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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사랑…시험지 빼돌린 교사와 맹모삼천지교

학력만능사회가 교사와 그 자식을 그리 몰아간 것 아닌지 씁쓸 

기사입력2018-11-20 09:29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맹자(孟子)는 기원전 4세기 즈음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활약했던 여러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십수년 동안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돌아다니며, 당시 왕들에게 도덕정치(道德政治)를 펼 것을 주장했으나 끝내 아무도 등용해 주지 않자 고향에 돌아가 저술과 교육에 힘썼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글자 그대로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전쟁하던 때라고 해서 ‘전국(戰國)’이라 부르던 시대였다.  

 

당시 각 나라의 왕이 맹자와 같은 선생에게 바랐던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외교적 책략과 조언이었기에, 사랑(仁)과 정의(義)를 바탕으로 한 맹자의 왕도(王道)정치는 이들 왕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사상이었다. 그 때문에 맹자는 이전시대 공자(孔子)와 마찬가지로 출사하지 못한 채 평생을 떠돌았으며, 늘그막에 귀향해 제자들을 키우며 저술활동을 하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그렇지만 맹자는 평소 각 나라의 왕을 만나 자신의 정치 소신을 밝히는 자리에서는 한치도 굽히지 않고 늘 당당했다. 맹자는 이런 자신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기까지 했다.

 

맹자와 어머니가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서 이사 다니는 것을 나타낸 그림이다. ‘성자현모(聖子賢母)’는 성인(聖人)인 아들과 현명한 어머니라는 뜻이다.<사진=문승용 박사>
오늘날 우리가 맹자를 일컬을 때면 그의 어머니와 관련한 얘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먼저 떠올린다.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이리저리 이사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냈다고, 맹자의 어머니는 오늘날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자리매김됐다.

 

맹자는 어째서 어머니와 단둘이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살아야 했던 것일까? 맹자의 아버지 맹격(孟激)은 몰락한 노(鲁)나라 귀족의 후예였는데, 맹자가 세살 때 죽었다고 한다. 남편이 일찍 죽자 맹자의 어머니는 홀로 맹자를 키우며 어려운 집안살림을 도맡아야만 했던 것 같다. 만약에 맹자집안이 일찌감치 몰락하지 않았다면, 귀족으로서 땅이나 재산을 가지고 먹고살면 됐을테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더라도 이리저리 이사를 다닐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맹모삼천’이라 해 3번 옮겼다고 하지만, 맹자네는 두번 이사했다. 공동묘지가 있는 장례터에서 시장으로, 이어서 서당 근처로 두차례 뿐이다. 세번이든 두 번이든 좋은 교육환경 마련을 위해 애썼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 그 횟수에 주목할 일은 아니다.

 

맹자가 살았던 기원전 4세기, 당시 중국에서는 이사라는게 고통스럽다거나 짜증나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 대단한 재산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집안의 짐을 옮기는게 그러 어렵지 않아서다. 지금 사는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무슨 이유에서든지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야 했다면, 쓰던 물건을 싸서 다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자리잡으면 됐던 시대였다. 빈집이나 움막 같은 곳이 있으면 다행이고, 그마저도 없으면 공자가 동굴에서 태어났듯 작은 토굴이라도 파서 살면 그만인 시대였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환경을 고려해 이사할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처음부터 서당 근처로 바로가지 않고, 시장 인근을 거쳐서 갔을까? 아마도 맹자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라도 집안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는 데 있어 먹는 문제만큼 중대한 일은 없으니 말이다.

 

애초부터 서당 근처가 공부환경에 좋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맹자의 어머니는 참으로 어리석다 할 수 있다. 후에 이를 깨닫고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는 것은 자신의 허물을 바로 반성해 고칠 줄 알았던 매우 과단성 있는 어머니라 봐야 할 것이다.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曲阜) 부근인 추현(鄒縣)에 있는 맹자의 사당과 ‘맹모삼천’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사진=문승용 박사>
맹자의 어머니와 관련된 또다른 고사성어, ‘단기지교(斷機之敎)’란 말이 있다. ‘단기(斷機)’, 짜고 있던 베틀의 베를 끊어버려 맹자에게 가르침을 줬다는 뜻이다. 서당 근처에서 학업을 마친 맹자가 큰 도시로 유학을 갔던 것 같다. 그런데 예정된 공부를 다 마치지 않고, 어린 맹자가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었는데, 맹자를 보자마자 짜던 베를 단칼에 끊어 버렸다. 예정됐던 공부를 중단하면 마치 끊어진 베처럼 쓸모없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 맹자를 바로 학교로 돌려보냈다. 보고 싶은 것으로 치자면 어린 맹자보다 어머니가 자식을 더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남편도 없이 홀몸으로 장사해 겨우겨우 학비를 대며 키우는 하나뿐인 자식이었으니 오죽 보고 싶었을까? 맹자는 학교로 돌아가 학문에 더욱 정진했고, 이후 공자에 이어 유가(儒家)의 두 번째 성인(聖人)이라 해 아성(亞聖)으로 받드는 인물이 됐다.

 

요즘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시험지를 몰래 빼돌린 아버지가, 그 학교에 다니는 자식에게 갖다 줘 자식의 성적을 올렸다고 해 온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교사 아버지는 구속되고 자식도 기소됐다. 학교 현장에서 시험성적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설왕설래하며, 입시제도 공정성을 걱정하는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해 이른바 명문학교에 진학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바라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렇지만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한 부모의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 파멸의 길로 내몬 이번 사건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학력 만능을 최고로 여기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간 것은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맹자 어머니가 이런 오늘의 우리사회를 보았더라면 또 무엇이라고 일깨워 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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