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기존 대중이 인식하는 ‘문재인’의 온화한 이미지가 아닌 검은색 바탕을 배경으로 하고 약한 빛을 전면 조명으로 비추어 전반적으로 어둡고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름이 강조된 얼굴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과 꼭 다물어진 입술로 마치 어둠의 사자(使者)를 연상하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타이틀로 내세운 단어 ‘협상가(The Negotiator)’는 이전의 대중이 인식하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이미지가 아닌, 관계의 주도자로서 감히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준다.

당시 문 후보를 촬영한 사진가는 호주에서 태어나고 현재 인도에서 활동하는 전쟁,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가인 아담 퍼거슨(Adam Ferguson)이다. 그는 평소 검은 배경에 인물을 강렬한 인상으로 촬영하는 사진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이렇게 촬영된 타임지의 사진은 결과적으로 문재인 후보가 가진 대선 주자로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쇄하는 역할을 하였다.

김동유, Elizabeth vs Diana, Oil on canvas, 227.3x181.8cm, 2007

필자가 처음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문재인 후보를 보았을 때, 그를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대상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양인들이 동양 남자를 바라볼 때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경우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는데, 흔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 남성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정의로운 인물이기보다는 음험하고 배신을 잘하는 혹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둡고 침침하며 날카롭게 보이는 타임지의 문재인 후보의 모습은 내게 마치 그런 캐릭터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는 역으로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카리스마를 표상하는 이미지가 되어 긍정적으로 작용하였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타임지는 불티나게 판매가 돼 인터넷 서점의 상반기 베스트셀러가 됐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면 위에 올라와 마치 아이돌 팬덤처럼 타임지를 여러 권 사재기하는 현상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타임지만 대통령을 표지로 한 것이 아니었다. 2017년 5월 한국의 대부분의 시사 저널은 대통령을 표지로 하였으나, 팬덤 현상을 일으킨 것은 오직 타임지 뿐이었다. 당시 타임지가 무엇을 생각하고 아담 퍼거슨에게 문재인 후보를 촬영하게 하였는지, 그 속내는 모두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한 타임지의 문 후보 초상이 주는 센세이셔널함은 현대미술의 초상화들과 교차점이 많다.

내면의 모습 투영된 초상화가 더 가치를 인정받아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신보다는 개인의 의식이 중요해지면서 왕가와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화가를 고용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소품을 활용해 후대에 과시하고 싶은 요소들을 더하여 초상화로 남겨 두었다. 고전적으로 왕이나 통치자의 초상화에는 기마상이 많고, 귀족들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이러한 모습의 반영으로 초상화는 역사화와 더불어 미술사에 중요한 작품들로 남아있다.

한영욱, Face, Oil on aluminum, scratch, 259x260cm, 2016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사진의 발달과 더불어 그러한 재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진작에 미켈란젤로는 후대에 초상화 대상의 생김새가 과연 중요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졌으며, 오늘날 그 초상의 본질은 더욱 부각돼 물리적 외형 묘사가 아닌 대상의 정신, 내면이 얼마나 반영되었는가가 중요하게 되었다.

닮음을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적인 얼굴로서 휴대폰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히 혼자서 해결 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의미있는 초상화란 인물의 내외부적 요소들이 모두 반영된 진정한 모습, 나의 성격과 기분을 반영한 내면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이 훨씬 더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초상을 작품소재로 한 대표 작가…강형구, 김동유, 한영욱

한국의 현대미술에도 이러한 논리로 초상을 꾸준히 작업하는 미술가들이 있는데, 유명인들의 얼굴 혹은 무명인들의 얼굴로 작업하며 활동하는 강형구, 김동유, 한영욱이 대표적이다.

강형구는 극사실주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활동을 한다. 작품에서 그는 사진인 듯한 대중이 인식하는 사회적 마스크를 그대로 차용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눈물과 주름, 눈동자와 색과 같은 허구적 요소로, 작가의 마음을 더하여 바라보는 대상으로 재창조해 낸다.

김동유 역시 유명인의 초상을 차용해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동유의 초상은 마치 도장이나 점을 찍은 듯한 점묘화법으로 형상화 하는데, 이는 마치 수많은 대중이 창조해 내는 유명인의 사회적인 얼굴이 표상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유명인의 얼굴을 구성하는 것은 반복되는 타인의 얼굴이다. 그 타인은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 모여 만들어진 케네디의 초상이 되기도 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이 모여 만들어진 다이애나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사회적 얼굴이 보여주는 이면에 대중이 지니고 있는 내재된 의식의 초상을 투영해 작업을 한다.

강형구, Monroe blue, Oil on canvas, 194x259cm, 2014

한영욱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얼굴이 아닌 무명의 사람들의 얼굴을 주제로 작업을 한다. 일반인들의 사진을 촬영하거나 수집해 작가의 시선으로 현재 그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는 삶을 유추하여 작가의 감성을 더해 표현한다. 한영욱은 알루미늄 판에 스크래치를 내고 채색하는 기법으로 그리는데, 그가 매끈한 알루미늄 판을 긁어서 표현하는 타인의 초상에서 이끌어낸 감성은 노인의 주름으로 혹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망울로, 조명과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앞서 언급한 미술가들 이외에도 많은 젊은 미술가들은 초상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과거부터 미술사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초상화는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변용되어 현대미술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등장한 타임지 표지에서 보여주는 새로운 감각이 대중들의 욕구와 맞아들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듯, 우리는 초상화를 감상할 때 인물의 닮음을 묘사한 부분을 찾으며 감상하는 것이 아닌 대상자와 미술가의 성찰이 담겨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초상화임을 감안하고 바라본다면 그 얼굴 넘어,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초상화는 오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또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