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는 죽은 자 이름 앞에서 울고 뺨을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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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산 자는 죽은 자 이름 앞에서 울고 뺨을 비빈다 마야 린의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

기사입력2020-03-26 09:26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미국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 베트남과 16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1975년 미국은 결국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패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국에서는 극렬한 반전시위가 있었고, 국내외 여론에 못 이겨 베트남에서 철수한 것이다.

이 전쟁에는 약 900만명의 군인이 동원됐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지역에는 270만명이 참여했으며, 30만명이 다쳤고, 7만5000명이 불구자가 됐다. 그리고 약 6만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엄청난 희생이었다. 미국의 철수로 전쟁은 끝났지만, 후유증이 깊었다.

베트남 참전용사들은 노숙자로 전락했다. 1970년대 말 뉴욕시의 노숙자 70% 이상이 베트남 참전용사였다. 미국에게 베트남 전쟁은 상처만 남겼다.

검고, 추상적이고, 수평적인 치유의 기념비

1982년 11월13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국립공원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건립된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The National Vietnam Veterans Memorial)’가 모든 사람 앞에 공개됐다. 내셔널 몰은 백악관과 의회 등 중요한 정부 건물들과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많은 기념물이 있는 미국의 얼굴과도 같은 장소다. 이곳에 베트남 참전용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 있는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출처=reddit.com>

‘더 월(The Wall)’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념비는 길이 75.21m, 높이 3.12m의 완만한 역 직삼각형 벽 2개가 125도의 V자 모양으로 세워진 기념비로, 전체 길이가 150.42m이다. 두 개의 역 직사각형 벽 양 끝 중 한쪽은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을, 다른 한쪽은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을 향해 있다.

두 개의 역 직삼각형 벽에서 가장 높은 부분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그곳을 향해 완만하게 내려갔다 올라올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면에서 내려가게 되어 있어 사실상 무덤을 향해가듯 지하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표면이 검은 거울처럼 매끈한 이 벽은 인도 뱅갈로어(Bangalore) 인근에서 채석된 검은 화강암(Black Granite)으로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1959년에서 1975년 사이에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5만8000여명의 남녀 미국인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관람자들은 이 기념비를 손으로 쓰다듬고, 뺨을 비비고,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리고 간혹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새겨진 이름을 탁본으로 떠가기도 한다. 관람자들은 기념비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다. 신체적 접촉을 망설이지 않는다.

이것은 근처에 있는,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있는 ‘워싱턴 기념탑’이나, ‘링컨 기념관’의 내부에서 위엄을 뿜어내는 링컨 대통령 동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기념비는 높게 세우는 수직적 형상이며, 거대한 규모로 보는 이가 압도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조망하게 되며, 그 규모나 형태에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의 이같은 디자인이 선정됐을 때, 대중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강단 있는 주체자의 의지로 그대로 추진되었고, 기념비가 만인에게 공개된 후에는 반대 의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하루에 1만2000~1만3000명이 다녀가는 만인이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기념비는 누가 디자인했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