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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특정 공공미술…그곳에 있을 때 의미 있다

공공미술의 공공성 논란…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기사입력2020-05-27 07: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기울어진 호의 이전 여부를 논하는 공청회에 참여한 예술 관계자 대다수는 왜 기울어진 호가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왜 이전 반대 의견에 다수가 투표했을까? 넓게 확 트인 광장을 흉물스럽게 가로막고 있는 녹슨 강철벽을 제거해, 광장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하자고 하는데, 왜 많은 예술 관계자는 그 강철벽을 그대로 둬야 한다고 했을까? 왜일까?

 

그것은 그 강철벽을 그곳에 세운 작가의 의도가 바로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예술 관계자는 그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울어진 호는 연방청사 광장을 위해 만든 맞춤형 작품이었다. 리처드 세라는 이 작품을 몇 가지 의도를 가지고 제작했는데,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첫째로, 연방청사 광장을 가로지르는 강철벽이 통행과 시야의 불편함을 가져오게 해서 광장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자신의 움직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공간에 장애물이 생기면 장애물을 중심으로 그 장소와 자신의 움직임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작가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다.

 

둘째로, 광장을 두 개의 다른 지역으로 구분해 완전히 새로운 두 공간의 느낌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작품은 분수가 있는 넓은 공간과 건물과 가까운 좁은 공간으로 광장을 두 부분으로 나눴다. 작가는 이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하길 원했다.

 

셋째로, 우리를 억압하는 권력을 경험하길 원했다. 이 세 번째 의도가 이 맞춤형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이 연방청사 광장은 거대한 연방청사 건물 앞에 있다. 세라는 기울어진 호라는 강철장벽을 그곳에 세워 놓음으로써 시야를 방해하고 움직임을 막는 경험과 바로 앞에 있는 연방청사(정부)가 지닌 권력의 힘을 연결하려고 했다. 시야와 움직임을 막고 있는 묵직한 강철벽 위로 권력을 상징하는 정부의 건물을 보았을 때 받는 억압적인 느낌, 마치 정부라는 권력의 힘이 개인을 억누르는 느낌을 느끼길 원했던 것이다.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1981, 강철, 3.65×36.5m, 미국 뉴욕 연방청사 광장.<출처=anotamanuscrita.com>

 

이러한 작품의 의도가 있으므로 세라는 이 작품이 반드시 연방청사 광장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예술 관련자도 이러한 세라의 의도에 동의했기 때문에 기울어진 호를 그 광장에 그대로 둬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그곳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공공미술 작품이었다. 이렇게 어떤 특정한 장소에 특별한 의도로 설치한 작품을 장소특정적’(Site-specific) 미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라가 작품을 옮길 수 없다고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어떻게 됐을까? 재판에서 세라는 이 작품이 그곳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판사는 작품이 공공의 장소인 광장에 있어야 한다면, 광장이 가진 공공적인 역할도 고려돼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소특정적 미술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옮겨도 무방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 후에도 세라는 포기하지 않고 작품 이전 요구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기울어진 호는 불편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작품은 설치 8년 만인 1989년에 결국 연방청사 광장에서 철거됐다. 세라는 이 작품의 이전을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에, 작품은 어디로도 옮겨지지 못했고, 결국 삼등분으로 절단돼 어두운 창고로 들어갔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공공미술 작품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공성과 작가의 의도가 충돌한 사건으로 공공미술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된다. 공공미술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공공미술에서 작가의 의도와 공공성 중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둬야 할까? 아마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숙제로 남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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